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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민자의 마음으로 봉사하다:작은 손길, 큰 울림> 시리즈 6 (3)

by 이민자의 부엌
ChatGPT Image Dec 8, 2025, 03_17_34 PM.png 이미지 제작 도움: ChatGPT (AI 이미지 생성)


대학교 1학년이던 그해, 새로운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기 위해 허둥대던 나는, 어느 날 작은 커뮤니티 센터의 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아주 작은 바람이 일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어와 제도의 벽 앞에서


그곳은 기부금과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작은 공간이었고, 대부분은 이민자이거나 연세가 많은 분들이었다.
언어의 벽 앞에서, 낯선 제도 앞에서, 잠시 멈추어야만 했던 이들에게 이 센터는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작은 문이 되어주었다.


나는 생활 필수품을 나누고, 새 이민자의 정착을 돕고, 통역과 상담, 세금 신고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특히 세금 신고는 많은 노년층과 새 이민자들에게 매년 반복되는 큰 장벽이었다.
그저 서류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라는 경계가 제도와 사람 사이에 놓인 오래된 간극이었다.


작은 상담이 만든 변화


어느 날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직장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인권센터에 신고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매니저님과 직접 이야기해보신 적 있으세요?”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 이야기해보세요. 매니저님에 대한 좋은 점을 먼저 전하고, 그다음 본인이 느낀 불편함을 솔직히 나눠보세요. 때로는 공감이 오해의 문을 가장 부드럽게 여는 신호가 되기도 해요.


며칠 후, 그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오해였던 부분이 많았어요. 이야기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속에서 오래된 숨을 내쉬었다.
모국어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계가 쉽게 어긋나고, 마음이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작은 목소리에 답하는 일


그 경험 이후,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정한 지원은 무엇일까?”
“누군가의 권리가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묻히지 않게 하려면 나는 어떻게 서 있어야 할까?”


그동안 배워온 사회복지 지식과 현장에서 만난 많은 얼굴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특히 암 투병 중이던 한 여성 환자가 남긴 말이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돌봄이란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듣고, 작은 신호에도 응답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사람과 제도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겠다.”


보이지 않는 연결을 만드는 일


내 역할은 상담과 통역을 넘어섰다.
정부 보조금 신청을 도왔고, 센터의 존재를 지역사회에 알렸으며, 누군가의 도움이 실제로 그 사람에게 닿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도 맡았다.


지도교수님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곤 했다.
“사회복지는 개인, 가족, 집단, 지역사회가 더 나은 기능을 하도록 돕는 일이다.
현장의 빈틈을 발견하면 숨기지 말고 알려라.”


현장에서 만난 이민자들의 어려움은 제도의 빈틈이 얼마나 선명하게 존재하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빈틈을 메우는 일이야말로 사회복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나는 현장에서 배웠다.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연결을 만드는 힘이며 때로는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 남성의 전화가 울리던 날을 떠올릴 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많은 이민자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오늘도 마음으로 되뇌인다.


나는 작은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안에 담긴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누군가의 하루에 조용히 빛을 더해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삶에 가장 큰 울림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현장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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