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영혼맛집 939
스마트폰을 뺏기지 않으려고 60대 여자가 20대 남자를 제압했다는 자체가 신문에 날 일이죠. 제가 작은 덩치는 아니지만 그 남자도 작은 덩치가 아니었으니.
겁이 많은 성격도 아니고 몸이 굼뜨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저는 요즘 호신(護身)삼아 닌자거북이처럼 가방을 메고 다닙니다. 한번 씩 뒤를 돌아보는 버릇도 전에 없이 생겼고요. 저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그 남자'가 뒤에서 찌를까 하여. 스마트폰을 뺏길 뻔한 때처럼 또 어떤 정신이상자가 덮칠까하여.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사회를 제가 살고 있었더라고요. 그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는 신아연이 당했지만 오늘은 내가 당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에 제 모든 걸 겁니다. 걸 것도 없지만.
만약 그 청년이 흉기를 가져서 제가 크게 다쳤거나 죽어서 신문에 났다면 그때 도서관에 같이 있었던 누군가가 그 장면을 찍은 동영상 제보를 했겠지요. 그리곤 한 건 올렸다며 으스댔겠죠. 그런 거 찍을 새에 사람을 도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젊고 예쁜 여자라면 상황이 달랐을까요?
그런 상황에서 그럼 저는 어땠을 것 같냐고요? 저는 '당연히' 돕습니다. 제가 특별히 의협심이 강하고 정의로워서 그럴까요? 아니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그건 일종의 반사작용 같은 거죠. 마치 재채기처럼 저절로 튀어나오는 행동 아닌가요?
사람이 내 앞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두들겨 맞고 있는데 그걸 뻔히 보고 있다? 재채기를 참는 것보다 더 힘든 일 아닌가요? 하긴 요즘 사람들은 모두 재채기를 잘도 참죠. 대책없이 당하는 사람을 속절없이 지켜보기만 하죠.
말이 나왔으니, 저를 죽일 듯 괴롭히는 그 남자와 저를 포함하여 6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그 남자를 저지하지 않습니다. 미친 개처럼 거품을 물고 저를 온종일 물어 뜯는 걸 단톡방에서 뻔히 보면서도. 저 빼고는 모두 사회에서 그럴 듯한 위치에 있고, 심지어 두 사람은 목사임에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 무슨 일을 하냐면 이런 식으로 병든 우리 사회를 밝고 정의롭게 바꾸는 글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개가, 아니 시궁창 쥐가, 도처에 깔린 바퀴벌레가 웃을 일이죠.
자기들 병부터 고치라고 해요. 같이 일하는 멤버 중 하나가 아무 이유없이 만신창이로 당하고 있는데도 그 남자한테 "신아연 좀 그만 괴롭히라."고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으니. 심지어 그 집단 대표조차도.
우연히 지나가던 것도 아니고 한솥밥 먹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몸을 사리냐고요? 왜냐하면 그 남자한테 찍혔다가는 자기들 돈이 날아가니까요. 그 남자가 프로젝트 팀장이니까요.
그깟 돈 몇 백 만원에 비루해지고, 비열해지고, 비겁해지는 게 인간이더라고요. 저는 원고료 500만원도 날아가고, 팀에서 쫓겨나는 것으로도 모자라 온갖 수모까기 겪고 있지만.
그러나 그 팀에서 쫓겨나게 된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그런 더러운 집단에서 저를 빼내셨으니.
제가 오늘 좀 흥분했네요.
제가 한 가지 사람다운 면모가 있다면 저는 어떤 일을 대할 때 '저 모습이 내 모습이다. 저 사람 속에 있는 병든 구석이 내게도 있다. 오늘은 저 사람이 도발했지만 내일은 내가 저런 꼴사나운 짓을 할 수도 있다. 저토록 비열하고 비겁하지 않아도 되었던 건 다만 지금까지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돈에 양심을 팔 만큼 궁핍하지 않은 나의 처지가 얼마나 감사한가. '라며 스스로를 살필 수 있는 성찰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로마서 3장 11, 12절 말씀을 마음에 늘 새기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