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찢어진 손바닥
모든 참가비를 납부하고 주최 측에서 요구한 필수장비들도 준비했다. 체력훈련은 가방에 3L의 물을 채우고 왕복 10km거리가 되는 산을 매일 2주정도 올랐다. 평소에 걷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사막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큰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2017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하라 사막마라톤’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인터넷 카페에 하나둘씩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12명의 참가자들이 단체 메신저방에 모였다. 사전모임을 갖진 않았지만 메신저상으로 많은 정보들을 교환하며, 대회전 나미비아에 도착해 같이 지낼숙소를 정하기도 했다. 학교를 휴학하고 온 대학생들, 변리사님, 보험회사 이사님들, 교직을 내려놓고 세계를 여행 중이신 선생님, 중 환자실 간호사 등 다양한 사연들을 가진 참가자들이 있었다.
나는 대회전 학교를 휴학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시간이 여유로웠다. 마침 시간이 여유로운 한국인 참가자 정석이형과 시차적응도 할 겸, 일주일 먼저 출국해서 다른 한국인 참가자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장비를 확인하고 우리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나미비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홍콩을 경유해 20시간이 넘는 비행을 끝내고 나미비아 ‘호세쿠타고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대회걱정에 날씨부터 체크했다. 나미비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정말 푸른 하늘이었고 바람은 한국의 봄바람처럼 따뜻했다.
바람이 많이 불면 조금 춥기까지 했다.
‘뭐야? 아프리카라서 도착하자마자, 녹아내릴 줄 알았는데 괜찮은데?’
생각보다 좋은 날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여행이라도 온 듯 얼굴에 설렘으로 가득했다. 한국에서 미리 나미비아 비자를 받아 왔지만, 입국을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들이 있었다. 입국절차를 끝내고 공항도착 3시간 만에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우리 숙소가 있는 ‘빈트후크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택시기사들끼리 서로 태워주겠다며 요금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우리는 요금보다 ‘누가 더 안전하게 데려다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제일 인상이 좋은(?) 기사의 차를 탔다. 해외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아프리카라는 낯선 대륙이 주는 두려움이 있었기에 조금 더 긴장되었다. 나는 짧은 영어로 우리의 목적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구글 맵을 보여주며) 여기로 가야해. 혹시 가줄 수 있어?”
“당연하지. 나만 믿어. 어느 나라에서 왔어?”
“나는 한국에서 왔어. 아프리카는 처음이야.”
“오늘 석양 꼭 챙겨봐. 엄청 아름다울 거야. 나미비아에 온 걸, 축하해!”
택시기사의 말 한마디에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고 나미비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창밖을 보는 순간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을 연상하게 했고 아니나 다를까, 시내로 들어가는 곳곳에 도로를 막아서는 원숭이들 덕분에(?) 목적지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우리를 안전하게 데려다 준 기사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차에서 내려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간단한 저녁을 먹고 쉬고 있었는데, 숙소주인이 나미비아 여행투어에 대해 말해주었다.
“사파리 투어는 벌써 예약했지?”
“아니 못했어. 우리는 여행 온 게 아니라, 마라톤 대회 때문에 온거라서..”
“아프리카까지 왔는데, 사파리를 안보고 돌아간다고?”
사실 출국 전 한국에서부터 나미비아 여행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지만 대회를 위해 몸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려야 했기때문에, 여행을 포기했었다. 막상 도착하니, 아프리카 나미비아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 아쉬웠다. 우리는 고민 끝에, 그 자리에서 4박5일 나미비아 투어를 예약했다. 그 선택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나미비아 투어버스에 몸을 실고 투어를 떠났다. 그동안 대회를 준비하면서 몸과 마음이 힘들었기 때문에 여행을 하는 동안은 잠시 대회에 대한 생각을 잊고 편하게 즐기기로 했다. 안전과 몸의 컨디션이 최우선으로 생각했기에 여행을 하는 동안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음식을 먹을 때도 특히나 더 신경을 썼다. 투어버스는 영국, 독일, 미국에서 온 사람들 8명을 태우고 나미비아를 누볐다. 그렇게 3일 동안 조심히 여행을 하고 있었지만, 사건은 데드블레이(Dead Vlei)를 보러가는 길에 터지고 말았다.
나미비아에 있는 특유의 붉은 사막을 보자마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경사진 사막을 달리다 발을 헛디뎌 모래가 없는 맨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함께 투어버스에 탔던 일행들이 놀라서 소리쳤고 나는 벌떡 일어나 다친 곳이 없는지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다른 곳은 큰 이상이 없었지만 손바닥에서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 떨어지면서 손을 바닥에 짚는 바람에, 손바닥이 찢어진 것이다. 나는 투어를 멈추고 응급조치를 한 뒤, 관광지에 있는 의료시설로 향했다. 당황한 기색이 영력한 가이드가 내게 말했다.
“훈 괜찮아. 너무 걱정 하지마. 치료하면 금방 괜찮아 질거야.”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나는 ‘아임 오케이, 쏘리 쏘리’만 계속해서 외쳤다. 투어 가이드는 나를 계속해서 안심시켰지만, 솔직히 괜찮지 않았다. 손은 시간이 지나면 치료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손으로 대회를 완주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됐다. 의료시설로 가는 차안에서 나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사막마라톤에 참가하기위해, 6개월을 그렇게 죽어라 고생했는데.. 대회직전에 고작 그 여행하나 못 참아서 이런 꼴이 되다니. 정말철없는 인간이구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를 힘들게 했다. 의료시설에 도착해서 의사에게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손바닥엔 크고 작은 자갈들이 많이 박혀있었고 손이 깊게 파여 있었다. 찢어진 길이는 2~3cm정도 된 것 같아보였다. 의사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을 하며, 내 손을 유심히 보았고 상태를 영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은 알았지만, 영어로 설명했기 때문에 치료를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의사의 손동작을 보고 기겁했다. 의사는 내 손바닥을 바늘과 실로 꿰매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안 돼! 나 사막마라톤 대회에 참가해야해. 완주하려면 폴을 잡아야
한단 말이야..”
급한 마음에 말도 안 되는 영어를 내뱉었고, 꿰매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의사는 계속해서 치료를 권했지만, 나는 그냥 소독만 해달라며 손을 절대 내어주지 않았다. 완주하지 못하더라도 대회는 꼭 참가해야만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박힌 자갈들을 제거하고 간단한 소독만 받고 캠프로 돌아왔다. 나중에 들은 이 야기지만 그 상황에서는 꿰매는 것이 나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위에서 말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상처를 꿰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꿰매고 난 뒤, 대회에서 두 발이 되어줄, 등산용 폴을 잡았을 때 상처가 더 벌어질까봐 걱정을 했었다.
그렇게 투어를 마치고 우리가 숙소로 돌아왔을 때, 다른 한국인 참가자들이 모두 도착해있었다. 그 중 유독 반가운 얼굴이 한 명 있었다. 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는 보준이형이다. 형은 이전에 필리핀 팔라완에서 4박5일 동안 진행했던 무인도 체험에서 함께 동거 동락했던 사이였다. 바나나 잎으로 같이 집도 짓고, 작살로 물고기 사냥도 하면서 친해진 특별한 인연이다. 3교대 근무를 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서 대회를 준비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고 괜히 내가 더 뿌듯했다. 왜 대회전부터 다쳤냐고 구박을 받았지만, 대회전날까지 내 손바닥을 치료해준 고마운 형이다.
그렇게 대회시작 4일전 8명의 한국인 참가자들이 한 숙소에 모였고, 저녁을 먹으며 서로를 소개했다. 사막마라톤에 엮인 사연들이 하나같이 다 감동적이었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마라톤에 참가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끼리 모이니, 신기하게도 이속에서는 사막을 달리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학교 안에서 경험할 수 없던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