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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Feb 22. 2023

뜻대로 안 되는 일도 감사합시다

남편은 집을 짓겠다고 했다


딸만 키우다 활동량이 많은 아들을 얻어서? ‘집이 어두워서 싫다고’ 입버릇처럼 불평했던 나 때문에? 왜? 아니 왜?


마당 넓은 주택을 짓고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이 로망인 남편은 퇴근만 하면 꼼지락거리며 어울리지도 않는 책상에 눌러앉아 밤늦도록 뭔가를 끄적댔다  '아주 꼴값을 떨어요'  그런 남편을 속으로 비아냥댔고, 한참을 째려보다가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래도 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보다 강적을 만났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싫어. 시골은 싫다고! 혼자가”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내 손을 펼쳐 열쇠 하나를 살며시 쥐어주며 꼭 잡은 두 손을 톡톡 두드렸다. 기가 막혔다. 집이 지어질 곳은 산중에 있고 하루에 버스가 고작 다섯 번 다니는 외진 곳이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시골집에 살면 아이들 등하교, 풀 뽑기, 주변 정리는 '내가 다 해. 걱정 마'라며 가뜩이나 못생긴 눈을 끔뻑거렸다.


그때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냥 도끼눈을 계속 뜰걸 후회가 막심이다. 이런 덴장!! 믿지 마라. 남편. 남의 편이다. 약속? 안 지킨다. 배 째라 드러누우신다. '그럼 그렇지' 말뿐이었다.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주택으로 이사한 후 집이 좋았다가 싫었다가 나는 머리채를 쥐어뜯을 판이다. 아슬아슬한 감정의 외줄 타기에 시달리며 그날도 아들을 등교시키는데, 조용히 달리던 차 안에서 아들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엄마 카이스트에 가려면 공부 어느 정도 해야 돼?"


카이스트 근처도 못 가 봤는데 뭐라고 대답한담. 이대로 조악한 지식수준이 탄로 나는 건가? 등골이 서늘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조용했던 차 안은 대화로 물들어 갔다. '어 이건 뭐지? 이렇게 깊은 대화를 그전에도 했었나?'    

  

그 후론 집과 학교, 시내를 오갈 때면 함께 음악을 선곡해 듣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였다.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피곤한 날이면 길게만 느껴졌던 드라이브 시간 동안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언제나 풍경은 새로웠으며 매일의 일상은 여행이 되었다.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원하지 않았던 상황을 마주하고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많다. 그럴 때 끝까지 고집을 피우고 싸우기보다 내려놓기로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사실은 남편에게는 비밀이다. 네버 에버 절대.) 남편이 하는 일이 내 마음 같지 않으면 늘 볼멘소리로 불평했는데 동전의 양면과 같이 모든 것은 서로 공존했다. (그러나 나는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약속 이행을 종용한다) 살다 보면 싫을 때도 있고 좋을 때도 다. 그렇다면 좋은 면을 더 크게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지만, 이 또한 나만 아는 상식으로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할 일에 바쁘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기 바쁘며 휴대폰을 눈에서 떼지 못한다. 그런 우리에게 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교감의 장소가 되었다.


우리는 다른 어떤 곳에서 살 때보다 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 평안함을 느꼈고, 잠시 놀러 온 것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주말엔 자주 바비큐 파티를 했고, 마당 화로대에 불을 피워 불 멍했다. 선물 같은 매일이다.      


우리 집은 거리상 아무 때나 불쑥 찾아오긴 어렵지만, 아이들은 주말에 친구들을 자주 초대했고, 1박 2일 명소가 되었다. 옛말에 집에 손님이 와야 복이 온다더니 주기적으로 복이 들어온다.


배달 음식을 시킬 수 없고, 떨어진 생필품을 옆집에 빌리러 가는 일도 잦아졌지만, 이웃들과 왕왕 교류한다. 가족 카톡방은 덕분에 활발해졌다.


우리는 처한 환경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처리하는 능력이 생겼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힘도 생겼다. 우리의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을 키우고 협력하고 있으며 행복해하고 있다. 이렇게 감사할 때가 또 있나.         


우리의 목표는 단지 거주할 공간을 만나는 것을 넘어 너와 내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는가이다. 어떻게 내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떤 방법으로 원하지 않았던 상황에 접근하고 있는가이다. 그것을 통해 어떤 가치를 얻었는가이다.   

   

오늘도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었는가? 그렇더라도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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