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수 신아연의 월화대담3
간밤에 한 숨도 못자고 컴퓨터 앞에서 앉아 헤매다가 흐리멍텅한 정신으로 어제 질문에서 이어갑니다.
신아연 :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수냐, 진보냐를 이념 논쟁의 편가르기로 인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수는 민주주의 체제 수호자로, 진보는 체제 전복자로, 심지어 빨갱이로까지. 니꺼내꺼를 나누는 분배 방식의 기준과는 전혀 무관하게. 왜 그렇게 변질된 거죠?
황도수 :
니꺼내꺼 분배 방식과 무관한 게 아닙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니꺼 아니면 내꺼라고 했지요? 먹고 살아야 하니, 함께 먹고 살아야 하니 나라의 부를 어떻게 나눌지의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잖아요. 너도나도 내 것을 좀 더 많이 가지고 싶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은 더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으로 나뉘게 마련이고요.
신아연 :
네, 더 많이 가진 쪽, 그 더 많이 가진 상태를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는 쪽이 보수고, 덜 가진 쪽, 그래서 그 덜 가진 상태를 어떻게든 개선하려고 하는 쪽이 진보라고 하셨습니다.
황도수:
그렇죠. 그러니 보수 진보라는 두 갈래는 인류 삶, 역사 그 자체죠. 왕정시대, 군주시대엔 왕과 그 측근 귀족들이 보수 세력이고 그 아래 덜 가진 귀족들이 진보세력이었죠.
신아연 :
그리고 그 시대엔 일반 백성, 요즘 말로 서민 대중들은 아예 존재감이 없었던 거고요.
황도수:
맞아요. 서로 갈등, 대립한다는 것은 견줘볼 만한 수준에서의 일이잖아요. 소위 '맞짱을 뜬다'고 하듯이. 왕정시대는 왕과, 왕과 결탁된 귀족이 보수고, 그 아래 '찬밥 신세 귀족층'이 진보였죠. 국가의 부를 거의 다 가져가는 왕과 왕에 딱 붙어 있는 귀족에게 설움 받는 덜 가진 귀족층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해서 혁명 등으로 왕권을 무너뜨리고 세상이 바뀌면 그 바뀐 세상에서는 그들이 보수 세력이 되는 거죠. 가진 자로 등극하는 거죠.
신아연 :
왕은 날려버렸으니 이번에는 그 다음 층끼리 보수 진보로 대립하게 되겠네요.
황도수 :
그렇지요. 이렇게 어느 시대에나 보수와 진보가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팽팽히 맞섭니다.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보수가 되는 기득권 다툼, 또 그 아래 새로운 진보층이 형성되는 니꺼내꺼 다툼이 엎치락 뒤치락 전개되면서.
신아연 :
그리하여 서민 대중이 나도 좀 살게 해달라고 가진 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지금이 바로 우리 시대의 보수 진보 구도군요. 우리나라 역시 왕정을 거쳐, 지주라는 보수세력과 소작인이라는 진보세력의 대립을 거쳐 오늘날에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보수 진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그런데 어쩌다 보수 진보가 이념대립으로 인식되게 되었는지요?
황도수 :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보수, 진보라는 의식이 전면적으로 등장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보수 진보는 항상 있어왔지만, 그러한 사회구도가 본격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때가 우리에게는 대략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란 의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뭘 가진 게 있어야 나누고 말고 할 것 아닙니까. 본격적으로 파이를 만들기 시작해야 하고 그 파이를 어느 정도 키우는 것이 우선이죠. 그게 새마을 운동인 거죠. 그런데 나라에 친일자본이 이미 있었잖아요. 동시에 박대통령이 기업에 특혜를 주는 이른바 정경유착을 펼치죠. 또한 미소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육이오 전쟁 후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고히 자리잡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보수집단은 친일, 친미, 정경유착, 거기에 반공까지 덧입힌 정체성을 갖게 된 겁니다. 니꺼내꺼 분배 방식에 통치 이데올로기까지 뒤섞여 태동하게 된 거죠. 그래서 우리나라의 보수 진보란 말에는 '이념 냄새'가 나는 거죠.
신아연 :
아, 그렇게 된 거군요. 그래서 진보 세력 또한 이념적 요소를 풍기며 대립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이에 대한 더 깊은 말씀은 다음 시간에 이어서 듣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 성탄절 평안히 보내시고 다음 주 월요일, 4회차 대담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도수 건국대학교 교수
2020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회 위원장
2017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2007~2009 동아일보 독자인권위원회 위원
2006~ 건국대학교 교수
1999~2006 황도수법률사무소 변호사
1989~1999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1985 제27회 사법시험 합격
저서 : 법을 왜 지켜(2022, 열린생각, 현재 절판, 개정판 2024. 2.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