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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연 Apr 08. 2024

걱정, 근심, 염려가 떠오를 때


저는 요즘 기도가 많아졌습니다. 전 같으면 '생각'이 많아졌다고 해야 할텐데, 크리스천이 된 후엔 생각을 모두 기도로 돌립니다. 




생각, 다른 말로 걱정, 근심, 염려가 떠오를 때마다, 그리고 딴에는 해결책을 찾으려고 이 궁리 저 궁리가 고개를 드는 순간, 동시에 그것을 놓아버리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 rubenhutabarat, 출처 Unsplash





생각은 내 머리를 굴리는 거고, 기도는 하나님 머리를 빌리는 거지요. 




자기 생각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을 하나님도 어쩌지 못하시죠. 비워야 채울 것 아닌가요. 내 생각을 비워야, 하나님 생각이 들어오지요. 내 마음을 솎아내야 내 안에 하나님 마음이 뿌리를 내리죠. 그 비우는 작업이 곧 기도입니다.   




흔히 마음을 비운다, 내 생각을 내려 놓는다하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 비워진 내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와 채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을 새롭게 살 것 아닌가요?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마음도 없이 살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매순간 판단하고, 태도를 취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 '삶'이니까요. 




사람은 하나님 생각으로 살거나, 사탄이 주는 생각으로 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사탄'이란 말에 거부감이 크게 드실거란 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럼 '세상'이라고 바꿔 말할게요. 그럼 또 "세상이 왜 사탄이냐?"고 하실 테지요? 그건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저는 다시 거취의 기로에 섰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오직 하나님 생각에 따르려고 합니다. 




제가 할 바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뜻을 잘 읽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인 거지요. 그러지 않고는 일껏 순종한다고 한 것이 하나님이 아닌 마귀에 순종하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그 틈새에서 또 내 생각대로 하거나.




일이 이렇게까지 번질 줄은 몰랐습니다. 나를 죽자고 괴롭히는 그 사람으로 인해 결국 한국을 떠나야 되는가 싶네요. 생계가 막혔으니....




그 사람 목적이 저를 한국에서 추방하는 것이라고 하니 그 사람의 뜻을 기쁘게 이뤄주는 동시에 저 또한 다시금 살 길을 찾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제 거취가 결정되어야 하는 거지요. 




호주로 돌아간다면 언제가 될지, 가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한국생활은 뭔지, 아니면 상황이 극적으로 풀어져 계속 한국에 있게 될지 저로서는 모릅니다. 제가 가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아시지요. 다만 제가 원하는 것을 말씀드리기는 합니다. 




"하나님, 저는 한국에 계속 있고 싶어요. 하지만 제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어차피 제게 삶은 훈련입니다. 단련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국에서 받든, 호주에서 받든, 한국과 호주를 왔다갔다 하면서 받든 목적은 단 하나, 내 안의 불순물이 쫙 빠지고 순도 99.999%의 순금으로 빚어지는 것이죠.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 욥기 23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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