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으로 돌아온 길들
딱히 잘난 건 없었지만, 결코 나태하게 살진 않았다. 나는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난 촌놈이다. 어릴 적 꿈은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의 꿈이셨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못하시게 되자, 그 꿈이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이어졌다. 그렇게 5년 동안 야구만 바라보며 살아야했다. 친구들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해가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의 하루는 조금 달랐다. 2교시까지 학교수업을 듣고, 교실을 나와운동장에 물을 뿌리며, 작은 돌들을 골라내는 것이 나의 하루의 시작이었다. 훈련이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기에, 공부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야구를 하면서, 운동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 마다 나는 벤치를 지켜야했다. 친구들처럼 경기에 뛰고 싶어, 벤치에서 나와 감독님 앞에서 열심히 배트를 휘둘러본 적도 있었다. 그러자 감독님이 말했다.
"광훈아, 이거 먹고 그냥 앉아있어라."
초콜릿을 주시며, 그냥 앉아있으라고 하셨던 감독님의 얼굴은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야구선수가 될 수 없겠다'라는 패배감에 젖어,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야구를 그만두게 되었다. 알파벳도 모른 채 학교생활을 했고,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매일 공원에 모여 밤늦게 까지 놀았다. 그러다보니, 매번 안 좋은 상황에 휘말리게 되었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학생부실에 불려 다니던 그런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쁜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딱 남들만큼 노력하는 4~5등급의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좋은 대학에 갈 자신도 없었는데, 친구들이 가는 대학이 너무 부러워, 수능을 한 번 더 친 적도 있다. 노력하지 않았으니, 물론 결과도 좋지 않았다. 지원한 대학에 모두 떨어졌고, 인원을 추가로 모집하는 대학교에 겨우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교를 다니며 친구들보다 1년이라는 시간이 더 뒤쳐졌다는 생각에 많이 괴로웠지만, 그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본 적 없었기 때문에 용기 낼 자신조차 없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본 적 없이, 그저 옆에 있는 친구들과 내 자신을 비교하며 신세한탄만 늘어놓았다.
그렇게 대학교 1학년 1학기 성적 2.1학점을 받고, 도망치듯 군에 입대했다. 조금씩 군 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있을 무렵, 우연히 강연에서 나오는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고, 이 사진이 나의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사막마라톤에 참가한 선수가, 배낭을 메고 혼자 삭막한 사막을 달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순간, 문득 ‘나도 사막을 달려 보고 싶다’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사막마라톤은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며 성큼 다가왔다. 사막마라톤이란 일주일 동안 250km의 사막을 자급자족하며, 횡단하는 서바이벌 레이스로 세계 극지마라톤이라 불리는 대회였다. 그때부터 나의 첫 번째 꿈은, 사막을 달리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시간이 날 때 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강연들과 자기 계발서를 찾아 읽으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기록해두는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나갔다.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버킷리스트 55가지를 완성하고 나니, 소신있게 살지 못한 지난날들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나는 내가 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사회가 정해놓은 프레임 안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런 삶이었다. 열등감으로 너무 많은시간들을 허비했기에, 그렇게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