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혼하고 싶은데 어찌할꼬...

by 신아연


며칠 전 저보다 15살 정도 연세가 많은 여성이 카톡으로 "나 이혼하고 싶은데 어찌할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하시면 되지요..." 라고 단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의 '생각'이 어떤 상태인지 제가 모르기 때문이지요.



이혼하고 싶은 '생각'과 '실행' 사이에는 일생이 간극으로 놓일 수 있습니다. 평생 생각만 할뿐 결국 못한단 말이죠. 엄밀히 말해 그건 생각이되 생각이 아닙니다. 쭉정이의, 알맹이 없는 생각입니다. 열매를 못 맺는 생각입니다.



말이 씨된다고 합니다만, 말 이전에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씨가 되어 그 말대로 되는 것이죠.



생각이 먼저이고, 사람은 생각하는만큼 삽니다. 흔히 마음이 변했다고 합니다만, 엄밀히는 생각이 변한 것입니다. 생각이 변하니 마음까지 달라진 거죠.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을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변한 게 아니라 생각이 변한 것입니다. 생각이 성장했기 때문에, 아니면 퇴보했기 때문에 더는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거죠.



그 생각은 누가합니까. '내가' 합니다. 결정은 누가 합니까. '내가' 합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생각해 주고, 대신 결정해 주는 것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은 생각이 선진적입니다. 우리는 선진국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은. 왜냐하면 우리 생각으로 사는 게 아니라 '따라 생각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으로 결단하질 않고 남 생각을 가져다가 내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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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작가의 '심상'





저는 11년 전에 이혼했습니다만, 이혼에 이르기까지 25년이 걸렸습니다. 생각 한 번 잘못하는 바람에 허송한 세월이 자그마치 25년입니다. 말이 25년이지 25살에서 50살까지, 제 인생의 가운데 토막이 그대로 날아가 버린 것이죠. 부모 잘못 만나 두 아이들이 당한 고통은 또 어떻고요.



생각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어떻게 25년을 맞고 살겠습니까. 그랬던 바보멍청이도 생각이 바뀌니, 생각이 성장하니 사람답게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인생을 몽땅 조지고도 생각을 바꿔 다시 살 길을 찾았으니 역시 사람은 생각하는만큼 삽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고린도후서 5:17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 잠언 11:9



예수로 인해 새 것이 된다는 것,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결국 생각이 새 것이 되고, 그 사람의 생각(지식으로 말이암아)이 구원의 관건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살 길을 찾는 것 아닙니까. 즉, 새 생각을 하는 사람, 그 새 생각을 삶 속에서 구현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삶의 길을 찾은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요즘 생각이 명료해졌습니다. 명료해진 정도가 아니라 천동설에서 지동설처럼 생각의 축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조만간 그 바뀐 생각으로 중요한 결단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무명작가도 작가는 작가이니 거창하게는 작가로서의 양심이랄 수도 있고, 소박하게는 오늘이라도 닥칠 수 있는 제 자신의 죽음을 편하게 맞기 위한 양심 고백이랄 수 있는.



하지만 결심은 섰습니다. 발표의 때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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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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