차별의 활화산

신아연의 영혼맛집 913 / 교토 여행기 15

by 신아연


어젯밤 늦게까지 일본에 관한 이런저런 것들을 공부했습니다. 1월에 방문했던 교토를 중심으로 반경을 넓혀가며.



저는 일본을 알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깁니다. 어떤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도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왜 저런 말을 하고 저렇게 행동을 하나, 저 사람에 대해 앞으로는 어떻게 대처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듯이, 한 국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겠지요.



간토대학살이 왜 일어났으며, 100년 세월 동안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저렇게까지 뻔뻔할 수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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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학살 100주기 추도제 장영식 사진전에서





그 뿌리는 차별에 있습니다. 차별이 멸시를 낳고, 멸시가 천시를 낳고, 천시가 근거없는 미움과 증오를 품게 함으로써 폭력과 살해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일 준비가 항시 되어 있는 거지요. 계기만 마련되면 멸시와 증오의 화약고는 언제 어디서든 터지게 된다는 점에서 간토대학살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일본에는 인도의 카스트처럼 불가촉 천민이 존재합니다. '부라쿠민(部落民)'이라고 하는 최하층으로 극단적인 차별과 학대를 받는 계층이지요. 백정 일인 도살, 사형집행, 시신처리, 서커스, 무두질 등으로 생계를 꾸려왔으며, 그 후손들은 지금도 교육, 취업, 결혼에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라쿠민들이 야쿠자와 연을 맺게 되기도 하지요.



부라쿠민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 바로 고베, 교토, 오사카 등 간사이(관서)지방이었고 우리는 부라쿠민이 자치적으로 만든 은행을 방문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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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념자료관으로 모습을 바꾸었지만, 1899년 부라쿠민 스스로 설립한 '야나기하라은행'입니다. 일반은행에서는 부라쿠민에게 융자를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회제도적인 무서운 차별입니다.



1차 세계대전 후의 경제 불황과 관동대지진 등의 영향으로 일본 경제에 큰 공황을 맞으면서 1927년에 도산하게 되지만, 부라쿠민들은 이 자신들만의 은행을 통해 피혁업체들의 산업 육성과 진흥에 큰 공헌을 하며, 이자는 주변 초등학교의 운영자금, 도로건설자금 등으로 활용하면서 사회적 차별을 극복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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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도 명시되어 있는 걸 보면 이 은행 이용자 중에 조선인들도 있었다는 뜻일까요? 제가 설명을 놓친지도 모르겠네요.



<파친코>에 보면 부라쿠민과 한국인이 모여사는 빈민촌 경계에 거주하는 어떤 친구가 등장하지요. 그걸 보면 이 은행을 한인들도 함께 이용했을 거란 짐작이 드는데, 제가 말하려는 건 바로 '차별'입니다.



일본은 '극단적인 차별'의 나라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는 거지요.



그 차별의 중심에 재일한국인이 있습니다. 그 비극적 차별의 화산이 간토대학살로 폭발했으며, 더 비극적인 현실은 간토대학살이 여전히 활화산이란 점입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매듭을 짓지 않으면 제 2, 제 3의 간토대학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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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장영식 작가의 사진전 오프닝에는 재일한국인 3세로 지금은 고려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변호사, 구량옥 씨가 함께 했습니다. 구변호사는 1월 25일 관동대학살을 국제사법재판소로 제소하기 위한 국회토론회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는 현재 겪고 있는 재일한국인들의 차별을 간토대학살의 뿌리를 더듬어 고발했습니다.



다음 주에 구변호사의 목소리로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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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량옥 변호사 / 오사카변호사회 및 일본변호사연합회 소속으로 국제인권법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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