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름, 두 번째 삶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시리즈 9 (1)

by 이민자의 부엌
Copilot_20260112_091009.png


처음 캐나다 땅을 밟았을 때, 풍경도 언어도 아닌,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를 가장 낯설게 만들었다.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그 소리는 어디선가 비틀리고, 어딘가 어색하게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존재하게 될까’라는 질문과 맞닥뜨렸다.


평생 들어온 그 이름이 이곳에서는 다른 형태로 들려왔다. 억양이 달라지고, 모음이 길어지고, 자음은 낯선 방향으로 휘어졌다. 그들이 부르는 이름은 분명 나였지만, 동시에 나 같지 않았다. 이민자의 삶은 때로 아주 사소한 지점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정성껏 지어주신 이름은 내가 세상과 처음 연결된 언어였다. 그 이름에는 부모님의 바람과 집안의 역사, 그리고 나라는 존재의 첫 문장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는 그 이름에 응답하며 나 자신이 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분류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했고, 조금은 슬펐다. 마치 나의 일부가 번역되지 못한 채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영어 이름을 선택해야 했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선택지가 많아서가 아니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반복되는 삶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뒤에 두고 새로운 이름을 고른다는 일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내가 이곳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었다.


처음 영어 이름을 입었을 때, 나는 낯선 옷을 걸친 사람처럼 어색했다. 스스로 그 이름을 말할 때마다, 내가 나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그림자를 대신 읽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이름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이 땅에서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부터 나는 두 이름의 경계에서 나를 바라보는 일이 시작되었다.
한국 이름은 나의 뿌리였다. 그 이름을 부르면 어린 시절의 기억, 부모님의 목소리, 한국의 공기와 계절이 함께 떠올랐다.
반면 영어 이름은 이곳에서의 나를 상징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던 용기, 낯선 규칙을 배우며 적응해야 했던 시간, 그리고 이민자로서의 삶이 그 이름 안에 담겨 있었다.


캐나다에 온 지 5년쯤 되었을 무렵, 커뮤니티 센터에서 자연스럽게 영어 이름을 먼저 적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순간 손이 멈췄다. 언제부터 나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름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편리함은 있었지만, 그만큼의 거리감도 함께 느껴졌다. 한국 이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편해졌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시키면서도 동시에 낯설게 만들었다.


두 이름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를 끌어당겼고, 나는 그 사이에서 흔들리기도, 길을 잃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국 이름을 부를 때 느껴지는 죄책감과 영어 이름으로 살아갈 자유 사이에서 마음이 갈라졌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점차 깨닫게 되었다. 두 이름은 서로를 지우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더 넓고 깊게 만들어주는 두 개의 축이라는 사실을.


캐나다에 온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이제는 어딜 가나 영어 이름이 먼저 튀어나온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봉사활동을 할 때에도, 남편의 회사 파티에서도, 이웃들과의 대화에서도 나는 그 이름으로 소개되고, 평가받고, 일한다. 그럴 때면 마음 한켠이 살짝 허전하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잠시 뒤에 두고 온 듯한 기분. 그러나 그 허전함 속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낀다. 두 이름이 함께 만들어온 나의 시간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49세에 다시 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학생으로서의 이름, 엄마로서의 이름, 이민자로서의 이름이 겹겹이 쌓이며 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작은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나는 칼리지와 4년제 대학을 동시에 마무리하며 내 삶의 또 다른 장을 열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두 이름은 그 시간 동안 나를 붙잡아주었다. 하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잊지 않게 해주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어디로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지금 나는 사회복지사다. 누군가의 삶을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짊어지며, 그들이 다시 자기 이름을 되찾도록 돕는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주 생각한다. 이름이란 결국 존재를 부르는 방식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두 이름을 살아온 사람이기에 타인의 이름을 더 조심스럽게, 더 깊이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때로는 사람들이 내 영어 이름만 부를 때, 내 안에서 한국 이름이 조용히 목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나에게 뿌리이자 자존감이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게 해주는 작은 울림이다. 반대로 영어 이름으로 살아가는 삶은 나를 세상에 조금 더 자유롭게 펼치게 해주었다. 두 이름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를 이끌지만, 결국 같은 곳에서 만나 나를 완성시킨다.


낯선 땅에서, 낯선 이름으로 살아가며 나는 나를 다시 만났다. 그 만남은 때로 혼란스럽고, 때로 벅차고, 때로 고요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배웠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결국 나는 나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두 이름은 나에게 과거와 현재, 뿌리와 길을 동시에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리고 나는 그 거울을 마음에 품고 오늘도 또 한 걸음 나아간다.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 만남이 나를 더 깊고 온전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두개의이름 #이름의의미 #이민자의삶 #정체성에세이 #낯선곳에서나를만나다 #캐나다이민 #이중정체성 #이름과존재 #나를부르는방식 #삶의전환점 #중년의성장 #자기서사 #브런치에세이 #삶을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