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와 함께한 하루

<여행, 풍경, 그리고 사랑> 시리즈 8 (5)

by 이민자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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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서 동쪽으로 두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달리면, 온타리오 호수 근처에 Port Hope라는 자그마한 도시가 나타난다. 외부에 크게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해마다 늦봄이나 가을이 되면 이 도시는 조금 특별해진다.


연어들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알을 낳기 위해, 자신이 태어났던 강으로 되돌아오는 연어들의 행렬. 온타리오 호수에서 시작해 포트호프를 관통하는 가나라스카 강(Ganaraska River)을 따라 연어들은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이 계절의 Port Hope는 연어 회귀(Salmon Run)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잠시 북적인다.



살아 있는 강 앞에서


바람은 제법 차가웠지만 하늘은 맑았고, 햇살은 밝았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강가에 자리를 잡고 물속을 내려다보는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우와…”


정말로 물속이 연어로 가득했다. 물반, 연어반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커다란 은빛 몸통들이 서로 부딪히며 끊임없이 상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연어들은 점프를 하기 위해 마치 줄을 서 있는 것처럼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마리가 힘껏 몸을 튕겨 올렸다가 미끄러지듯 다시 떨어지면, 어디선가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시 도전.


성공적으로 물 위를 넘는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졌다.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자연스럽게 응원이 오갔다. 그날의 강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같은 풍경, 각자의 마음


연어의 회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휴대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아이에게 연어의 생태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강 한쪽에서 조용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연어 한 마리가 낚싯대에 걸리는 순간, 그 긴장은 보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졌다. 연어는 살기 위해 온몸으로 버텼다. 물살을 가르며,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몸을 뒤틀고, 튀어 올랐다.


그 장면 앞에서,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연어는 낚싯대 끝에서 제압되었다.
방금 전까지 모두가 응원하던 존재가, 순식간에 ‘잡히는 존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자연의 위대함을 바라보던 시선이, 인간의 욕망과 규칙 속으로 갑자기 끌려 들어가는 느낌. 연어의 몸부림이 멈추자, 강물 소리마저 잠시 잦아든 것처럼 느껴졌다. 그 짧은 정적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규칙이라는 이름의 약속


다행히 이곳에는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엄격한 규칙이 있다. 연어를 잡더라도 암컷은 반드시 다시 풀어줘야 하고, 수컷만 허용된다. 손으로 직접 잡는 것도 금지, 낚싯대 외 다른 도구 사용도 허락되지 않는다. 낚시 라이센스에 따라 잡을 수 있는 마릿수도 제한된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규칙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을 알고 나면 마음이 조금 달라진다. 연어는 일생에 단 한 번 산란을 한다. 산란을 마친 뒤 극심한 체력 소모와 면역력 저하로 죽음을 맞이하고, 그렇게 죽은 연어들은 강의 생태계에 중요한 영양분이 된다.


그러니 이 규칙은 단순히 ‘잡아도 되는가, 안 되는가’ 의 문제가 아니다. 죽음이 또 다른 생명을 키워내는 순환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경계선, 인간이 자연 앞에서 지켜야 할 약속처럼 느껴졌다.



단 한 번의 돌아옴


연어의 삶은 되돌아옴으로 완성되고, 사라짐으로 다음 생명을 돕는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모습이 전보다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돌아온다는 것은,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뜻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결국 한 번은 지나가야 하는 길일 것이다.


그 생각 끝에 나는 문득, 이민자로서의 내 삶을 떠올렸다. 나 역시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을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또 다른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돌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원래 자리로의 복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 돌아감은 마음의 방향일 뿐, 발걸음의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



낯선 곳에서 만난 온기


연어 회귀를 충분히 보고 나니 목이 말랐다. 근처 작은 컨비니언스 스토어에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보며 눈을 크게 뜨셨다. 한국분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한국인을 만나는 일이 흔하지 않은지, 아저씨의 말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대화가 이어졌다. 아저씨는 커피와 음료수를 내어주며 웃으며 말했다.


“이런 데까지 오셨네요. 반가워서 그래요.”


그 말 한마디에 이 하루의 온도가 조금 더 올라갔다. 낯선 곳에서 만난 작은 친절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마치 연어가 긴 여정 중 잠시 쉬어가는 작은 쉼터처럼.



여행, 풍경, 그리고 사랑


Port Hope의 연어 회귀는 그저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살아 있으려는 의지, 돌아감의 의미, 그리고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한데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느꼈다. 여행은 꼭 멀리 가지 않아도, 풍경은 꼭 특별하지 않아도, 사랑은 아주 작은 친절에서도 충분히 발견될 수 있다는 것.


연어는 제 갈 길을 갔고, 우리는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 강에서 본 장면들과, 컨비니언스에서 건네받은 따뜻함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게 만든 하루였다.
어쩌면 우리도 각자의 속도로, 자신이 향해야 할 방향을 향해 천천히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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