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음수업 4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들은 위대한 가르침을 주는 교사들이다. 삶이 더욱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죽음의 강으로 내몰린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교훈은 삶에 대한 진실이다.
우리는 배움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예외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한 것이다. 수업이 하루 24시간인 학교에. 살아 있는 한 그 수업은 계속된다. 그리고 충분히 배우지 못하면 수업은 언제까지나 반복될 것이다.
우리가 지구로 보내져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나비가 누에를 벗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을 육체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허락된다. 시간이 되면 우리는 집에서 신에게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나비처럼 떠날 수 있고,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과목들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행복 등이다. 나아가 이 수업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이 진정 누구인가 하는 깨달음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그것이 이 수업의 완성이다. 그 '나'는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존재인가. 아니면 모습을 바꿔 가며 배움을 계속하는 존재인가.
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나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에 직면한 이들의 가르침은 어떤 종교의 설교보다도 뛰어나다. 그들은 책이나 경전에서 얻은 경구가 아닌, 자신들의 육성으로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일깨운다.
죽음은 삶의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이들은 우리에게 거듭 말하고 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말라'고.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삶'인 것이다.
우리는 이 지상에 남아 있을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가 한 말과 행동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마지막 말과 행동이 될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너무 늦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다. 그들은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삶이 우리에게 사랑하고, 일하고, 놀이를 하고, 별들을 바라볼 기회를 주었으니까. - 『인생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류시화 옮김/ 이레
김보선
저는 요즘 온통 울고 다닙니다. 글을 쓰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친구, 지인들과 통화를 하면서도 눈물바람입니다. 그냥 눈물이 쏟아집니다. 바로 위의 글과 같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서야 삶의 진실을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60년 가까운 인생수업에서 저는 별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 과목에서 낙제를 면치 못했습니다. 부모를, 형제자매를, 남편을, 자식을, 친구를, 동료를, 아니 어느 누구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애초 나비가 될 수 없는 '장애 누에'처럼 그저 꼬물거리며 기어다니고만 있었습니다.
"진원아,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니 우리 사는 동안 서로 사랑하자. 사랑한다, 진원아."
"Yes mum, I agree. And you have helped me at a time of need so thank you."
저는 15년 전 헤어진 호주의 큰 아들과 페이스북 메신저 창을 통해 띄엄띄엄 간헐적 대화를 합니다. 부모라는 선장, 부선장이 피터지게 싸워대니 불안해서 도저히 타고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는 구명조끼 하나 없이 가정이라는 배에서 그대로 뛰어내렸습니다. 결국 배는 난파되었고 아이는 망망대해를 혼자 헤엄쳐 스스로의 항구를 찾아 정박했습니다.
제대로 부모 사랑을 못 받고 일찍이 사회와 부딪혀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아들은 인생 수업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부모 도움을 받아본 적 없는 탓에 저의 작은 선물에도 지나치게 고마워합니다. 저는 또 저대로 아들이 '엄마'라고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격하게 감동합니다.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습니다만, 이대로도 말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
김보선
제게 사랑 과목에, 아니 인생수업 전과목에 쪽집게 과외 선생이 되어 준 분이 있습니다. 다음주면 인생학교를 졸업하실 분이지요. 그분은 졸업식을 스위스에서 하실 예정입니다. 졸업일을 스스로 정한 분이죠. 제가 하도 아둔하니까, 이래도 멍청하고 저래도 못 배우니까, 그러면서도 포기는 안하니까, 제 딴에는 나비가 되어보겠다고 용을 써대니까 하나님이 '일대일 고액 맞춤 과외 선생'을 붙여주신 거지요.
그 분을 만난 후 저는 폭풍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학교 만년 열등생이 우등생 그룹으로 단숨에 월반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거겠지요. 정말로 중요한 것을 너무 늦게 깨닫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제게는 아직 사랑할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 죽음 앞에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갈 뻔 한 제게.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말라는 깨우침을 주고 가시는 분, 제게 삶에 대한 진실을 가르쳐주고 떠나는 그분을 배웅하러 갑니다. 겨우 64세에 빛나는 졸업장을 받으실, 희망없는 제 인생에 온몸으로 등불이 되어주시고 이제 하늘의 별이 되실 그 분을! 스위스 잘 다녀오라는 아들의 인사를 가슴에 품고, 그리고 그분의 여행길에도 같은 인사를 드리며.
Thanks again. I hope you have a very safe trip
김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