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0년까지 국민연금이 남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by 윤세윤

“영국 총리가 왜 갑자기 물러났을까?”


코로나19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2022년 가을

영국에서는 취임 44일 만에 총리가 전격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정치적 혼란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영국 연기금을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간

‘자본 시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제로금리의 유혹, 네 배의 레버리지로 독배를 마신 영국 연금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세계 각국은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제로금리에 가까운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했습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었죠.

하지만 이는 연금기금에 직격탄이었습니다.

수익률이 급락하면서 약속된 연금을 지급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궁지에 몰린 영국 연금은 ‘LDI(Liability-Driven Investment, 부채연계투자)’라는

복잡한 이름의 전략에 기댔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영국 국채를 담보로

원금의 4배에 달하는 자금을 빌려 다시 국채에 투자하는,

소위 ‘4배 레버리지’ 상품에 대규모로 손을 댔습니다.

금리가 낮을 때는 이 전략이 통했습니다.

적은 돈으로 4배의 이자를 얻어 연금 지급의무를 충족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었습니다.



금리 인상의 역습, 마진콜 공포가 시장을 덮치다


코로나가 끝나고, 팬데믹 기간 동안 풀린 막대한 유동성은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를 잡기 위해 세계 중앙은행들은 짧은 시간에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극은 시작됐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국채 가격은 떨어집니다.

이는 기본적인 금융 상식이죠.

그런데 영국 연금이 투자한 상품은 단순한 국채가 아니었습니다.

4배의 레버리지를 일으킨 파생상품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0.25%였던 금리가 1%로 오르면,

국채 가격 하락폭은 레버리지 비율만큼 증폭되어 원금을 순식간에 잠식해 버립니다.

국채 가격이 폭락하자,

돈을 빌려준 금융사들은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담보 가치가 떨어졌으니,

즉시 현금을 채워 넣으라는 요구였습니다.

현금이 부족했던 연기금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보유하고 있던

영국 국채를 내다 팔기 시작했고,

이는 다시 국채 가격 폭락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영국 금융시장이 붕괴 직전까지 내몰린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영국 중앙은행이 긴급 개입해 국채를 매입하며 겨우 급한 불을 껐지만,

이 사태를 촉발한 감세 정책을 발표했던

총리는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60년, 우리 연금은 안녕할까?


영국 사태는 자본시장에서의 ‘작은 오판’ 하나가

얼마나 엄청난 재앙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제 시선을 우리, 대한민국으로 돌려봅시다.

현재 한국 국민연금의 고갈 시점은 2060년 정도로 예측됩니다.

그때까지 기금이 아무런 불상사 없이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모릅니다.

수십 년의 운용 기간 동안, 단 한 명의 운용 책임자라도

영국과 같은 치명적인 오판을 내린다면

우리의 소중한 노후 자금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살얼음판 같은 현실 속에서 지금 정치권에서는 연금개혁 논의가 한창입니다.

핵심은 ‘더 내고, 더 늦게 받자’는 것입니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젊은 세대의 보험료율을 높이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것이 과연 옳은 방향일까요?

진짜 문제는 ‘가치 하락’,

미래의 200만 원은 오늘의 50만 원일 뿐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입니다.


지금의 M2 통화량 증가 속도를 고려하면,

우리가 2040~50년에 받게 될 200만 원의 가치는

현재의 50만 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시중에 돈이 계속 풀리면서 화폐의 구매력은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젊은 세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내고,

수십 년 뒤에는 푼돈이나 다름없는 연금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불합리한 구조입니다.


영국 연금 사태와 급격한 인플레이션은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받을 국민연금은

언제 가치가 없어져도 어쩌면 아예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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