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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Feb 26. 2024

동생의 뒷모습이 우렁 우렁하다

아픈 엄마를 돌보다

내 결혼 후 셋째 여동생은 십여 년 간 우리 집 근처에서 살았다. 멀어도 버스 정류장 5장 안팎으로 이사를 반복했다. 

동생이 부모님과 합가 한 후에도 새로운 집은 우리 집하고 멀지 않다. 자취 시절 동생은 내 여동생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끼니 잘 안 챙겨 먹고, 집에 가면 발 디딜 틈이 없이 옷가지와 세간살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상한 건 휴지통 옆에 쓰레기가 놓여 있다는 것이었는데, 교대근무로 지친 영혼이, 걸음 한 발짝 옮길 힘이 없어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하고 넘어간 게 몇 해 되었다. 초 반에는 가서 청소도 해주고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손을 벗어난 이해와 영역이 되어버렸다. 청소해도 티가 안 나는 낡은 집으로 이사 간 순간부터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주 반찬을 날라주거나, 가족끼리 외식을 나갈 때도 세 번에 한 번 꼴은 음식을 포장해서 문고리에 걸어 놓고 갔다. 빈 집이면 넣어 놓거나. 선물 받은 것이라든가, 1+1 살림템들도 알뜰히 챙겨 주었다. 스케줄이 맞는 날이면 함께 외식도 자주 했다. 


합가 후, 이제 막내 동생만 보러 가는 일은 잘 없게 되었다. 부모님 다 계시니 이제 친정에 가는 셈이다. 그러나 미묘하게도, 동생은 이제 더 이상 막내 동생이 아니다.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고, 실질적으로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 버렸다. 엄마는 편찮으시고 아버지는 연로하신 데다 언니도 고향을 등진 이후 집에만 있으니 자신이 책임 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부모님 자주 편찮으시고 혼자 힘든 큰언니 생각하며 합가를 제안한 것은 셋째 여동생이었고. 진즉 제안했지만 아버지가 오케이 한 것이 십여 년이 다 된 요 근래였다.


부엌살림법이 엄마 다르고, 여동생 다르니 여동생은 설거지도 안 맡기고 밥 차리는 것도 엄마한테는 잘 안 맡긴다. 가전도 제 돈으로 들인 새것이라고 아끼고 아낀다. 김밥이나 시리얼, 빵류는 끼니로 치지 않는 부모님이니, 세끼 차리기 얼마나 힘들까. 살림에 들어가는 잔잔바리 살림템이나 식자재료, 하물며 관리비 각종 세금 고지까지 본인이 상당 부분 관리한다. 그렇다면 놀고 있는 큰언니가 가사를 전담 마크해 주면 좋을 텐데 언니는 체력이 약해서 조금만 해도 힘들다 소리를 한다. 

시소의 양쪽에 한쪽에는 부모님, 한쪽에 큰 언니만 있다 막내 여동생이 올라탔으니 서로 균형이 좀 맞게 되었는데도, 그럼에도 삐거덕 소리가 난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프로 불편러 전담인데, 그 집에만 가면 불평러계의 쪼매니가 된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고 웃는다. 


하얀 도화지에, 검은 얼룩이 좀 묻었더라도, 대충은 흰 도화지니 그냥저냥 하얀 면만 보고 지내면 좋을 텐데, 하얀 도화지에 검은 얼룩 좀 묻었다고 검은 얼룩 크게 보면 어찌 지내남. 

그저께도 며칠 만에 친정에 갔더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싱크대 앞에서 볼일 보는 막내 여동생의 뒷모습이 우렁우렁하다. 살림을 책임지고 부담을 갖는 가장의 뒷모습. 온 뒷모습으로 포스와 힘들다 소리를 뿜어낸다.      

살림을 하는 것은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잘하면 가족들의 일상이 매끄럽게 굴러가지만 그렇다고 칭찬받을 것도 보상받을 일도 없는 것이요, 못하고 들자니 더 이상 혼잣 몸이 아니어 찝찝하고 예민한 성격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 살림의 쓸모와 소요가 단지 의식주를 잘 보살피는 것만이 아니라 구성원들 행복의 질과도 연관된다고 연결시켜 생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현명한 분담과 어느 정도의 체념도 필요하겠고.

고향에서 자기 나름대로 편하게 지내던 엄마 언니도 고충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윤나는 세간살이 윤나게 유지하려면 평소 해왔던 청소보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더해야 하고, 실질적 가장 눈치도 봐야 하고, 낯선 곳이라 설운 감도 있겠지.  

톱니바퀴 서로 잘 맞물려 언제고 삐거덕 소리 안나며 돌아갈 날이 오겠지.      


우렁우렁한 뒷모습 못마땅해할 것이 아니라 나도 어깨 감싸주고, 힘들다 소리 들어주고 그래야겠지. 

우렁우렁한 뒷모습 보기 싫다고 등 돌려버리면, 돌아섰을 때 내 뒷모습이 그에게는 얼마나 완고해 보이겠는가. 

결국 이 두 문장 쓰자고 길게 돌아왔다. 나도 도통 어쩔 수 없는 애면글면 여동생의 애면글면 언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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