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체 사랑 -2부

정희의 영어트라우마

by 일도

교회 사모는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정희의 미국 정착을 도왔다. 키가 크고 멋스러운 외모에, 의상도 자주 바꾸며 정장과 드레시한 옷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녀는 정희를 마치 딸처럼 보살폈다.


“정희 자매, 시차 때문에 좀 힘들지?”


“사모님, 많이 좋아졌어요.”


정희도 환히 웃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여긴 밤에 함부로 나가면 안 돼요. 총기 소유가 합법인 나라라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꼭 조심해야 해요.”


“장 보러 갈 땐 나랑 같이 가요. 여긴 차 없으면 정말 아무 데도 못 가.”


그러다 사모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인형과 그림책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우리 아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건데, 이젠 자매님네 아이가 쓸 때가 됐네.”


정희는 눈을 반짝이며 여러 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의 말이 연신 입에서 흘러나왔다.


정희는 교회에서 유치부를 맡게 되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아들 동연은 이제 세 살. 정희는 동연을 업은 채 유치부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봉사에 나섰고, 식당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교인들은 그를 자연스럽게 ‘석준 사모님’이라 불렀다. 석준도 ‘전도사님’이란 호칭으로 불리며 점차 교회에 스며들었다. 명석하고 해박한 석준, 얼굴도 곱고 무엇이든 열심인 정희. 부부는 점차 교회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아갔다. 미국 땅의 작은 교회, 그 안에서 그들의 두 번째 인생이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준석이 한국에서 받아온 석사는 미국에선 인정되지 않아, 학사 수준으로만 평가되었다. 그는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긴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그사이 정희는 둘째 아이를 낳았고, 어느덧 그 아이도 세 살이 되었다. 큰아들 동연은 무럭무럭 자라 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준석이 박사 과정을 시작하자 학비와 생활비는 감당하기 벅찼다. 정희는 교회 사모의 소개로 옷가게 점원 일을 시작했다. 틈틈이 영어회화를 익혔지만, 막상 매장에 서니 말문이 막히고 입이 얼어붙었다.


그 옷가게는 주로 저렴한 옷을 파는 곳이었다. 고객 대부분은 아시아계, 흑인, 히스패닉 사람들이었고, 그중엔 인격적으로 무례한 이들도 있었다.


어느 날, 히스패닉계 중년 여성이 정희 앞에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영어를 쏟아냈다. 사장을 부르라는 듯했고, 조롱과 욕설이 섞인 말투였다.


“Even babies can’t handle this properly.

If you can’t do it right, why are you even in business?

Claiming to be the owner, huh?

These people haven’t tasted failure yet.

Is this what you call clothing? You’re selling this?”


정희는 그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적대적인 기운과 조롱의 뉘앙스는 뼛속까지 전달됐다. 얼굴이 화끈달아올랐고,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렀다. 숨이 턱 막혔다.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다리가 휘청였다. 낯선 땅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무방비로 노출된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동요 직원이 이 모습을 보고 급히 달려와 정희를 뒤로 물렸다. 그는 능숙하게 손님을 달래며 상황을 수습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정희는 참았던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고향의 언니들이 간절히 보고 싶었고, 어느 날은 흐느끼며 전화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석준에게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혹여 그의 마음에 짐이 되어 박사 과정에 지장을 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정희도 조금씩 적응해 갔다. 다행히 교회에 종일반이 생겨 둘째를 맡길 수 있었고, 현장에서 손님을 직접 상대하면서 영어 실력도 크게 늘었다. 이제는 일상 대화에 무리가 없었고, 발음도 또렷해져 회화만큼은 석준보다 더능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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