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원 유학생활 Episode 1: 하버드에서 살아남기
하버드의 벽은 높았습니다.
하버드에서는 쿼터제와 학기제가 동시에 운영됩니다. 쿼터제 과목은 8주, 학기제 과목은 16주를 기준으로 진행되죠. 한국 대부분의 대학교이 학기제를 택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첫 학기에는 쿼터제 과목과 학기제 과목을 함께 수강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쿼터제는 정말 강도 높았습니다. 4주 공부하고 중간고사를 보고, 8주 공부하고 기말고사를 보는 - 숨 돌림 틈 없는 진도 속도. 그 사이사이 과제와 퀴즈로 쉴 새 없이 이어져 하루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었습니다. 읽어가야 할 분량도 많아 매일같이 도서관 문이 닫힐 때 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어느새 4주차, 중간고사가 다가왔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유학이었기에 간절했고, 그래서 시험을 잘 보고 싶었습니다. "이정도 열심히 했으니 당연히 잘 볼 거야."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지만, 마음 한켠에는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성적을 잘 받아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마치 오징어게임의 성기훈이 "나는 이 게임을 해봤어요"라고 말하듯 '나는 대한민국 수능으로 단련된 몸이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며 정신을 붙잡고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공부가 부족했던 걸까요, 아니면 영어가 부족했던 걸까요, 결국 20문제 중 17문제만 맞출 수 있었습니다. '세개밖에 안 틀렸네' 라고 하기엔, 저의 점수는 하위 25퍼센트였습니다. 그래도 평균은 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Welcome to Harvard
영어가 모국어였다면 좀 더 잘 했을까? 내가 겉핥기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복기하며 분한 마음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이대로 유학에 실패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날의 시험은 제 부족함과 거만함을 여실히 깨닫게 해준 중간고사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버드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는 조별 과제가 이어졌습니다.
제가 듣는 전공 과목들은 모두 조별과제가 있었고, 팀 구성은 다양했습니다. ROTC 친구가 포함된 미국인 두 명과 저, 이렇게 한 조. 중국인 셋과 저, 이렇게 한 조. 미국인 두 명과 나이지리아 박사과정생, 그리고 저, 이렇게 한 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과 협업하며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고, 그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한국 사람이 제일 근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편견이었습니다. 미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모두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 운동시간을 제외하곤 온종일 과제에만 집중하는 미국인 박사과정친구, 운동조차 하지 않고 공부와 과제에만 몰두하는 중국인 동기. 치열하고 지독하게 공부하는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늘 ‘이 정도면 됐겠지’ 라는 생각으로 멈추는 버릇이 있었는데, 하버드 첫 학기를 지내며 그 습관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99% 정도의 우수한 결과물이 아닌, 100%의 최상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마지막 1%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배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이후 제 연구 활동에서도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은 게 있습니다. ‘공부만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이기적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것도 제 편견이었습니다. 중국인 친구 셋과 제가 한 조였던 과목에서 조별 과제가 있었습니다. 주어진 문제를 시뮬레이션으로 풀고,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하는 과제였죠. 저는 시뮬레이션 파트를 맡았는데, 문제 해결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 부분이 막히자 나머지 팀원들의 일정도 엉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지금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A가 있었습니다. 그는 제 실수 때문에 자신의 분량을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옆으로 와서 “이 문제는 이렇게 접근해보면 돼”라며 차근히 설명해 주었죠. 피곤했을 텐데도, 짜증 한 번 내지 않았어요. 그냥 조용히 제 속도를 기다려주었습니다. 공부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그렇게 누군가에게 보여준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이후 제가 누군가와 함께 일할 때 —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기다려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는 하버드에서 하루하루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