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25
밤늦은 귀가길, 버스 옆 자리에 한 아저씨가 앉는다. 아저씨 몸에서 짜장 냄새가 난다. 아마 아저씨는 중국집 주방장인가보다. 온 종일 주방에서 춘장과 마늘, 양파 등을 볶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모양이다. 버스에서 맡는 짜장 냄새는 역하고 불쾌하다. 모든 것은 있어야 할 자리가 있는 법. 냄새도 그렇구나. 고소하고 풍미 있는 짜장 냄새가 음식점에서 날 때와 사람 몸에서 날 때는 이렇게 다르구나.
사람 몸의 짜장 냄새는 가난의 냄새다. 재채기와 사랑과 가난은 숨길 수 없다더니, ‘가난의 냄새’는 더더구나 감출 수가 없다. 영화 <기생충>에도 가난을 냄새로 풍기는 사람들이 나온다. 반지하방의 눅진하고 퀴퀴한 곰팡내, 만원 지하철에 고여 있는 찝찔한 공기 등이 일상 몸에 배여 있는 사람들.
그렇다면 내게는 어떤 가난의 냄새가 날까. 집에 돌아와 책을 펼친다. 마치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코를 벌름거리듯. 그리고는 18세기 조선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독서가였던 이덕무의 가난을 마주한다. 나와 비슷한 가난이다. 특히나 이덕무의 집과 내 집이 닮은꼴이다. 갑자기 내 가난에도 품위가 깃드는 듯하다.
이덕무의 자호는 ‘선귤당’이다. 매미(蟬)와 귤(橘)이란 의미다. 이덕무는 말한다. “내가 예전 남산 부근에 살때 집의 이름을 ‘선귤’이라고 했다. 집이 작아서 매미의 허물이나 귤의 껍질과 같다는 뜻에서였다. 작고 초라한 집에 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했던 이덕무의 기백이 잘 드러나 있다.
“최상의 사람은 가난을 편안하게 여긴다. 그다음 사람은 가난을 잊어버린다. 최하등의 사람은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해 감추거나 숨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난을 호소하다가 가난에 짓눌려 끝내 가난의 노예가 되고 만다. 또한 최하등보다 못한 사람은 가난을 원수처럼 여기다가 그 가난 속에서 죽어간다.” - 이덕무 / 한정주 『문장의 온도』 다산초당
신아연 인문단상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