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작은 책방 한 곳은 꼭 들르게 된다.
그렇다 할 볼거리가 없는 지역에 가도, 주변 상권과 대비되는 강단 있는 존재감에 발견의 재미가 있다.
책도 팔고, 때로는 음료도 팔며 지역의 소소한 정보나 작은 가게들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대형 서점처럼 사람이 많거나 활발히 책이 판매되지는 않아도, 동네 책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이 있다.
내가 갔던 책방들은 손님이 많지 않았다.
어떻게 운영이 될까 싶지만, 주인은 최소한의 유지를 하려는 듯 커피를 내려 팔기도 하고, 종종 손님인지 사장인지 모르게 책을 함께 읽거나 무언가 쓰기도 한다.
마치 책 판매는 곁들이는 느낌이다.
나는 왜 작은 책방을 좋아할까?
책이 좋아서라기 보다 크게 수익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구조 속에서 묵묵히, 근근이(?) 유지가 되고 있는 분위기가 꼭 내 삶 같아서 정이 간다. 그리고 보물찾기 처럼 마음을 울리는 책을 발견하게 되는 만족감 때문이다.
특히 예전에 갔던 곳에 다시 가도 그대로 책방이 유지되고 있는 걸 보면 더 반갑다.
나도 그대로.
책방도 그대로.
요즘은 워낙 정을 줬던 가게들도 다음에 가면 텅 빈 채로 사라지는 일이 많아서, 든든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들은 더 고맙게 느껴진다.
<수치심 탐구생활 - 완벽주의와 자기 의심에 대하여>
책 표지부터 범상치 않다.
대전에 한 독립서점에서 발견한 책이다.
대전은 소소하고 조용한 느낌이라 좋아한다.
[다다르다]는 여러 분야의 책들과 독립출판물도 함께 볼 수 있어서 마음이 쏙 드는 곳이다.
"우리는 다 다르고, 서로에게 다다를 수 있어요."
마치 서점의 대표 슬로건처럼 써붙여진 문구도 마음에 든다.
강렬한 빨강.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눈길을 끌었다.
'수치심'으로 아동기와 청년기가 연결되고, 여성과 사회가 이어지고, 세상과 내가 연결되는 큰 고리를 마구 휘두르는 느낌이다. 마치 내 일기장을 보는 것 같아 술술 읽혔다.
우리는 '수치'라는 말을 종종 쓰지만, 그 복잡 미묘한 감정에 대해서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굴러온 녀석인지 그다지 깊이 들여다보 않는다. 깊이 파헤치려는 시도 자체가 금지된 영역처럼 말이다. 수치스럽다는 말로 수없이 얽힌 것들을 한 번에 덮어 버리기도 하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짧게 요약해버리기도 한다.
나는 수치심이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똘똘 뭉치고 굳어진 덩어리 같다. 충격파로는 바스러질 수 있겠으나, 어딘가 몸의 한 부분을 틀어막고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존재. 듣기만 해도 볼과 목이 화끈거리는 열감이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마음의 결석' 같기도 하다. 거칠고 딱딱하고, 뭔가 덕지덕지 묻고 굳어져 이리저리 탈을 낼 것 같다.
책을 읽다가 여러 번 곱씹게 되는 문장들이 있다.
나에게 소속된다는 것은 나를 알고, 편하게 느끼고, 그리하여 나로 자연스럽게 존재함을 뜻한다. 나라는 사람의 경계를 가지고 그 안에서 생각과 감정, 의견과 취향, 태도와 가치관을 자유롭게 느끼고 사고하는 것을 뜻한다.
나로 자연스럽게 존재한다는 건, 말과 행동, 생각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부드럽게 굴러가는 느낌일 거다.
하지만 말(언어)과 행동, 생각이 서로 잘 맞물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인원이 홀수일 때 꼭 한 명은 토라지거나 떨어져 나가던 소꿉친구들처럼, 하나씩 튕겨나가는 녀석들이 있다. 서로를 못 마땅해하거나, 태클을 걸거나...
저 문장이 내 눈에 쏙 들어온 것은, 나에게 필요한 숙제일 텐데.
무언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기억하고 기록해야겠다.
때가 되면 스르륵 하고 언제 삐걱거렸냐는 듯 맞물려 돌아가지는 것들이 있더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나'라는 집으로 돌아 - 돌아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