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26
어제 오후 카페에서 책을 읽다 잠시 고개를 든 순간, 엄마 품에 안긴 맞은 편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아기는 뚫어져라 나를 쳐다본다. 나는 아기를 향해 웃어주었다. 만약 어떤 성인이 나를 그런 식으로 쳐다봤다면 불쾌하거나 두려웠을 텐데 같은 행동을 아기가 했을 때는 왜 웃게 되는 걸까.
문득 『장자』가 생각났다.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자기 배에 와서 부딪쳤다면 아무리 성급한 사람이라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배에 한 사람이라도 누가 타고 있다면 소리쳐 그 배를 피하거나 물러나라고 할 것이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고 다시 소리쳐도 못 들었다면 결국 세 번째 소리치게 되면서 욕설이 따르게 마련이다. 아까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화를 내는 연유는, 아까는 빈 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도 스스로를 텅 비게 하고 세상을 산다면 그 무엇이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 박희채 『장자의 생명적 사유』 책과나무
그랬다. 아기는 빈 배와 같았던 것이다. 세상 경험을 시작하기 전의 아기는 그대로 빈 배와 같았기에 나도 아무런 경계심이나 의심 없이 텅 빈 마음으로 그 눈길에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결코 '빈 배'일 수가 없다. 매순간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 잣대는 나의 주관이다. 나의 고정관념, 나의 편견, 나의 자기중심성이다. 즉, 나를 기준으로 외부를 볼 수밖에 없으니 타인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내 입장에서는 내가 옳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가 옳다는 걸 인정하는 것 정도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껏해야 그 정도 밖에는.
-신아연 인문단상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