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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Apr 03. 2024

아픈 엄마를 돌보다

엄마와 그네

-어서 가자.

-안 갈래. 힘들어.

-가자. 걸어야지 화장실도 잘 가지.

-그래? 

-응. 어서 갑시다.

끙차,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엄마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네가 준 스카프. 따숴. 공단.

공단은 아니고 폴리에스테르인데. 비단과 폴리에스테르 차이를 알려주면 뭐 하나 싶다. 따습기만 하다면 그걸로 되었지. 말레이시아 여행 다녀온 동생과, 동생 없는 빈자리 밥 차리느라 힘들었을 언니는 쉬라고 두고 엄마 손 잡고 산책을 나선다. 

-모자를 써야 는데, 참. 

-괜찮아. 잠깐인데 뭐.

-옛날부터 오뉴월에 밭일하면 이웃 사람들도 못 알아본다고 했어.

-가을볕엔 딸 내보내고, 봄볕엔 며느리 내보낸다는 거 그거 말하는 거야?

-그래. 그래. 

아파트는 햇볕이 잘 든 자리엔 목련이 만개하고 벚꽃도 활짝이지만, 볕이 잘 안 드는 자리는 새 순만 한창이다. 엄마랑 가면서 이번 주에 아이 담임선생님의 가정 방문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 오신다고 어제부터 시작해야 하는 작품 글도 못쓰고 집안 대청소에 간식, 마실 것은 무엇을 낼까 고민 고민이라고.     


-그네 타러 가자. 

-또?

-응.

동생이 날이 따뜻해져 엄마랑 산책을 나섰더니, 그네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어제 언니랑 함께 나선 산책 자리에도 그네를 타러 가자 했다. 칠십 넘은 할머니가 그네 타는 모습은 왠지 상상이 잘 안 되어 어리둥절이었다. 동생 말대로 엄마는 정말 그네를 타고 싶어 했다. 아파트 놀이터로 가서 언니는 뒤에서 엄마를 밀어주고, 나는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꼬숩다.

함박 미소를 지으며 꼬숩다고 한다. 언니가 힘들게 당신을 밀지만, 당신은 가뿐하니 편하고 신나니 꼬숩다고 하는 것이다. 

-고소하다고? 

관절염이 있으니 발구르기도 못하고 오래 타봐야 십 분이다. 그넷줄을 꽈악 잡고 다리도 뻣뻣하게 힘을 주니 절대 오래는 못 탄다.      

오늘은 어제처럼 옆 자리에 잘 타는 청남방 언니도 없고, 기다리는 아이들도 없다. 평일 낮이라 그렇다.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그네를 탄다. 흐뭇한 미소가 얼굴에 감돈다.


-기억나? 우리 집에도 선생님 심방 왔었는데.

-초등학교 때였나? 여름 즈음. 오셔갖구 놀래서 한참 서 계셨었잖아. 하얀 셔츠 입고 오셨었는데.

아버지가 담보를 서서 우리 집이 연대 보증으로 날아가고,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살 때 오셨던 선생님이 떠올라 말을 건넸더니,

-어디? 니 중학교 때 선생님이지. 그래, 은시계 차고.

-그랬나? 

-그랬어? 선생님이 놀랬냐? 

늘 가난했어서 가정방문 접대 강약 중 강약이 없었는데, 용케 엄마는 흰옷 입은 그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우리 집 단칸방 입구에서 늘 놀랜 채 서있고는 했다. 이 단칸방에서 여섯 명이 산다고? 방 하나가 부엌이고 거실이고 침실이라니 어디 운신할 마땅한 곳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어느덧 강산이 세 번 바뀌고, 엄마의 자리에 내가 서 있다. 

엄마는 어릴 적 무서워서 그네를 못 탔다고 했다. 시골 나무에 그네를 매어 놓았다는데 가슴이 벌렁거려 도무지 탈 수 없었다고. 그네를 잊고 50여 년을 살다가 다시 만난 그네가 이제 안 무섭다니 신기하겠지.


멀어져 갔다, 다시 온다. 중력을 거슬러 나는 엄마를 힘차게 다시 민다. 언제고 갑자기 그런 옛일들을 떠올릴 이런 봄날이 올 줄을 엄마도, 나도 몰랐지.

오래도 못 타는 그네를, 어제는 내가 잡아 줘야 멈추더니, 당신이 발을 살살 짚어 속도를 줄인다. 

-이제 가자.      

흔들리는 그넷줄 사이로 현란하는 봄빛에 눈부셔하는 나의 손을, 잠시 휘청이다 당신의 두 발로 다시 선 엄마가 이내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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