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풍경 사이, 몽트랑블랑의 기억

<여행, 풍경, 그리고 사랑> 시리즈 8 (9)

by 이민자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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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앞두고 설렘보다 걱정이 먼저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이번 몽트랑블랑 여행이 그랬다.


남편에게 몬트리올 출장이 잡혔다. 평소 같으면 혼자 다녀오는 일정이었지만, 이번에는 나도 함께하기로 했다. 출장이라는 틈에 짧은 여행을 덧붙여 2박 3일의 몽트랑블랑 여행을 계획했다. 오랜만의 부부 여행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가볍게 들떴다.


하지만 출발을 며칠 앞두고 남편의 허리디스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행보다 일이 우선이었고, 우리는 예정대로 몬트리올로 향했다. 남편의 얼굴에는 통증과 긴장이 묻어 있었지만, 내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차 안은 우리 둘만의 작은 세계가 되었다. 교대로 운전하며 라디오 음악을 흥얼거렸고, 사소한 이야기에도 웃음이 났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대화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창밖으로는 늦가을의 풍경이 이어졌고, 길은 끝없이 펼쳐졌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몬트리올의 호텔에 도착해 있었다.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듯했다.


남편은 허리를 부여잡고도 행사에 성실히 참석했다. 몸이 힘들어도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려는 그의 모습은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온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내일은 우리 여행이잖아”
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조용히 따뜻해졌다.


다음 날, 우리는 몽트랑블랑으로 향했다. 남편의 상태가 여전히 걱정됐지만, 이미 예약한 숙소와 기대에 부푼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몬트리올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은 점점 고요해졌고, 숲은 깊어졌다. 단풍잎이 물든 가로수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차창을 타고 들어와 마음을 한결 평온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옆자리의 남편을 말없이 살피며 달리는 동안,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순간에는 말보다 마음이 더 많은 것을 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몽트랑블랑에 도착하자, 마을은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유럽풍 건물과 아기자기한 상점, 작은 카페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쌀쌀한 공기 속에서도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와 이곳이 얼마나 사랑받는 여행지인지 말해주는 듯했다.


우리는 가장 따뜻한 옷을 꺼내 입고 곤돌라에 몸을 실었다. 곤돌라는 하늘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점점 작아졌고, 산의 능선이 가까워질수록 설렘이 커졌다. 창틈으로 스며드는 선선한 가을 바람과 케이블이 흔들릴 때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 단풍으로 물든 산의 기운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내 마음은 설렘과 긴장 사이에서 조용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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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산 아래의 마을과 멀리 이어진 숲, 하늘과 맞닿은 능선이 마치 다른 세계로 초대하는 듯했다. 작은 카페 창가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남편이 건강했다면 함께 걸어서 오르는 코스를 선택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스쳤다. 하지만 그 순간의 고요함이 모든 아쉬움을 덮어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남편의 허리는 더 아파 보였다. 차에서 내릴 때마다 찡그리는 얼굴을 보는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일정을 줄이고 조용히 쉬기로 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날 밤, 창밖으로 내려앉은 몽트랑블랑의 고요함이 유난히 깊게 마음을 감쌌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의 상태가 더 악화된 것을 보고 나는 망설임 없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남은 일정이 아쉬웠지만,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남편은 미안한 듯 웃었고,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괜찮아. 우리는 또 올 수 있어”
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 그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도 운전대를 함께 잡아주었다. 그 배려가 다시금 내 마음을 채웠다.


짧았지만 깊은 여행이었다.
풍경보다 오래 남는 것은 결국 함께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여행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사랑과 인내, 그리고 함께하는 의미가 피어난다.


언젠가 남편의 허리가 완전히 회복되면, 우리는 다시 이곳을 천천히 걸을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이번 여행의 기억을 조용히 마음속에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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