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리고 내일 '목, 금요 안락사(조력사)'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 책 제목이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인데, 어느 예리한 독자가 제목이 틀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안락사가 아니라 조력사라는 거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저는 안락사 현장이 아닌 조력사 현장엘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왜 '안락사'라고 제목을 붙였냐고요? 잘못 알았냐고요? 그럴 리가요.
검색어에 걸리게 하려고 그랬습니다. '조력사'란 말은 지금도 생소하지만 제가 책을 낸 2022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용어였습니다. 그러니 '조력사'라고 붙였다가는 책이 팔리지 않을 것 같았던 거죠.
더구나 우리에게는 '스위스 안락사'란 말은 마치 고유명사처럼 붙어다니는 개념이기도 하고요. 틀린 줄 알면서도 제목으로 붙여 혼란을 야기한 점 죄송합니다. '스위스 조력사'가 맞습니다.
오늘은 개념 정의부터 분명히 해 보겠습니다. 용어에서부터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오늘부터는 명확해졌으면 합니다.
*안락사 ; 타인에 의한 생명 중단. 의사가 약물을 투여하여 죽음에 이르게 함.
*조력사 ; 타인의 도움으로 스스로 약물을 마시거나 주사하여 삶을 끝내는 것.
우리는 지금 '조력사' 논쟁을 하자는 거지, 안락사를 논하자는 게 아니지요.
그런데 조력사를 '조력자살'로 말할 것인지, '조력사망'으로 부를 것인지가 매우 첨예한 쟁점입니다. 말이란 건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말이 갖는 설득력과 힘이란 건 삶 자체를 좌지우지하니까요.
일단 언론은 '조력사망'으로 암묵적 통일을 한 것 같습니다. '조력자살'이란 원색적 말이 주는 섬뜩함을 '조력사망'이란 무채색 말로 무감정, 무감각하게.
요즘은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란 말로 순화하듯이, 조력사를 말할 때도 '자살'이란 자극적인 표현을 피해가자는 의도만은 아닌 것 같고요, 80%에 달하는 조력사 찬성 여론을 의식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자살과 사망은 함께 논할 필요도, 이유도 없지만, 그 앞에 '조력'이 붙으면 달라집니다. '죽되, 도움을 받아 의지적으로 죽는 것'은 명백히 '자살'입니다. 조력이든 자력이든 자살은 자살입니다.
조력사를 풀어 쓸 때는 조력사망이 아니라 '조력자살'이 옳습니다.
내일 계속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