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아는 사이로 지냈지만 그뿐이었다. 그런 그녀와 자리를 함께 한 건 지인을 만났을 때였다. 어색하게 합석해 말이 오가다 그녀가 브런치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다.
브런치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들어가 글을 읽고는 안 읽은 척 흔적 없이 후다닥 나오곤 했던 그 플랫폼이 아닌가. 얼마 전엔 앱도 깔았구먼. 거기에 글을 쓴다고? 주변에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급모임이 만들어졌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막연하기만 했던 내게 그녀는 용기를 북돋웠다. 그녀의 입에선 많은 말이 쏟아져 나왔지만, 마음에 남는 게 없었다. 쉽게 설명했어도 경험치가 제로인지라 모든 이야기는 한쪽 귀로 들어왔다가 한쪽 귀로 흘려 나갔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통 모르겠다. ' 지칠 줄 모르는 그녀의 열정 끝에 그래도 한번 써 볼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다. "읽은 책 줄거리 요약이나 감상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을 쓰자 마음먹으니 조급해졌으나 자리에 앉자 순식간에 글이 써졌다. 그녀가 시킨 대로 브런치 서랍장에 글을 넣어 두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 이전의 경험과 판단, 내 생각을 들이대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잘 모를 땐 시키는 대로 하고 보는 게 최고다.
해야 할 일을 앞에 놓고 발만 동동 구르던 내게 "일단 종이에 써봐" 하시던 목사님 음성이 생생한 건 그날의 경험이 이후 내 고지식함을 고치는데 약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 다른 사람 말을 잘 듣지 않고 내 방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고, 융통성이 부족해 애를 먹었다. 지금은 어려움에 봉착하면 얼른 생각을 고쳐먹는다. '순종해. 시키는 대로 해' 잘하는 짓이라 생각되어 스스로 토닥이며 대견해한다.
인간이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사회성과 좋은 인성, 도덕성의 일부라고 하더니 권위나 강압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말 잘 듣기, 시키는 대로 하기는 괜찮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커피를 두고 마주 앉아 브런치 작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발판 삼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작가 신청서에서 핵심은 계획서라고 한다. 구구절절 줄 글로 계획서를 쓰면 안 된다고 한다. 어떤 글을 쓸 것인지 한눈에 들어오게 작성하라면서.
무엇에 홀린 듯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데 생각해 보면 뭘 알아서가 아니라 그냥 써지는 대로 쓰고는 제출했다. 정확히 신청서에 어떤 내용을 썼는지 기억이 안 나니까 말이다.
번갯불에 콩 궈먹듯 써서 제출한 신청서가 통과되어 단박에 합격 통지서로 날아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입이 쩍 벌어졌다. 몰랐는데 아무래도 내 삶은 운빨이 절반인 게 확실하다. 앗싸!!!
그런데 말이다. 운빨로 브런치 작가가 되어서인지 글 쓰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닌가? 다른 작가들은 그럴듯한 제목도 폼나게 뽑아내고 브런치 북을 잘도 만들어 낸다. 글도 하루가 멀다 하고 쓰더구만. 뚝딱 10여 편 정도만이라도 좋으니 브런치북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