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마음으로 봉사하다 :작은 손길, 큰 울림> 시리즈 6 (2)
돌이켜보면, 내가 사회복지라는 길을 걷게 된 시작점은
캐나다에서 만난 한 여성, 암 투병 중이던 그녀와 함께한 사계절의 기억이었다.
겨울이면 손끝을 타고 전해지던 미세한 떨림,
봄이면 창밖의 햇살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나누던 조용한 미소,
여름과 가을에는 가벼운 산책과 차 한 잔 속에 스며들던 작은 온기.
그 시간들은 이민자로서 느끼던 고립과 연약함 속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 만들어내는 힘이 얼마나 단단한지 처음 알려주었다.
그 경험은 내 마음속에 씨앗처럼 심겨
결국 나를 사회복지의 길로 이끌었다.
화면 속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만남
대학 3학년 겨울, 나는 서부 캐나다에 기반을 둔 인종차별 대응 비영리 단체에서
3개월 동안 온라인으로 봉사할 기회를 얻었다.
코로나로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던 시기였기에
토론토에 있으면서도 매일 화면 속 작은 네모 칸으로
동료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일할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 화면 속 사람들은 이상할 만큼 따뜻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그 작은 확신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지원서 제출부터 인터뷰까지 쉽지 않았지만,
마음의 어느 지점에서 “이건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라는 단단한 감정이 조용히 올라왔고,
그 감정이 끝까지 나를 밀어주었다.
코로나의 그늘 아래 있었던 사람들
코로나로 멈춰선 일상 속에서
마트에서의 기침 하나에도 공기가 얼어붙던 때.
특히 아시아계 여성들이 겪는 편견과 두려움은
삶의 가장 약한 부분을 흔들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모욕을 들은 여성,
아이 손을 잡고 걷다 갑작스러운 위협을 마주한 어머니,
이유 없이 의심받고 겁에 질린 사람들.
대부분은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어떤 기록을 남겨야 하는지조차 모른 채
두려움 속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내가 활동하던 단체는 바로 그러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곳이었다.
나는 피해 사례를 모으고 정리해 정책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온라인 인터뷰에서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으며,
보고서를 검토하고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운 절차와 서류들을
함께 붙잡고, 흔들리는 손을 조용히 받쳐주는 일.
그 과정을 지나며 한 가지 사실이 또렷이 마음에 새겨졌다.
“고립은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모름’ 때문에 더 깊어진다.”
길이 있음에도 그 길을 모르면
사람은 어둠 속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아시아계 커뮤니티가 함께 만든 연대의 장
단체 안에서는 또 다른 흐름도 있었다.
아시아계 커뮤니티들이 모여
“우리는 서로를 지지한다” 는 목소리를 만드는 일.
한국,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일본…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손을 맞잡는 광경은
그 자체로 희망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캐나다 정부의 인종차별 대응 정책을 정리해
시민들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작은 안내 자료를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다.
전문 용어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고,
누군가의 삶을 지켜주는 도구가 되도록 구성한 자료.
작지만 실질적인 힘을 가진 연대의 산물이었다.
그 시절, 매일 마음속에 새기던 문장이 있다.
“We go farther when we go together.”
함께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 믿음은 지금도 나를 붙들어 주고,
연결의 힘을 더는 의심하지 않게 해준다.
사회복지의 본질—틈을 잇는 일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확신했다.
내가 배운 사회복지는 단순히 ‘도와주는 일’이 아니었다.
제도와 사람 사이의 틈을 잇고,
말하지 못하는 목소리를 대신 지켜주며,
누군가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일.
코로나의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실이 누군가의 내일을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조용한 연대의 힘을
지금도 마음 깊이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