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럼에도...]

by 신아연


새로 나올 책, '조력사와 안락사에 대한' 원고를 엊그제 마치면서 공저자인 황도수 변호사의 소회를 함께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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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럼에도...]


죽음, 누구나 아는 듯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누구나 하나는 확실히 안다. 나도 머지않아 죽는다는 사실.



죽음은 생명과 삶의 끝이다. 죽음은 신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능력을 전적으로 상실하여 더 이상 생물이 아닌 상태다. 심장 박동, 혈액 순환, 장기 활동, 뇌 활동 등 모든 신체 활동이 정지되고, 완전히 의식을 잃으면서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어찌 죽음만 모르랴. 살아서도 뭔가를 제대로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안다는 것 자체가 완성된 무엇이 아니다. 살아있음을 전제로 의식이나 감각이 그저 느끼고 깨닫는 것일 뿐. 교육, 경험, 생각을 통해서 정보나 지식을 갖추는 것이자, 사람들끼리 서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을 이르는 것일 뿐이니.



그럼에도 죽음의 경험은 누구나 딱 한 번이다. 그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말이 없으니, 죽음이 무엇인지, 삶과 죽음이 바뀌는 순간이 어떠한지, 죽음 이후 어떻게 되는지 누구 하나, 무엇 하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어느 한순간 죽음을 체험했다며, 죽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또한 여전히 산 자로서 죽음을 말할 뿐이다. 그 체험을 받아들인다 한들 그 내용이 똑같은 것도 아니다. 그들이 사는 동안 축적했던 지식, 정보, 종교, 가치관, 경험, 환경 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차라리 잘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게 진솔하지 않을까? 아직 우리에게 죽음은 모르는 세계다. 더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대하는 게 옳은 자세다. 잘 모르는 것에 허상이나 억지 환상의 너울을 씌울 필요는 없다.



때론, ‘죽음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도 있다. 목사, 승려 등 종교에 관련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죽음과 그 이후를 이론적으로 설교, 설파한다. 자신들이 특별한 예지력을 가진 듯 포장하며, 심지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것처럼 신비의 아우라를 풍긴다.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기에 때로 감흥을 받기도 하지만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엔 턱없이 미흡하고 황당하기조차 하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영생한다고 떠벌렸지만 오래지 않아 모두 죽었고, 사는 동안의 그들 삶이 정갈하거나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으니.


하나씩 풀어가되, 아직은 혼동이다. 분명한 건 단 하나, '나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 나머지는 혼동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모호하고 이해 불가하다고 아무렇게나 죽음을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도 우리는 삶과 죽음의 어떤 의미를 찾아가야 하지 않겠나. 불충분하지만,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죽음과 함께!



/ 황도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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