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원 유학생활 Episode 3: 박사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
미국 박사과정에 입학하였습니다.
석사과정과 달리 박사과정에서는 학비, 건강보험 그리고 생활비를 지원받습니다. 대략 1년에 10만 불 (1억 4천만 원) 정도입니다. 그만큼 이에 따르는 “책임”도 따릅니다. 또한 중간중간 스폰서(학교)는 학생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박사 과정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치 흑백요리사의 1차, 2차 경연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만 박사과정에서의 중간 시험은 흑백요리사와는 다르게 절대평가로 진행됩니다. 제가 재학했던 펜실베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는 크게 두 번의 중간 평가가 있었습니다.
1. Qualifying exam : 당신은 박사과정에 “자격”을 갖추었는가
박사과정 1년 차에는 주로 전공 필수과목을 수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 이 학생이 전공 필수과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박사 트레이닝의 다음 단계인 연구과정으로 넘어갈 준비가 되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Qualifying exam을 치르게 합니다. 이 시험은 각 학교마다 다르며, 제가 재학했던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경우 6시간 동안 이론 및 방법론 과목을 평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전자기기는 금지됩니다.
하루 종일 진행되는 이 시험은 총 다섯 개 과목을 테스트하며, 일정 점수를 넘지 못할 경우 박사과정에서 “탈락”하게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매우 높습니다. 특히 외국인인 저에게 이 스트레스는 더욱 컸는데요. 여기서 탈락하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한 번에 통과할 수 있었으나, 9명의 동기들 중 3명은 통과하지 못했고, 추가로 한 번 더 주어진 기회에서도 2명은 최종적으로 탈락하였습니다.
너무 비정하다고 볼 수도 있는 시험이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학생을 위한 통과의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적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박사과정생이 어떻게 통계학 박사가 될 수 있을까요? 그에게 능력이나 재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의미 없는 희망을 붙잡고 있기보다는, 일찍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다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이 Qualifying exam은 당신이 박사가 될 자격이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을 증명해 보라는 통과의례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시험에 통과하면 “PhD Qualifier”가 됩니다.
2. Candidacy exam : 당신은 박사 “후보”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
1년 차 Qualifying exam에 통과하면 비로소 2년 차 박사과정이 시작됩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전공 선택과목을 수강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박사과정의 꽃인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데요, 2년 차에는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의 연구 주제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연구 주제를 찾았다면, 당신은 PhD Candidate가 되기 위한 Candidacy exam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PhD Candidate, 즉 박사후보생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박사 연구 주제를 박사 프로그램 위원회에 발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원들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며, “조건부 승인”이 날 경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뒤 재심사를 받게 됩니다.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박사과정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이 과정 또한 매우 큰 스트레스를 동반하는데, 그 이유는 주어진 1년이라는 시간 안에 박사논문을 위한 연구 주제를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전공 분야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에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중요한 주제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기한을 훌쩍 넘겨서야 주제를 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시기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구 주제를 정했다면, 이제는 그 주제를 설득해야 할 시간입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Candidacy exam은 45분간 학생이 자신의 연구 주제에 대해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왜 이 연구가 중요한지, 기존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연구를 수행할 것인지, 초기 연구 진행 상황은 어떤지 등을 설명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는 “왜 이 주제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왜 이 연구를 해야 하는지(즉, 왜 당신의 연구를 지원해야 하는지)”입니다. 45분의 발표는 당연히 영어로 진행되며, 이후 박사 프로그램 위원들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그 후 위원들은 투표를 통해 이 학생이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자격이 있는지, 보완이 필요한지, 혹은 부적격인지를 판단합니다.
저의 경우 다행히도 지도교수님의 지도 아래 적절한 연구 주제를 찾았고, 정해진 시기에 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승인”을 받을 수 있었고, 이 시험에 통과하여 저는 PhD Candidate가 되었습니다.
어떤가요?
박사가 되는 과정에는 끊임없는 시험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시험들을 통과하지 못하면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스트레스 만땅인 상황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머리와 몸뿐입니다. 끊임없는 서바이벌 오디션을 거쳐 살아남는 듯한 이 스트레스, 당신은 준비가 되었나요?
무사히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뒤 되돌아보면, 이 과정은 앞으로 박사로서 겪게 될 인생의 축약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어진 데드라인 안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그 과정을 끝까지 감당해낼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세계. 박사과정의 이러한 통과의례는 학생을 훈련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박사가 될 자격이 있나요?”
다음 편에서는 박사과정 속에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