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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Mar 27. 2023

타인의 글 읽기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접시가 지금 이 요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해?”     


둘째를 한심한 듯 쳐다보며 불쑥 뛰어나온 말이다. 아이는 마음이 상했는지 짜증을 냈다. 요리하다 손이 모자라면 아이들을 불러 심부름을 시키곤 한다. 오래 호흡을 맞춘 큰딸과 다르게 늘 뒤에 밀려나 있거나 딴짓을 하던 둘째는 미숙하다. 영 마음에 안 찬다. 답답해서 엄마가 할 테니 비키라고 할 때가 많다.    

  

둘째는 말수가 없다. 둘째와 대화하면 말이 중간에 뚝뚝 끊긴다. 큰애나 막내와는 다르게 둘째와 있으면 적막강산이 된다. 가끔 둘째가 집에 있다는 사실도 잊는다. 성질 급한 나는 말하다가 반응이 더디면 곧잘 넘겨짚거나 타박을 준다. 지금보다 잘 지낼 방법을 모르겠다.   

  


어쩌다 쓰는 사람이 되고 보니 어려움에 봉착했다. 어떻게 써야 할지 알고 싶었다.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었다. ‘왜 일기를 여기다 썼냐’는 댓글을 받았다는 작가님들의 브런치 글은 충격이었다.


내 글이 일기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너도 작가가 될 수 있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같은 강렬한 제목의 책을 몇 권 사서 읽었다. 몰라도 너무 몰라서 그런지 책에는 글쓰기에 대한 방법이 가득 들어 있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으나 못 알아듣겠다.   

  

시립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1인 1 책 프로젝트’ 사전 강의를 신청했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중 만난 광고는 기쁨이었다. 대면하여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좀 달라질까, 글쓰기를 배울 기회다 싶어 냉큼 신청했다.   

   

배지영? 사전 강의 작가가 누구인지 몰랐으나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기대도 없이 덜렁덜렁 강의를 들으러 갔다. 알고 보니 책을 11권이나 낸 베테랑 작가였다. 


배지영 작가의 첫 번째 책은 [우리 독립 청춘]이라는 에세이로 작은 도시 군산에 사는 젊은 예술가, 소상공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쓴 책이라고 했다. 그 책으로 제2회 브런치 북 대상을 수상 했다는 사실도 그때야 알았다.  

    

운 좋게도 배지영 작가와 함께 책을 쓰는 긴 여정에 동참하게 되었다. 작가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도 공부라고 했다. 서점에 나와 있는 에세이를 찾아서 많이 읽어보라고 했다. 그건 이해가 된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그런데 심지어 글쓰기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글도 읽고 댓글도 달아주라고. 이런.   

  

뻔하고 서툰 이야기,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흔한 이야기를 읽으라고? 나는 일상 글을 읽는 일이 어려웠다. 소소한 사람들의 일상에도 관심이 없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브런치 홈 메인에 뜬 제목에 사로잡혀 글을 읽어도 제대로 한 권을 다 읽지 못하고 덮을 때가 많았다.   

   

브런치 글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사람들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가는 길과 꿈마저도 그랬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작가의 글 속에서 평범한 나를 발견했다. 내가 그렇듯 그들도 평범해서 그냥 그랬다. 특별할 것도 없고 독백하듯 쓴 글도 공감이 안 됐다. 덮어버렸다.


나까지 이 대열에 합류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는 날이 늘어갔다. 검증된 작가의 글만 읽고 싶었다. 그런데, 그 뻔한 에세이를 많이 읽어보라니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이 공부라니.

     

사진: Unsplash의 Mathias Reding

타인의 글을 끝까지 읽어보는 일에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누가 되었든지 관심을 가지고 읽으며 그 마음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관심을 드러내는 일, 그것이 글을 쓰면서 해야 할 가장 큰 일이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글을 쓰지만, 읽히는 글은 평범한 이야기라도 독자의 마음과 닿아 있다. 독자를 사로잡는 글은 그 뻔한 일상을 마치 읽는 사람의 것인 양 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누군가는 눈물을 글썽이며 공감한다. 글쓴이를 기억하여 다시 찾게 되고, 좋아요, 구독을 누르는 건 필수가 되겠지.  

   


주말 저녁 요리를 하다 둘째를 불렀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기 전에 채소를 씻고 다듬는 일, 용도에 맞게 써는 일, 요리를 담을 적당한 그릇을 선택하는 일에 대해 말하기 전에. 아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불러 내린다고 주방에 선뜻 나와준 딸이 고마워 따뜻하고 조용한 말로 부탁했다. 한 번에 하나씩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하면 돼 알겠지? 자! 한번 해 봐.”      


필요한 건 관심뿐이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가만히 기다려 주어야 탈이 없다. 아이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다가가니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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