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시작 2일전, 우리는 점심식사를 간단히 마친 뒤, 숙소에서 짐을 챙기고 나와, 대회 주최 측에서 준비해준 스와코브문드에 있는 레가시호텔로 가기 위해 예약해둔 셔틀버스에 탑승했다. ‘잘 할 수 있을 거야. 이제는 포기도 못해. 손바닥이 찢어졌다고 왜 폴을 못 잡아. 모든 건 정신력으로 버텨낼 수 있어. 아프면 폴 안잡고 두 다리로 완주하면 되는 거지 뭐!’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았다. 6시간정도를 달리니, 드디어 호텔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해는 넘어가 어둑어둑한 상태였고 바깥 공기는 꽤 쌀쌀했다. 우리는 짐을 챙겨 호텔라운지로 들어왔다. 호텔입구로 들어서니, 이미 많은 참가자들이 도착해서 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니, ‘아 정말 말로만 듣던, 사막마라톤을 하러 내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실감이 났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2인 1실로 방을 배정받았다.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모였고 드디어 12명의 한국인 참가자들이 처음으로 모이는 자리가 되었다. 열정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무엇인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다들 상기된 표정으로 웃고 떠들며, 밤이 깊어지도록 사막으로 들어가기 전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호텔에 묵고 있던 참가자들은 아침부터 분주 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전 8시부터 참가자들이 한곳에 모여서 브리핑을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사막에 들어가기전, 꼭 먹어야하는 황금 같은 조식을 먹지 못하고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브리핑을 듣는 광장으로 향했다. 100여명의 사람들이 브리핑을 듣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고 각자 나라의 국기패치를 어깨에 부치고 나오니, 올림픽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나는 태극마크가 부쳐진 대회복을 입으며 혼자 피식 웃곤 했다. 기본적인 대회개요부터 규칙, 각 코스별 난이도, 식수배급, 메디컬텐트 이용규칙, 야생동물을 만났을 때 대처법 등 다양한 내용의 브리핑을 1시간동안 들었다.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한 부분은 이번 대회 최연소 참가자 채울이가 한국팀을 위해서 통역을 해주었다.
채울이는 회사를 다니며 마라톤 풀코스와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하는 등 화려한 운동경력을 가진 멋진 동생이었다. 여동생이었지만 햄(형)이라고 부르면서 오빠들을 잘 따라주던 한국팀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브리핑이 끝난 뒤, 모든 참가자들은 대회필수 장비검사를 준비했다. 필수장비는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아주 엄격하게 이뤄졌다. 장비가 하나라도 부족하면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고 그대로 집으로 가야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출국 전에 수 십번을 가방을 쌌다풀었다는 반복하면서 가방의 무게를 확인하고 장비를 준비해왔지만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말에 괜히 긴장되었다. 주최측은 시간으로 그룹을 나눴고 장비검사가 시작되었다. B그룹이었던 내 차례가 되었다. 먼저 필수서류들을 다 제출했는지 확인하고, 건네준 서약서에 사인을 했다. 사실 전부 영어로 되어 있었기에 내용을자세히 보지 않았다.
‘만약 대회에서 사고로 사막에서 죽어도 주최측의 책임은 없다.’
‘뭐 이런 내용도 포함되어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대회에서 자신의 페이스를 생각하지 않고 오버페이스로 경기를 감행하거나, 방향감각을 잃고 코스를 이탈해 실제로 죽거나 실종되었다는 선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오싹했다.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의료팀에게 알린 뒤, 장비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검사는 통제된 공간에서 진행되며, 바닥에 모든 장비를
정리해두면 체크리스트 든 담당자가 와서 확인하는 방식이다. 식량이 하루 필수 칼로리를 만족하는지부터 랜턴의 불 밝기, 호루라기 소리까지 꼼꼼하게 검사했다. 나는 대회기준보다 식량을 더 많이 가져왔었다고 칭찬을 받았다. 사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밥 힘으로 살기 때문에 일부러 식량을 조금 더 챙겨왔었다. 꼼꼼하게 준
비한 덕분에, 장비검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잠깐의 휴식을 가지다가 대형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대회가 열리는사막으로 이동했다.
기존 사하라사막 마라톤은 아프리카 북단에 위치한, 이집트에서 개최되었다. 하지만 이슬람 무장단체(IS) 때문에 치안이 좋지 않아, 작년부터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에서 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정식 명칭은 ‘사하라 사막마라톤’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하라 레이스’라고 불렀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참가자들은 사막을 보며 열광했
고 나 또한 소리를 지르며 텐트가 쳐진 베이스캠프로 달려갔다. 텐트는 8~10명에서 함께 사용한다. 우리텐트에서 한국팀은 정석이형, 보준이형, 채울이 그리고 나까지 총 4명이었다. 참가자들은 텐트에 각자 자리를 잡고 짐을 풀고 손바닥 상태를 확인했다. 대회장에 오기전까지 밤낮으로 소독하고 연고를 발랐기에 상태가 많
이 호전되어 있었다. 따가운 것만 조금 참는다면 폴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아, 혼자 웃으며 짐정리를 끝내고텐트 밖으로 나갔다.
눈앞에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사막 한가운데서 40개국, 1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뒤섞여 밥을 나눠먹고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니, 나도 긴장이 많이 풀렸다.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뜨거운 물을 준비해온 전투식량에 넣고 나도 간이 테이블에 있는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렇게 뒤섞여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생각보다 대회가 처음이 아닌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이 대회를 충분히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 누군가 소리쳤다.
“다들 잠깐 하던 것 멈추고, 저기 노을 한번 봐!"
같이 테이블에 앉아있던 참가자들은 고개를 돌려서 노을을 바라보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때의 전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노을이었으며, 대회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즐겼던 노을이었다. 그런 하늘을 바라보면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던 기억이 별로 없었구나. 뭐가 혼자 그렇게 바빴을까’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해가 저물었고 밤이 되었다. 생각보다 사막의 밤은 추웠기에 주최측에서 피워준 불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내일 컨디션을 위해 이른 시간부터 텐트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참가자들도 있었지만 밖에서 캠프파이어를 즐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나도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깊은 사색에 잠겼다.
‘네가 바라던 사막 원 없이 한번 달려보고, 완주메달 목에 걸고 당당하게 한국으로 돌아가자.’
늦은 시간 텐트로 돌아왔고 이런 저런 생각에 뒤척이며 쉽게 잠들지 못했다.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사막에서의 첫날밤이 그렇게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