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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Apr 03. 2023

리더의 자격

그 왕관 내려놓지

학교에 갔다. 반장선거를 하는데 지목당했다. 나는 빼는 타입은 아니다.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회의에 참석하래서 갔더니 임원을 선출하는 날인 것 같았다. 서기를 뽑을 차례가 되자 회의록이 내 앞에서 양옆으로 정신없이 날아다니는데, 서로 안 하겠다고 미루다 못해 싸울 태세다. 회의가 빨리 끝나서 집에 가길 바라던 내가 서기는 뭐하면 되냐 물었다. 일동 얼음이 되었다.

 

  “ 다들 안 하신다고 하는데 그럼 제가 할게요”   

  

독서와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독서 동아리에 가입했다. 얼마 후 시립 도서관 주관의 ‘독서모임 운영법’ 강의를 들으러 갔다. 우리 모임 원들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시간이 없었는지 아무도 가겠다고 하지 않았다. 강의엔 나 혼자갔다. 어느 날 모임 장으로부터 장문의 카톡이 날라왔다. 단지 강의를 들었을 뿐인데 졸지에 모임 장이 되었다.


 “우리 모임 좀 맡아 주세요. 저는 일이 많아 계속하지 못할 것 같아요. 부탁드려요.”   

  

햇살이 적당해서 좋은 날에 공원에서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쳤다.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괜히 말 걸고 수다를 떨었다. 요즘 어떻게 지냈냐고 묻길래 브런치에 글 써본다고 깨작거리고 있다고 멋쩍게 웃었다. 혼자 하려니 힘들고 포기하고 싶다고 하소연을 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모여서 같이 쓸 사람을 만들자’ 글쓰기에 관심을 보이는 한 사람을 꼬드겼다. 초짜지만 과감하게 브런치 작가를 목표로 글 한번 같이 써보자고. 글쓰기 모임이 조직됐다.   

  

“나도 글쓰기에 관심 있는데.”

“혼자 글 쓰는 거 지쳐가고 있었는데 같이 모여서 써요.”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쉽게 모임을 만들고 리더가 된다. 어떤 경우엔 리더 역할이 맡겨지기도 했다. 능력이 있거나 실력이 있어서는 아니다. 미적지근한 걸 싫어하는 성격에 사람을 이끄는 특성이 있고 내 필요가 강해서일 때가 많아 그렇게 되었다.


과거엔 모임을 운영할 줄 몰라서 대충 하다 말아버린 적도 있고, 중간에 흐지부지된 모임도 있고, 은근슬쩍 빠진 모임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밀고 끌며 이어 간 모임도 다.     

 

모임은 성장과 배움을 목적으로 참여했지만,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 장은 부담이 됐다. 적어도 그런 류의 모임 장은 단지 모임 날짜를 조율하고 모임 분위기를 조성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앞서가고, 무언가를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니 힘겹게 느껴지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 후회가 밀려오고 한숨이 깊어졌다. 가끔 팀원들 눈치를 살폈고, 부족한 내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땐 땡땡이를 치고 싶었다. ‘이쯤에서 그만둘까? 이번 모임엔 얘기해 봐야겠다.’      

사진: Unsplash의Annie Spratt

한편으론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런 이유로 그만두면 성장과 배움의 기회도 줄어든다. 혼자 열심히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백조는 호수에 떠 있기 위해 수면 아래서 수없이 발을 구른다던데. 내 노력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까. 잘해보려는 노력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다.

         

“하나님만이 완전하십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완벽주의는 교만에서 오고, 교만은 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더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삶과 상황에 순종하고 충실하면 됩니다.”     


마음을 날카롭게 도려내는 것 같았다. 고수의 장풍에 맞아 뒤로 몸이 휙 밀린 것처럼 뜨끔했다. 부끄러워 그만 고개를 푹 숙였지만 감사했다.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던지 가슴을 단단히 누르던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았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되겠다. 어차피 완벽할 순 없잖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하는 거지.'  


잘해보려는 마음이 오히려 사람을 경직되게 만들고, 뭔가 하려는 마음, 이끌려는 노력이 팀원들을 부담스럽게 만들 수 있다. 모임의 장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전문적이거나 탁월하거나 대단한 어떤 것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겸손히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좋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글 발행합니다. 모임 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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