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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수누나 Apr 05. 2023

싱글맘, 키우고자 하는 마음

시작점과 종착지를 찾아서

태생적으로 동물을 좋아하는 나. 그런 내가 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녀석들과 함께 해도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




우리 엄마왈, 아무리 애들이 동물을 좋아한다지만 넌 참 유난스러운 애라고 했다. 맞는 말씀.


초등 1학년 생의 나는 하굣길에 만난 커다랗고 순한 강아지를 무작정 들쳐 안고 집으로 가기도 했다. 꼬질해서 주인이 없는 것 같으니 우리가 키워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초딩을 보고 엄마는 기겁을 하셨다. 주인이 있으면 얼마나 찾겠냐며, 있던 자리에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는 엄마의 타이름으로 결국 울며 데려다줬다.


아빠와 산둘레 산책로를 걷다가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새를 발견했다. 나의 고집으로 그 아기새를 그대로 들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마주한 엄마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있던 곳에 다시 두라는 엄마의 불호령으로 결국 울며 데려다줬다.


어느 주말,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차 한 대가 그 근처에 멈추더니 강아지만 쏙 내려놓고는 그대로 가버렸다.(아마도 유기현장이었을 듯) 기회는 찬스다, 냉큼 안아 들고 집으로 들어간 나를 보고 엄마는 이제 체념한 듯했다. 동물병원에 데려가보니 피부병이 굉장히 심했는데 1997년 당시 치료비 견적만 25만 원이 넘었다. 엄마는 나의 강력한 의지를 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건지 별말 없이 그 강아지를 치료하고 집에 들였다.


성인이 되어서는 더 심했다. 돈도 벌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니 양서류, 파충류, 갑각류, 설치류 등 온갖 생물들을 키우기도 했다. 그뿐이랴, 길가에 굶주린 고양이들에게 매일같이 밥과 물을 제공하고 심지어 그중 몇은 집에 들이기도 했다.


어느덧 전형적인 캣맘이 된 나. 밖에서 돌보는 고양이들도 많았고 집안에 들인 길고양이도 많았다. 출산이 임박했을 때 들였던 녀석이 곧 7마리의 새끼를 낳아 그렇게 집에 고양이만 총 11마리가 있었다.


그 애들을 제대로 다 케어하지도 못하면서도 자꾸 또 무언가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다행히도 그땐 그런 나를 제지해 줄 구 남편(결혼 전)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식구 늘리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갑작스레 임신을 하고 출산도 했다. 돈벌이도 하며 동물친구들을 돌보고 독박육아까지 하다 보니 몸이 고됨은 물론이고 정신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쯤 되면 지쳐서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더 이상 들지 않아야 정상이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지극히 비정상이었다.


스스로에게 놀라 심각성을 깨닫고 해결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 전에 동물 친구들을 다른 곳에 입양하기로 했다. 깜찍하기 그지없었던 아기 고양이들은 금세 좋은 가족을 찾을 수 있었고 엄마 고양이도 한 미모 했던 이유인지 한 마리의 아기 고양이와 함께 새 가족의 품으로 갔다.


하지만 나이가 많고 예쁘지 않은 나머지 녀석들을 데려가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남은 세 녀석만 나와 평생을 함께 하게 되었다.




SSUL 7.

이혼을 확실히 결심한 직후 왜인지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졌다. 당시 남편과는 별거 중으로 이미 사실상 이혼과 다름없었기에 그 사람도 더 이상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난 ‘키우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 강아지 한 녀석을 또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짜 완전히 이혼을 했다.


슬프지는 않았다. 다만 늘 곁에 있던 사람의 부재로 인한 허함을 '키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달래려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래서 '키우고자 하는 마음'의 출발점이 어디일까 생각해 봤다.


먼저 내 상태가 애니멀 호더와 매우 가까웠다는 가정하에 그들의 심리를 찾아보았는데 대표적으로 강박 장애와 수집광 장애의 정신 장애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단다. (미국 정신의학회(APA)에서 발간한 DSM-5 책자에서 분류)


자아가 불안을 느낄 때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강박 장애'. 그리고 주로 어린 시절 주 양육자인 어머니와 정서적 애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거나 배신을 당한 경우 동물에게 과도한 애착을 느끼거나 집착을 하는 '수집광 장애'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즉,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현실에서 불안과 실망을 느끼지 않으려고 동물을 '수집'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게 바로 애니멀 호더이며 그게 곧 나였다.


불우하진 않았지만 행복하진 않았던 독립 전 시기, 엄마는 밖으로만 나도는 아빠만 바라보며 어렸던 나를 감정 쓰레기통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런 나의 자아가 단단할 리 만무했다.


구 남편과 함께한 결혼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서 했다던 말과 행동들은 가스라이팅이었으며 그게 나를 더 허기지게 만들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 더 이상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늘 비어있던 어딘가가 가득 채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혼으로도 채우지 못한 불안이 이혼하고 다시 혼자가 되니 사라졌다. 이거 완전 모순 아니야?


아니다! 삶은 가끔 넘치지 않아야 행복할 때도 있다.


내 삶은 된장찌개인데 달달해지고 싶다고 해서 설탕을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난 나의 삶에서 설탕을 뺐을 뿐이다. 게다가 이혼 후에도 내 곁엔 여전히 맹목적인 사랑을 주는 아들 녀석과 강아지, 고양이들이 있다. 지금 내 삶은 아주 맛있게 끓여진 된장찌개와 같다.


- 긴 시간을 지나 마침내 '키우고자 하는 마음'의 종착지에 완전히 다다른 이야기 마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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