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에 대하여

제7괘 지수사

by 일도

주역 제7괘 지수사(地水師)

나는 전쟁터의 장수로 변신한다.


지수사는 위는 땅이고 아래는 물이다. 땅 밑에 고인 물은 위험하다. 땅 속에 사탄이 숨어있는 것과 같다. 사는 스승 사자이며 죽을 사와 마찬가지이다. ‘사단’이라고 하면 군대 용어인데, 전쟁터에 나가 죽어야 할 집단을 의미한다. 죽을 사자를 쓸 수 없으니 ‘사단’이라고 쓴 것이다.


스승도 죽을 ‘사’ 자와 마찬가지이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地水師지수사는 전쟁을 의미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약 1,170만 명이 사망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약 7,000만 명이 사망했다. 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현실이다. 현재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3년째 전쟁 중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의 역사로 얼룩져 있고,한국은 북한과 전쟁 대립 중이다.


괘사(卦辭)


師 貞 丈人 吉 无咎。

군대는 올바름을 지켜야 한다. 덕망 있는 장인 이를 이끌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丈人장인은 전쟁에서는 장수라고 한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훌륭한 전술과 지략이 있는 장수가 필요하다. 그래서 貞 丈人, 정 장인이다. 곧음이 있는 장수이다.


윈스턴 처칠, 아이젠하워가 1,2차 세계대전의 장인이라고 할수 있다.

명량 해협에서 일본 수군 133척이 맞붙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8척만 가지고 싸웠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은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바탕으로 일본 함대를 크게 격파하여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큰 전쟁들은 사실 나와는 관계가 없다. 내가 큰 장수가 되어 전쟁터에 나가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의 싸움을 생각해 본다면 지수사가 와닿는다. 克己復禮극기복례는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즉, 나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이다.


내 속에는 번뇌가 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죄라고 한다. 땅 안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듯이 내 안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한다. 흙에서 태어난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 완전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의 몸과 정신은 완전하지 않으며 불안하다. 우리 안에는 불성이 있고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흙 속에 잠재되어 있는 죄와 대립하며 전쟁 중이다.


예수는 현실 정치와 현실 전쟁을 선포하러 오신 것이 아니다. 그는 영적 전쟁을 선포하러 오셨다. 예수는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나라가 내적인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예수는 영적전쟁의 장수로 오신 것이다.


내가 내 속에 있는 죄와 번뇌와 싸운다면, 나 스스로 장수가 되어야 한다. 나를 대신해서 싸워줄 장수는 없다. 나 자신과의 영적 전쟁이 있으며,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나에게도 무기가 있어야 한다.

貞(정), 丈人(장인)에서 정을 정법으로 보고, 정법은 진리라고 해둔다. 세상에서의 전쟁의 무기가 전투기와 탱크라면, 영적 전쟁의 무기는 진리로 싸우는 것이다.


단전(彖傳)


師, 眾也。貞, 正也。能以眾正, 可以王矣。剛中而應, 行險而順, 以此毒天下, 而民從之, 吉又何咎矣。


師사, 眾也중야, 사는 무리라는 것이다. 군대의 사단이다.

貞정, 正也정야, 정은 바른 정인데 정법이라고 해도 되고 진리라고 해도 된다.

能以眾正능이중정 可以王矣가이왕의, 능히 진리로 무리를 이끌면 가이 왕이 될 수 있다.

剛中而應강중이응, 강이 중심에 있고 응함이 있다.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모든 사건에 응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는 “내가 아버지와 하나”라고 하였다. 강은 어디서 나오나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진리와 일치하고 말씀과 일치해야 한다. 하나님의 힘을 붙드는 것이 剛中강중이다.

行險而順행험이순, 험한 곳에서의 행함은 순리를 따른다. 반야경에 “마하반야바라밀다”인데 바라밀은 저 언덕으로 큰 강을 건너는 것이다. 세상의 번뇌의 강을 무엇으로 건너느냐하면 마하반야로 건너는 것이다.

마하는 크다는 뜻으로 태평양 바다는 큰 배로 건너야 하지 내 힘으로 건너는 것은 아니다. 반야란 진리이지 다른 게 아니다. 행험이순이란 험한 세상을 건너가는 방법은 진리와 동행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行險而順理행험이순리” 가 “마하반야바라밀다”와 같은 것이다.


예수는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는데 십자가에서의 희생, 부활을 통한 승리, 하나님 나라의 도래,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세상을 이겼다고 한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하였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자들은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며,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며, 성령의 검(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싸워야 한다.


以此毒天下이비독천하, 이로써 천하를 독하게 하나 而民從之이민종지 吉길, 백성이 따르니 길하고 又何咎矣우하구의, 또 어찌 허물이 있겠느냐.

毒(독)“은 현대적 의미의 ’독(毒)’과는 다르며, ‘강력한 통제’또는 ‘엄격한 군율’을 뜻한다. 즉, 전쟁(師)은 본래 세상을 혼란하게 할 위험이 있지만, 올바른 방식으로 다스리면(貞正), 백성이 따르게 되어 결국 길하다는 의미이다.

전쟁(군사적 행위)은 필연적으로 천하를 어지럽게 할 수 있지만, 바르게 수행된다면 오히려 질서를 세우고 백성들이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는 허물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전(象傳)


地中有水 師 君子以容民畜衆


地中有水(지중유수) 師(사)

땅속에 물이 있는 것이 사(師)이다. 이는 위험이 잠재된 상황을 의미하며, 전쟁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함을 시사한다.

君子以容民畜衆(군자이용민축중)

군자는 백성을 포용하고 무리를 기른다.

容民畜衆(용민축중)

무리를 포용하고 길러야 한다. 즉, 훈련을 시켜 군사가 되게 해야 한다.

엄격함만이 능사가 아니라, 포용과 양육을 함께해야 한다.


예수도 열두 제자를 양육할 때 때로는 인자하게 품어주었고,때로는 강하게 꾸짖으며 가르쳤다. 그렇듯 지도자는 단순히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이끌고 길러내는 자이어야 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때로는 자신의 나약함을 보며 좌절하고, 실패 속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찾아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포용이다.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했다 하여 낙심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영적 승리자가 되는 것은 석가, 공자, 예수와 같이 도(道)에 이르는 것이지만, 우리는 아직 힘이 미약하다. 그러므로 때로는 쓰러지기도 하고,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이사야는 말하였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의 힘이 모자랄 때, 하늘을 앙망할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신앙의 굳은살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강해지는 길이며, 진리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효사와 효의 상전(爻象傳)

전쟁의 장수, 영적 전투


초육初六- 군대는 훈련을 해야 한다.


師出以律, 否臧凶 사출이율, 불장흉

군대를 출동시킬 때는 반드시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는 길하더라도 결국 흉해진다.

律율은 곧 군율軍律이다. 군율이 확립되려면 반드시 훈련이 필요하다.

精神敎育정신교육, 肉體訓鍊육체훈련, 各種技術각종 기술까지 철저해야 한다.

象曰: 失律凶也 실율흉야, 훈련이 부실하여 군율을 잃으면 반드시 흉하다.


구이九二- 하늘이 내린 장수이다.


在師中, 吉无咎, 王三錫命 재사중, 길무구, 왕삼척명

군대 가운데에 있으면서 사람들과 뜻을 함께 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王이 세 번 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그 장수가 하늘의 은총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象曰: 承天寵也 승천총야

天命천명을 받은 자라야 나라를 바르게 이끌 수 있다.


육삼六三 - 실력 없는 장수는 패전을 한다.


師或輿尸, 凶 사혹여시, 흉

전쟁에서 지휘관이 무능하면,

군대는 시체를 수레에 싣고 돌아와야 한다.

象曰: 大無功也 대무공야 큰 공을 이루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무능한 장수의 지휘 아래 군대는 오합지졸이 되고, 전쟁은 무의미한 희생만 남긴 채 끝나게 된다.


육사六四 - 장수는 후퇴도 해야 한다.


師左次, 无咎 사좌차, 무구

군대가 후퇴하는 것은 때로 허물이 아니다.

象曰: 未失常也 미실상야, 이는 변칙이 아니라, 정상적인 전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수 없다면, 후퇴도 승리를 위한 중요한 선택이다.


육오六五 - 실력 있는 장수가 나가야 한다.


田有禽, 利執言, 无咎 전유금, 이집언, 무구

밭에 새 떼가 몰려오듯이 오랑캐가 침략할 때는, 그들을 모두 사로잡아야 한다.

이때 반드시 有能유능한 장수를 보내야 한다. 長子帥師 장자수사는 유능한 장수이며,

弟子輿尸 제자여시는 무능한 장수이다.

후자를 보내면, 군대는 결국 패배하게 된다.


상육上六 - 공을 세운자의 포상


大君有命, 開國承家, 小人勿用 대군유명, 개국승가, 소인물용

큰 임금이 명을 내려 나라를 세우고 가업을 계승한다. 象曰: 大君有命, 以正功也 대군유명, 이정공야, 임금이 명을 내리는 것은 공을 바르게 이루기 위함이다.

小人勿用, 終亂也 소인물용, 종란야

소인을 등용하면, 결국 나라가 혼란해진다.

소인은 私利를 우선하여 백성을 착취하며,

전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예수와 사탄의 전쟁


주역의 지수사(地水師) 괘는 군대와 전쟁을 상징한다. 그러나 전쟁이 단순한 물리적 충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쟁에는 훈련, 전략, 후퇴, 지도력과 같은 요소가 있으며,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내적 싸움과도 연결된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신 사건도 이러한 전쟁의 한 형태이다.

이 싸움은 무력을 사용하는 전투가 아니라, 신앙과 말씀을 통한 영적 전쟁이었다.

예수께서는 떡의 유혹, 이생의 자랑, 세상의 영광이라는 세 가지 시험을 물리치심으로써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 (마 4:1)


第一試驗: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유혹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신 8:3) 肉身의 情慾(육신의 정욕)은 살아야 한다는 본능적 집착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음식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떡을 구하는 것보다, 말씀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초육의 師出以律사출이율과 같다. 군율이 확립되려면 반드시 훈련이 필요하다. 예수는 군율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무장되어 있다,


第二試驗: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 했으나 예수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신 6:16) 하셨다.


육삼六三의 시력 없는 장수라면 무모하게 뛰어내렸을지 모른다. 예수는 육사六四의 후퇴하는 장수처럼 마귀의 제한에 싸우지 않고 회피했다. 싸움에 질 전쟁이라면 나서지 않음이좋고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면 후퇴도 하나의 전략이다,


이생의 자랑은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하나님이 붙들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신앙이 아니라 오만이다. 하늘은 불언소리(不言之聲)이다. “天地不言而萬物生청지불언이만물” 천지는 말하지 않지만, 만물을 기른다. 노자의 말이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第三試驗: 천하만국을 줄 테니 마귀에게 절하라는 유혹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신 6:13)


예수는 육오六五의 실력 있는 장수처럼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장수가 아니다. 올바른 장수는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진정한 승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잘못된 지도자는 나라를 망하게 하며, 잘못된 신앙 지도자는 성도를 무너뜨린다.


안목의 정욕(眼目之情慾)은 세상의 영광과 부귀를 탐하는 욕망이다. 권력과 재물은 눈앞의 현실을 지배할 수 있는 힘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환상일 뿐이다. 마귀에게 경배하는 대가로 얻는 것은, 결국 영혼을 파는 일이 된다.


예수는 구이九二의 하늘이 내린 장수이다.

마귀의 유혹을 모두 물리친 것은 예수는 하나님과 하나 된 아들 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승리는 무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이 지수사(地水師)의 전쟁 원리이며, 신앙의 싸움의 본질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이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영적 전투의 본질을 보여준다. 마귀는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의 육신은 연약하다. 그러나 연약함을 이유로 시험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흙 속 깊은 곳의 탄소가 열과 압력을 받아 다이아몬드가 되듯이, 우리의 몸과 영혼도 試鍊시련을 통해 정련되어야 한다. 信仰의 鍛鍊신앙의 단련 속에서, 우리는 다이아몬드 같은 단단한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지수사(地水師)』는 단순한 군사적 전쟁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전장(戰場)을 비유한 상징이기도 하다. 이 괘를 통해 우리는 외적 전쟁보다 더 치열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 곧 영적 전쟁을 마주하게 된다.

진리와 정법을 무기로 삼아, 번뇌와 죄, 나약함과 싸우는 삶. 그 싸움의 중심에 ‘정직한 장수’로서의 나 자신이 있어야 한다. 훈련이 필요하고, 때로는 후퇴도 필요하며, 끝내는 성숙과 승리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는 이 싸움의 본을 보여주신 분이다. 그는 인간의 약함을 껴안되, 끝내는 진리와 사랑으로 이기셨다.

『지수사』는 말한다. 싸워야 할 곳은 밖이 아니라 내 안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참된 지도자요, 참된 인간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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