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는 사공으로 변신한다.
수천수(水天需): 나는 사공으로 변신한다
(水)
(天)
수천수는 큰 강을 건너가는 것이 이롭다고 한다. 크고 위험한 강을 건너려면 훈련된 노련한 사공이어야 한다. 수천수는나는 사공으로 변신해 야 한다.
괘상(卦象)
需:有孚,光亨,貞吉。利涉大川。
(기다림에는 믿음이 필요하며, 빛이 나타나고 형통하다. 곧으면 길하니,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
水天需수천수란 물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 있다. 마치 하늘이 물속으로 내려온 듯한 형상이다. 海印精해인정은 ‘바다에 찍힌 도장’이라는 뜻으로, 하늘의 별이 물에 도장이 찍히듯 그대로 들어와 있는 모습이 수천수이다.
1. 나는 왜 사공이 되어야 하나
利涉大川이섭대천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
큰 강을 건너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배와 노련한 사공만이 가능하다. 큰 강을 건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불교의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aramita)’에서 유래하며,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으로, 번뇌와 집착을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한다.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당도한다고 한다.
주역에서의 이섭대천 이란 하늘과 나 사이에 놓인 강이다. 물이 하늘을 담았다는 것은
하늘과 나 사이가 닿아 있으면서 멀리 있다.
하늘이 내 안에 들어올 때 크고 위험한 강을 건넜다고 할 수 있다. 주역의 하늘은 元亨利貞원형이정으로 하늘이 위험한 물속으로 들어오듯이 나의 정신과 육채는 하늘을 받기에는 위험한 상태이다. 중용에 첫 절이 천명 지위성이다. 성은 천명을 받을 수 있는 성품이다. 우리의 정신과 육체는 원형이정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냥은 받아지지 않는다. 하늘과 나 사이의 강을 건너기 위해 나는 사공이 되려고 한다.
김흥호 선생은 이 네 개의 천명을 과학, 철학, 예술, 종교라고 했다. 이를 불교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연결해 보면, 생(生)은 과학, 즉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의 문제이고, 노(老)는 예술, 즉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방법”에 대한 고민이며, 병(病)은 철학, 즉 “인간의 고뇌와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며, 사(死)는 종교, 즉 “죽음 이후의 문제를 어떻게바라볼 것인가”이다. 유교에서는 이를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한다. 인(仁): 사랑, 의(義): 정의, 예(禮): 예의, 지(智): 지혜, 이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밤낮으로 운명에 벌벌 떨며 점을 치고 미래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운명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운명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준 천명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려고 하면 반드시 되는 게 천명이니 과학, 철학, 예술, 종교를 해보라고 권한다.
2. 사공의 기다림과 인내
有孚유부,光亨광형,貞吉정길
有孚유부
유부의 뜻은 성실하고 믿음성이 있다는 뜻이다. 爪갈고리 조와 子아들자의 合字합자로 새가 알을 발로 위치를 바꾸면서 품는 모양이다. 그래서 알에서 깨어난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섭대천의 큰 강을 건너는 것은 유부의 과정과도 같다. 닭이 알을 품으면 약 21일 후에 병아리가 부화한다. 평균 37.5°C정도의 온도가 유지되어야 한다. 닭이 노력하고 알 속의 병아리도 알껍질 깨고 나오려고 온 힘을 다한다. 啐啄同時줄탁동시, 알속의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부리로 쪼는 것이다.
光亨광형, 빛이 나와 형통하다.
알 이 탁 하고 깨어지는 순간 병아리가 나오는 것이 광형의 순간이다.
가야금도 하나의 이섭대천(利涉大川)이다. 가야금을 쉽게 보고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강을 건너려면 피나는 연습의 고통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산조의 명인, 선금연류지성자. 그의 가야금 소리는 수천수의 빛형(光亨)과 같다. 현을 튕기는 손끝에서 빛이 튀어나오듯, 소리는 귀를 때리고 심금을 울린다. 빛처럼 곧은 소리를 내면, 청중은 듣고 기뻐한다. 이것이 정길(貞吉)이다.
가야금에서 그런 소리를 내려면 석가처럼 6년의 인욕정진(참고 나아감)의 기다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피나는 연습 끝에 이 정도면 됐다 하는 광형의 순간이 온다. 그때가 가야금의 강을 건너간 때 이다.
3. 사공의 고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여 전공을 삼으려고 할 때 망설인다. 가야금 연주를 해도 될지 책을 써볼지 아니면 창업을 할지 선택이 어렵다. 그러나 가야금 연주가 책 쓰는 일이 천명인 줄 알았다면 귀하게 여기고 결단을 쉽게 했을 것이다. 일단 선택이 되었다면 기다림의 연속적 고통이 시작된다.
수천수의 효는 강을 건너는 모습이다.
初九 需于郊,교는 변두리에서 기다린다.
九二 需于沙,사는 모래에서 기다린다.
九三 需于泥,니는 진흙에서 기다린다.
六四 需于血,혈은 피에서 기다린다.
九五 需于酒食, 술과 음식 앞에 기다린다.
上六 入于穴,굴은 굴 안에서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은 아직 강을 건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내의 강도가 점 점 높아짐을 본다 변두리에서 척박한 모래로 푹푹빠지는 진흙으로 피가 나는 고통으로 증폭된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널 때,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었다. 배는 흔들렸고, 밤은 어두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베드로는 노련한 사공이었지만, 두려웠다.
그때, 예수가 물 위를 걸어오며 말했다.
“오라.” 베드로는 배를 떠나 물 위를 걸었다. 그러나 바람과 파도를 보고 두려워하는 순간,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예수는 베드로를 붙잡으며 물었다. “왜 의심하였느냐?”
강을 건너려면, 믿음을 가져야 한다. 바람과 파도 속에서 물 위를 걸어 예수께 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4. 배와 노를 버리고
고난의 강을 건넜으면 배와 노는 버려두고 간다. 사공의 역할은 배를 강 건너편에 도착하면 끝이 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출판하겠다고 결심했다면 그때부터 바람과 출렁이는 강 위에 홀로 물 위를 걸어야 한다.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눈동자와 피부에 닿는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파도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다리로 요동치는 배에 부딪혀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나의 강을 건너기까지 믿음을 가지고 매 단계마다 기다림으로 통과하여 구오와 같이 술과 음식이 차려진 강 건너 언덕에 다다르게 된다. 책이 탈고되기까지 책을 써 본 사람만이 체험을 하게 된다. 상육과 같이 有不速之客三人來 유불속지객삼인래, 손님 세 사람이 찾아오듯이 책이 츨판되면 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5. 사공의 성장과 깨달음
수천수에서의 “사공”은 단지 강을 건너는 기술적인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사공은 그 강을 건넌 후,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강을 건넌 후에 남는 것은 바로 자신이 가진 “믿음”과 “지혜”이다. 강을 건넌 뒤, 사공은 그저 강을 건너는 자가 아닌, ‘깨달은 자’가 되어야 한다. 그가 경험한 고난과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얻은 것은 그 강을 건넌 후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이다.
기다림의 과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한다. 예술가나 창작자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그만큼 많은 기다림과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얻는 통찰과 내면의 성장은 결국 우리의 삶에 의미를 더한다. 수천수 괘의 “유부”와 “광형”이 나타내듯, 신뢰와 빛을 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인내와 연습,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렇게 나아가면서 우리는 강을 건너는 사공이 아닌, 그 강을 넘은 후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