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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연 Apr 05. 2024

죽음의 자수성가?

조력사(안락사), 이래서 하면 안됩니다


조력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존엄사'라는 말을 붙입니다. 존엄사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 thelowedown, 출처 Unsplash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어쨌거나 자살을 존엄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조력사를 조력자살이라고 했을 때 말이죠. 영어로도 'assisted suicide'라는 말로 '도움을 받아 하는 자살'이라고 했지 그 말에 '존엄'이란 의미는 없습니다. 



'존엄사'란 말은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존엄한 죽음은 좋은 죽음, 따라서 조력사는 좋은 죽음', 이런 등식이 마음에, 생각에 새겨져 있는 거지요.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언어는 공동체의 의식을 먹고 자라면서 번창하다가 때론 소멸합니다. 한 때 '헬조선'이란 말이 극성으로 번지다가 요즘은 사라졌듯이. '존엄사'란 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잡초처럼 지금 한창 번성 중이죠.   









말씀드렸듯이 제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둘 다 이른바 '자수성가'를 했습니다.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두 아들이며, 지구상에 살아있을 마지막 사람도 제 두 아들일 것입니다. 생의 의지가 강하고 자율적이며 주도적입니다. 



제게 '자수성가'란 두 아들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슬픈 가족사를 반영하는 말입니다. 오늘은 마침 식목일에 세상에 온 붕어빵 둘째 아들의 33번째 생일이라 마음이 더 아립니다.



조력사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왠 아들타령이냐고요? 이유가 있지요. 



조력사란 '죽음의 자수성가'란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은 사람이 있어서 그럽니다. 2016년, 캐나다에서 조력자살을 처음 시행한 스테파니 그린이란 의사가 한 말입니다. 



강한 의지와 확신으로 자수성가형 삶을 이뤄가는 고귀한 사람들이 있듯이, 죽음 또한 자신의 의지적 선택인 조력사로 완성한다면 남달리 멋진 일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부르고 싶다네요. 참 어이가 없어서... 



그 의사에게 "네가 자수성가를 아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럼 너는 아느냐고 제게 되묻는다면, "나는 자수성가한 아들이 둘이나 있는 사람이다. 어디 붙일 데가 없어서 도움 받아 자살하는 일에 자수성가란 말을 붙이냐!"고 쏘아붙이고 싶습니다.       







© jannerboy62,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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