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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Feb 29. 2024

3월 새 학기 울렁 증후군

아이를 낳고 다시 입학하게 된 것이 있으니 새 학기 울렁 증후군이다. 학교 가는 건 아이이지만 예민하고 변화에 취약한 내 맘도 아이를 따라 학교를 다닌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새로운 시간 속으로 풍덩 뛰어들게 되어도 그 기운을 타고 즐기는 사람들이 부럽다. 변화를 불안함으로 먼저 인식하는 예민 세포는 이 계절엔 특히 내게 좋지 않다.      

얼마 전 구독하고 있는 팟빵의 한 매거진에서 평론가, 방송인, 영화배우 모두 3월에 울렁증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슬몃 웃음 지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도 이 시기를 극복하는데 안타깝지만 힘이 된다.      

하루는 줌 수업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었다고 한다. 네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무엇이냐고.

‘나는 그날 하루가 걱정 근심 없고 행복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어.’

‘성공한 하루들이 쌓이면 인생 전체가 행복이겠네, 그 생각을 했어?’

‘나도 그런 생각하고 말한 거야.’

어떻게 쫄보 울보가 그런 초긍정 생각을 했던 걸까. 추상적인 ‘행복’이란 단어가 아이 마음에 어떤 지도를 그리고 있는지도 무척 궁금했으나 사춘기 아이인 것을 생각하며 입술을 꾹 다물어 본다.  

그래서 새 학기 증후군이란 말을 이런 아이 앞에서 하려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말은 입에서 시작해 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말은 귀를 통해 마음속에 도착한 뒤 살아남는다.(박준의 산문집 중에서)

새 학기 증후군을 모르는, 나를 많이 닮은 아이에게, 굳이 이 단어를 알려줘 마음에 살아가도록 할 필요는 없겠지. 아니면 새 학기 증후군을, 멋진 단어로 둔갑시켜 살아가게 해 줄 아빠표 처방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내게 봄은, 늘 칙칙한 옷들만 입고 다니며, 화사한 코트나 알록달록한 패딩을 사고 싶단 말만 하다가, 어느덧 겨울 옷 살 타이밍을 놓칠 때쯤이면 와 있곤 했다.

겨울이네, 봄이네 설왕설래하다가 덮고 자는 극세사 이불이 너무 무겁다 싶으면 이미 봄이 너무 와 버렸다는 뜻. 그때쯤이면 수족냉증이라 문신처럼 신고 다니는 털 슬리퍼도 거추장스러워진다.     


아이 고모네 집 거북이는 지금 10년째 가족과 동거 중인데, 겨울이 올 때가 되면 갑자기 움직이지 않고 잠에 빠진다고 했다. 

거북이는 살이 찌면 움츠려도 그 갑 속에 몸이 다 들어가지 않는데,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쯤에는 살이 헐거워져 얼굴과 두 팔다리가 갑 속으로 쏙 들어가 있다고도 했다.      

그럼 언제 일어나나요?     

‘어느 날 갑자기 깨어 있어요’는 고모의 말이고,     

‘비릿한 먹이를 거북이 주위에 놓았을 때 갑자기 앙-하고 무는 때가 있는데, 그때 거북이의 겨울잠이 끝났다는 거예요’는 고모부의 말.      

근육(?)이 다 빠져 갑속으로 쏙 들어간 거북이의 머리와 팔, 다리가 먹이를 앙하고 물기 위해 쏙 하고 빠져나오는 모습이 순간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이제는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이 일찍이 말씀하셨지. 

얼었던 것을 녹이고, 다시 얼리고 녹이는 자연의 이치 속에서 올 것은 결국 오고야 말 것이므로_ 그 속에서 자랄 것은 자라고야 말 것이다. 

나도 거대한 자연의 일부이니까, 나의 삶도 그런 일부이니까. 올해는 더 ‘자연스럽게’ 이 계절을 맞이해 보자. 거북이가 앙~하고 생(生)을 무는 것처럼.     



연일 계속되는 따뜻한 날씨는 산언덕에 끈질기게 붙어 있는 겨울을 큰소리 하나 내지 않고 하나하나 녹여내고 있습니다어제는 밤새껏 눈을 불러 다시 겨울을 쌓아 놓았습니다만 천지 가득 다가오는 봄의 기운을 어쩌지는 못할 것입니다.” _더불어 숲,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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