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학생, 신아연입니다.
새해, 잘 맞이했나요?
내가 3년 전에 쓴, 조력자살 4박 5일 동행 체험기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를 읽고 지난 해 11월 15일 장** 학생이 조력사에 관한 질문 편지를 보내 온 이래 단 하루도 학생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생각을 깊이하고 유의미한 질문을 해 온 학생이 고마웠기 때문입니다. 그 날 이후 아침 글을 쓸 때마다 내 글이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늘 간절합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장** 학생을 통해 대한민국 미래 세대를 구체적으로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장**학생한테 대신하는 마음이랄까...
새해가 되었으니 이제 고 3이군요. 대 입시가 닥쳤네요. 철학을 전공하려는 계획은 여전한지요? 내가 철학과를 나와서인지 학생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더 각별한 것 같아요.^^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장**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입니다. 친구들과도 이 편지를 공유해 주면 고맙겠어요.
지금 우리나라는 완전히 두 쪽으로 쪼개졌습니다. 차라리 서너 쪽으로 쪼개지면 오히려 희망이 있으련만, 두 동강이 나버렸다는 것에서 나는 완전히 절망합니다. 앞날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 나라는 망국의 길로 이미 접어들었습니다. 시간 문제일 뿐, 타이타닉 호처럼 결국 가라앉게 되겠지요. 다시 말하지만 두 편으로 쪼개져 있는 이 상태 그대로라는 전제 하에.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요?
우리 몸을 가지고 비유해 봅시다.
머리에서 암이 발생하고, 동시에 발끝에서 암이 또 발생했다면 두 암덩어리가 몸 중앙을 향해 침범해 들어오기 시작하겠지요. 그렇게 몸 전체에 암세포가 퍼져 조만간 결국 죽게 되겠지요.
우리나라, 우리 국민은 암에 걸렸습니다. 그것도 악성 중의 악성 암에. 하나도 아닌 두 암덩어리로 인해. 두 암덩어리 모두 지독하고 치명적이기가 어쩌면 그리 똑 같은지 어찌 손 써볼 방도가 없는.
나라와 국민을 죽어가게 하는 두 암덩어리란 물론 여당과 야당의 정치꾼들이지요.
아까 차라리 나라가 서너 쪽으로 쪼개지면 그나마 살 길이 있을 것 같다고 한 것은, 비록 암세포가 몸 여기저기에 펴져 있다 하더라도, 좀 덜 지독한 암이라면 도려내고 떼어내는 수술이라도 할 수 있을 거란 뜻입니다. 그러면 고생스럽긴 해도 살아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지금처럼 양극단에서 암덩어리 두 개가 목숨을 조여올 때는 갈 데까지 가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는 거지요. 양극단은 그 자체로 악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고 서로 악악거려봤자 그 자체로 악입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집단 IS도 '선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극악을 범하듯.
우리나라 정치권의 여당과 야당의 모습이 꼭 그러합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다는 똑 같은 '선의 명분' 하에 국민과 나라를 죽이는 악을 범하고 있으니.
세상은 편가르기와 흑백논리로 설명될 수 없건만, 정치인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한 쪽으로 경도된 사고를 하는 것이 이미 습이 되었다는 사실이 또한 무섭습니다.
장** 학생,
오늘부터는 매주 수요일, 학생이 질문해 온 조력사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 엉뚱한 글을 쓰고 말았네요. 미안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을 비집고 들어오는 다른 일이 생기기 마련이니, 앞으로 매주 수요일, 몇 차례 더 장**학생에게 편지를 쓴 후에, 수요일 조력사에 관한 대화를 다시 시작하도록 할게요.
2025.1.8 아침,
하남미사강변고 3학년 장** 학생에게
새해 첫 수요편지를 보내며,
신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