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에 대하여

친함으로 변신한다(오아시스)

by 일도

주역 8번 水地比(수지비)

나는 元永貞원형정, 친한으로 변신한다(오아시스).


수지비는 땅 위에 물이 있는 형상이다. 比자는 두 사람이 우측을 향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글자이다. 오늘날 비교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본래는 ‘친하다’나 ‘친숙하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글자이다.


서로 친밀하게 지내는 세상이다. 지수사와 수지비는 한 쌍인데, 전쟁과 평화이다. 전쟁을 뒤집으면 평화가 된다. 땅 위에 물이란 오아시스를 의미한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지하에 저장된 물이 단층이나 균열을 따라 솟아오르면서 형성되며, 주변의 식물이 수분 증발을 막아 오랜 기간 유지된다. 각종 동물들이 모여들고, 물이 풍족함으로 싸우지 않는다.


이사야 11:6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끌며.”


이 구절은 기독교의 ‘하나님의 나라’를 묘사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법계法界 “라고 한다. 법이란 물이 흐르는 것처럼, 계는 밭들이 나뉘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법계는 곧 이상세계를 의미한다.


수지비를 통해 내가 어떻게 오아시스 같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괘사(卦辭)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方來 後夫凶


比는 친밀함을 뜻하며,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나타낸다. 原筮원서는 ‘근원에서 점을 치다’라는 뜻이다. 元永貞원영정은 시작, 영원, 바름을 의미한다. 이 세 마디는 진선미(眞善美) 또는 뿌리와 가지와 열매와 같은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뿌리는 근원이고, 가지는 곧음, 열매는 자기 복재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하시며,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또한, 예수님은 신자들이 그에게 전한 말씀을 통해 이미 깨끗해졌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농부로서 原筮원서 와 같은 분이다. 근원이라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貞정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 음을 받은 자이다. 그리스도에 진정으로 붙어 있는 가지라면 영원한 생명을 맺는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元永貞원영정의 '원'은 공간을 초월하고, '정'은 나를 초월하며, 그리고 '영'은 시간을 초월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不寧方來불영방래, 편안하지 않은 자들이 찾아온다.

마태복음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실제로 많은 병약자들, 비천한 자들이 예수께 찾아갔다. 예수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고, 그들의 오아시스가 되었다.


노자는 무위자연을 주장하며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본래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주장했다.

공자는 권력자들을 올바로 가르쳐 백성들이 잘 살도록 하고, 도덕적 완성과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인간이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통해 자신을 수양하고, 가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예수는 가장 낮은 마구간에서 나시고, 예수를 따랐던 대중들은 가난한 사람들, 병자와 장애인, 어부, 여성들 등 주로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소외된 계층이 많았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들에게 큰 희망과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예수는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갔던 것이다.


노자는 좀 살만한 사람들에게, 공자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예수는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간 것이다.

예수와 같은 오아시스 같은 사람이 되기는 어렵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 나도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後夫凶(실부흉), 늦게 오는 사람들은 흉하다.

오라 오라 해도 안 오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늦기 전에 자기 고민을 해결해야 한다.


彖曰단왈:

比吉也 比輔也 下順從也。

原筮 元永貞 无咎 以剛中也。

不寧方來 上下應也。

後夫凶 其道 窮也。


比吉也비길야 比輔也비보야, 비는 길하고 보는 돕는다. 서로사랑하고 서로 도우라는 것이다.

下順從也하순종야, 사람들이 원서를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다. 원서는 하나님과 일치된 사람이다. 이순신은 主一無適주일무적이라고 한다. 한 주인만 섬긴다는 것이다.


原筮 元永貞


원서原筮는 하늘과 일치된 사람이다.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게 ”원서原筮 “이다.


元永貞원영정은 이상세계의 원리이다. 내가 이상세계가 되어야 또 이상세계에 속하게 된다. 하나님이 내 안에 있어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이다.


화엄경 에서의 理法界이법계는 하늘의 건乾과 관련된 근원의 세계이다.

事法界사법계는 땅의 곤坤과 관련된 현상계이다.

理事無礙法界이사무애법계는 건乾이 강하여 변화를 이루고, 곤坤이 부드러워 중심을 잡아 둘이 장애 없이 소통하는 상태이다.

事事無礙法界사사무애법계는 자연과 자연,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조화를 이루는 세계이다.

釋迦成佛 三千草木 同時成佛 석가가 성불하니 삼천 초목도 함께 성불하였다.

元永貞 원영정이 되면 모든 것이 이상세계로 바뀐다. 눈을 감으면 의자와 책상이 걸리적거리는 지옥이지만,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천국이 된다. 事事無礙法界 사사무애법계는 모든 존재가 자유롭게 소통하며 하나 되는 세계이다.


김흥호 선생은 예수의 주기도문을 이상세계의 표현이라고 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이법계(理法界)이고, ‘나라에 임하옵시며’는 사법계(事法界)이다. ‘뜻이 하늘에서 임한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를 말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는 경제 문제이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정치 문제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는 문화 문제이고,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사회 문제이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장애가 없게 만드는 것이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이다.


니체의 세 가지 핵심 개념은 ‘신은 죽었다’, ‘초인’, ‘영원회귀’이다.


‘신은 죽었다’는 기독교의 신에 종속된 내가 아니라, 근원의 힘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있어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어 하나님이 존재한다. 이는 종속된 나가 아니라, 신과 일치된 나를 의미한다.

‘초인’은 정(貞)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초월하고, 기존의 제약을 넘어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는 내적 힘이다. 이 힘은 근원의 힘이며,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우리는 이 권력의지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더 높은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

‘영원회귀’는 영(永)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우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삶이 반복될 때,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以剛中也이 강중야, 강한 것이 중심을 잡았다.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강이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중심을 잡는다. 우리는 이강중야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不寧方來불영방래, 그래서 불편하고 괴로워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내가 그들을 위로해 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

上下應也상하응야, 상하가 서로 응 한다는 것은 소통이 되는 것이다. 스승과도 소통이 되고 제자와도 소통이 된다. 친구와도 배격됨이 없어 서로 화답하는 것이다.

後夫凶 其道 窮也 후부흉 기도 궁야, 기도궁야는 길이 맊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늦게 오는 자는 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늦게 오는 자도 열심히 하면 또 만회할 수도 있다.


象曰상왈:

地上有水比 ,

地上有水比지상유수비, 땅 위에 물이 있어서 서로서로 친하게 지낸다.

先王以建萬國親諸侯선왕이건만국친제후, 선왕은 철인정치이다. 선왕이 있어서 제후와 친하여 만국이 세워진다. 한 나라에 대통령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바르게 서야 도지사와도 통하고 나라가 평안해진다.

세계가 싸우는 것은 경제가 불안전하기 때문이다. 땅 위에 물이 있어 풍족해야 세계 평하도 지킬 수 있다.


수지비에서 중요한 단어는 元永貞원형정이다. 내가 먼저 원영정이 되지 못하면 밤낮 남을 탓하게 되고 환경을 탓하게 된다. 내가 원형정이 되고 보면 자연도 이미 원형정이고 다른 사람들도 원형정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나 한 사람 눈 뜨면 오와시스가 되고 또 오와시스에 속한 자가 되는 것이다.


효사(爻辭)


初六(초육): 실력 있는 백성이다.

有孚 比之 无咎 有孚 盈缶, 終來有他 吉

象曰: 比之初六, 有吉他也


有孚(유부), 초유의 백성들은 진실함과 실력이 있다.

比之(비지), 서로 친밀하게 지내며 각자의 전공을 살려 역할을 다한다.

盈缶(영부), 항아리에 가득 찬 술을 나누어 마시듯, 그 풍요로움을 함께한다.

終來有他(종래유타), 그 결과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유익을 준다.


예수는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물을 항아리에 가득 채우게 하였고, 그 물이 좋은 포도주로 변하여 잔치의 기쁨을 더하였다.

이와 같이 盈缶영부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채우고 나누는 것이다.

有吉他也(유길타야), 참된 공동체는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六二(육이): 자신을 항상 일깨우며 산다.

比之自內, 貞吉.

象曰: 比之自內, 不自失也.


比之自內(비지자내),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깨어 있는 것이 올바르다.

貞吉(정길),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길하다.

不自失也(부자실야), 그래야만 자신을 잃지 않는다.


이는 신앙적으로는 항상 기도하며 사는 것과 같다. 자신을 단련하고 바른 길을 지키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


六三(육삼): 진정한 동반자가 아니면 괴롭다.

比之匪人.

象曰: 比之匪人, 不亦傷乎?


比之匪人(비지비인), 함께하되 진정한 동반자가 아니라면,

不亦傷乎(불역상호), 그것이 오히려 상처가 되지 않겠는가?


진정한 관계란 단순한 친분이 아니라 서로에게 믿음과 의지가 되는 것이다.

신앙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의지하면 결국 괴로움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야만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六四(육사): 바깥에서도 올바르게 해야 한다.

外比之貞 吉

象曰: 外比於賢, 以從上也.


外比之貞(외비지정), 내면이 바르면 외면도 올바르게 해야 한다.

吉(길), 그렇게 살아야 길하다.

外比於賢(외비어현), 어진 사람을 본받아야 한다.

以從上也(이종상야), 윗사람을 따르되 올바른 길을 따라야 한다.


이는 기독교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라는 계명을 연상시킨다.

즉, 신앙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九五(구오): 사랑이 나타났다.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

象曰: 顯比之吉, 位正中也.

舍逆取順 失前禽也. 邑人不誡, 上使中也.


顯比(현비), 사랑이 나타난다.

王用三驅(왕용삼구), 왕이 사냥할 때 세 방향에서 짐승을 몰아도,

失前禽(실전금), 앞서 달아나는 짐승은 잡지 않는다.

邑人不誡(읍인불계), 동네 사람끼리는 서로 경계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공평한 사랑을 의미한다.

비는 의인과 악인에게 골고루 내리고, 해는 모든 이에게 빛을 준다.

탕왕이 사냥할 때 한쪽 방향을 터놓아 짐승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한 것과 같다.

즉, 강제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 참된 사랑이다.

위정중야(位正中也), 공명정대해야 한다.

사 역취순(舍逆取順), 거스르면 버리고 따르는 것을 취한다.

강요하지 않으며, 억지로 붙잡지도 않는다.

이는 신앙에서도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하나님의 방식을 보여준다.


上六(상육): 사랑의 말을 듣지 않는다.

比之无首, 凶.

象曰: 比之无首, 無所終也.


比之无首(비지무수), 처음부터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凶(흉), 그 결과가 좋지 않다.

無所終也(무소종야), 시작이 없으면 마침도 없다.


이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의 배반과 같다. 처음부터 올바른 길을 따르지 않았기에 결국 파멸로 끝났다. 즉, 사랑을 거부하면 길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괘(比卦)는 “서로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뜻하지만,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참된 신뢰와 올바른 동반자 관계를 강조한다.

진실한 관계는 스스로를 바르게 하고, 올바른 사람과 함께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것은 공동체와 신앙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원리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참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수지비의 九五구오 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하늘과 일치하는 삶을 살고 땅처럼 힘 있는 자가 되어 진선미를 갖춘 사람이 될 때 공명 정대한 사람이 되어 타인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천지를 뺀 여섯 개의 괘를 보았다.

乾爲天건위천, 坤爲地곤위지는 마치 용이 양쪽 날개를 펼친 모습이다. 모든 변화는 하늘과 땅에서 시작된다. 하늘은 강한 에너지를 품고 변화를 일으키며, 땅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중심을 잡는다.


처음 여섯 개의 괘에는 모두 水수가 포함되어 있다. 여섯 개의 물이 겹치면 감괘가 된다. 감은 곧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고난 속에서 인간은 길을 찾는다.

眞善美진선미를 이루고 元亨貞원형정에 이르기까지 결코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여섯 개의 물이 겹치면 감괘가 된다. 감은 곧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고난 속에서 인간은 길을 찾는다. 믿음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바울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푯대를 향해 좇아간다”라고 하였다. 이는 우리 삶 속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장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同乎險中험호동중, 險而知夢험이지몽, 需于血수 우혈, 上剛下險상강하험, 地中有水지중유수, 最後최후는 元亨貞원형정에 이르는 과정이다.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마주한다.


一切皆苦일채개고. 예수 또한 인생을 苦難고난이라 하였다. 그러나 쓴 것이 약이 되듯, 우리 인생의 위험과 시련이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준다.

苦盡甘來고진감래.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결국 좋은 날이 온다.

“인생 또한 고진감래와 같으니, 굴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결국 밝은 날을 맞이할 것이다.”

應無所住而生其心음무소주이생기신. 응당 주할바 없는 곳에서 마음에 생명이 나온다. 이는 어려움을 겪어야만 진정한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煩惱即菩提번뇌즉보리. 괴로움과 집착이 많은 가운데 깨달음이 일어난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닥친다. 어떤 날은 마음의 괴로움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시험을 준비하느라 지칠 때도 있으며, 악기를 배우느라 고군분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제법 큰 복층 목조주택을 혼자 지었다. 물론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작업은 한두 명의 도움을 받았지만, 지붕의 기와를 올리고, 내부 마루와 보일러까지 직접 시공했다. 어렵다는 문틀조차 자재를 사서 만들어 버렸다.


매일 새벽, 작업발판을 타고 올라가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있다.”


피스 못을 수만 개 박았고, 나무 패널을 천 개 이상 붙였다. 한 번은 사다리에서 작업하다가 미끄러져 함께 떨어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나는 왜 대부분의 집을 혼자 지었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나를 한 번 이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 짓는 즐거움을 온전히 체험하고 싶었다.

결국 집은 완성되었다. 마감이 완벽하지는 않았고,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이 내 손으로 직접 지은 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 집은 내가 지은 집이다.”


삶이란 결국 이러한 과정의 연속이다. 우리는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면서 점점 더 단단해진다. 여섯 개의 수가 있는 괘의 가르침처럼, 우리의 인생에 고난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성숙하고, 마침내 빛나는 열매를 맺게 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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