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가, 그날 곤돌라에 올랐다

<여행, 풍경, 그리고 사랑> 시리즈 8 (10)

by 이민자의 부엌
Copilot_20260106_205031.png


지난겨울 한복판, 나는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3박 4일의 짧지만 소중한 휴가를 계획했다. 목적지는 캐나다 서부의 보석 같은 도시, 밴쿠버. 토론토의 매서운 바람을 뒤로하고, 조금은 온화할 거라는 기대를 품고 짐을 꾸렸다.


비행기 안에서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과자를 나눠 먹는 그 시간조차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설렘을 가득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5시간 30분만에 우리는 밴쿠버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은 빗나갔다. 밴쿠버의 겨울은 토론토 못지않게 차가웠고, 공기는 살짝 얼어 있었다. 도시 전체가 차분한 회색빛 속에 잠겨 있었고, 바람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픽업한 우리는 호텔로 향했다.


짐을 풀고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바닷가 근처 한인 스시집으로 향했다. 바다의 기운을 품은 듯 생선회는 놀라울 정도로 신선했고, 그 맛은 여행의 시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따뜻한 밥과 국물 한 숟가락이 몸을 녹여주었고, 우리는 다음 날을 위해 일찍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이튿날, 호텔을 나서 태평양을 끼고 북으로 향하는 99번 도로, Sea to Sky Highway를 달렸다. 왼쪽엔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 오른쪽엔 웅장한 바위산이 이어져 장관을 이루었다. 남편은 그 여정의 중간쯤 있는 Sea to Sky 휘슬러 곤돌라를 손꼽아 기다려왔고, 그 설렘은 나에게도 전해졌다.


하지만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높은 곳에 오르면 다리가 떨리고 손에 땀이 나는 나였지만, 하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남편의 설렘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Sea to Sky Gondola’ 에 몸을 실었다. 곤돌라가 서서히 하늘로 오르자, 나는 숨을 죽인 채 옆 창밖만 바라보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옆으로 펼쳐진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눈으로 뒤덮인 산맥과 빽빽한 수림, 그 사이사이로 드러나는 바위와 호수는 마치 세상의 모든 색이 하얀빛으로 물든 듯했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바위인지 분간조차 어려울 만큼 자연은 경이로웠다. 곤돌라가 흔들릴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남편이 건네는 따뜻한 손길이 나를 안정시켰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휘슬러 시내는 점점 작아졌고, 하늘에 닿을 듯 아찔한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마저 신선하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번갈아 보이는 설산과 수목, 빙하와 호수의 조화는 마치 꿈속을 걷는 듯했다.



정상에 도착하자, 작은 마을처럼 꾸며진 공간이 우리를 맞이했다. 따뜻한 커피를 파는 카페, 향긋한 음식 냄새가 풍기는 식당, 여행의 추억을 담을 수 있는 기념품샵까지. 사람들은 두꺼운 패딩을 입고 눈 위를 조심스레 걸었다.


날씨가 맑은 날엔 밴쿠버 시내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온통 눈으로 덮인 산들만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눈 덮인 풍경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마치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고요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숨결을 느꼈다.


정상에는 여러 갈래의 산책길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 길을 마음으로만 걸었다. 사전 정보 없이 떠난 여행이라 등산화, 등산스틱, 아이젠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장비가 있었더라도, 산속에서 겨울잠을 깬 곰을 마주칠까 두려워 발걸음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순간,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정상에는 짧지만 인상적인 출렁다리도 있었다. 산책길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였지만, 그 흔들림은 나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 다리가 살짝 흔들릴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지만, 남편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아, 나만 믿어.” 그 말 한마디에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우리는 다리를 건너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다리를 건너고 난 뒤, 나는 작은 성취감에 미소를 지었다. 남편도 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하산길,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우리는 눈으로 덮인 만년설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조금 더 여유로웠다. 이미 한 번 극복한 두려움 덕분인지, 나는 창밖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그 풍경은 마치 꿈처럼 아름다웠고, 우리 부부의 눈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 안에는 사랑과 용기, 그리고 자연의 위대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휘슬러 근처 겨울은 아직 차가웠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따뜻한 추억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추억은 오래도록 우리 마음속에 눈처럼 소복이 쌓여 있을 것이다.


여행은 늘 완벽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두려움도, 예상치 못한 추위도, 준비되지 않은 순간들도 모두 여행의 일부가 된다. 중요한 건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한 사람이다. 이번 여행이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SeaToSkyGondola #WhistlerWinter #CanadaTravel #CoupleTravel #WinterEscape #부부여행 #사랑과추억 #겨울풍경 #용기와도전 #힐링여행

이전 09화사랑과 풍경 사이, 몽트랑블랑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