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대화방에서 생긴 일
단체 대화방에 뜬 문자가 심상치가 않다. 까칠한 Y는 아침 댓바람부터 기분이 별로다. 업무 일정표를 올리랄 때 올려야지 한 번 더 말해야 올리는 건 무슨 경우냐, 의도가 뭐냐며 시비를 거는 조다. 어이가 없다. 분명 아까 사무실에서 묻길래 확인 못 했다고 바로 올리겠다고 대답한 후 올려줬는데. 단체 대화방에 올린 신경질적인 문자는 짜증을 유발한다.
어제보다 포근한 날씨에도 후드 집업을 목덜미 아래까지 잠그고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까지 두른 나는 몸살을 앓는 중이다. 그제는 진통제를 두 알이나 털어 넣었어도 퇴근 무렵엔 녹초가 되었고 집에 돌아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감기 기운이 여전한 상태로 맞이한 아침인 탓일까? 평소 같았으면 그러려니 했을 Y 태도는 소화가 안 됐다. 아픈 사람 앞에 두고 잔소리하는 모습은 인간미 없게 느껴졌고 없던 정도 뚝 떨어졌다.
단체 대화방을 뒤져 어디쯤 일정표 올리란 문자가 있다는 건지 찾기 시작했다. 분노의 스크롤, 자세히 보니 하필 나는 그다음 문자부터 확인했다. 내 기분 탓이겠지만 문자를 보낸 시간도 애매했다. 휴대전화가 사무실 책상에 놓여 있던 11시 52분에 나는 바빴고 점식 식사 전이었다. 그래서 놓쳤다.
나는 장문의 답글을 달았다. 미안하다. 어제 감기로 아팠고 확인을 못 했다. 이유는 당신의 문자가 점심시간 바로 전에 온 데다 다른 업무 관련 문자가 바로 중복되어서 그랬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배려해 달라. 아무런 의도가 없다고.
두 번 말하게 한다고 의도 운운하는 것으로 보아 Y도 딱한 사람인 건 분명하고 참아야지 하면서도 어쨌든 내 답글에도 날이 선건 분명했다. 괜찮아 보이거나 어떻게든 면피할 요량으로 서두에 미안하다. 후미에 넓은 마음으로 배려해 달라 했을 뿐.
그렇게 일단락됐으면 참 좋았으련만. Y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바로 응답이 왔다. 요는 핑계 대지 말란다. 내 참 기가 막혀서. 거기까진 그래 뭐 참을 만했다. 괜찮았다. 애써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르며 문자를 무시하고 일에 몰두하는데 옆자리 K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K는 한가한지 슬며시 자리에 앉으며 계속 말을 걸었다. 굳이 이런 장문의 문자를 쓰는 이유가 뭐냐. 싸우자는 거냐. Y는 원래 그런 사람 아니냐. 그러려니 해라. 나는 뜬금없는 상황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이건 뭐지 싶었고 기분이 묘하게 나빠지려 했다. 아픈 것도 잊고 주르륵 말을 쏟았다.
“K 선생님처럼 성격 좋은 사람이야 할 말 있어도 참고 안 하겠지만 전 할 말은 해야겠어요.”
“김 선생. Y가 단체 대화방에 올린 글은 사실 김 선생한테 한 얘기가 아니야. 업무 일정표 안 올린 사람이 혼자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말이 있다. 어떤 말은 흩어지고 어떤 말은 새겨지며, 오래 상처로 남는 말도 있고 마음에 닿아 별이 되는 말도 있다. 같은 말이라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평범한 언어가 비범하게 쓰이기도 하고 고운 말도 무가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같은 말도 사람마다 경험한 바나 처한 상황에 따라 해석도 다양하다. 의도와 다르게 오해를 부르기도 하는 것이 또 말이다. 별것 아닌 일이 말 한마디 때문에 눈덩이처럼 커지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그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으니까.
K 말처럼 어쩌면 난 좀 과했다. 멀찍이 떨어뜨려 생각하면 한결 편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쓸데없이 감정 이입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Y가 덜 조급했으면 조금만 배려하고 헤아려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비록 등 돌리고 앉아 있으나 같은 구역에서 업무를 보며 서로의 발소리와 숨소리를 듣는 사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의 말. 당당하지 않은 표현, 피해의식이 들어간 단어 선택, 비난하는 듯한 문장을 쓰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K가 나간 후 마음을 비우고 표현은 다소 모호하지만, 답글을 달았다. “알겠습니다.”
내 생각을 접고 ‘그래. 별것도 아니다.’ ‘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마음속으로 대뇌였다.
우리는 업무상 필요한 말 외에는 대화하지 않는 편이다. 불편한 사람과 사무실에서 마주쳐도 아무렇지 않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그도 그런 듯했다. 각자가 평정심을 지키며 자기의 일에 몰두했다.
말 때문에 상처받아 혼자 끙끙거려질 때, 할 말 다 했다가 괜히 말했다. 후회될 때, 그럴 땐 다른 일에 집중하며 생각을 돌리자. 시간이 지나면 격해진 감정도 가라앉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괴로워했다는 자각이 들어 편안해진다.
하고 싶은 말 많아도 가끔은 참자. 할 말 다 하고 살면 속은 편안해도 그것도 잠깐이다. 관계가 서먹해질까 두려워 참을 걸 그랬다 후회할 때가 더 많다. 다신 안 볼 사이라면 모를까 매일 봐야 하는 직장 내 인간관계에선 더욱 그렇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편하게 대해주자. 서운한 말, 미운 말 곱씹지 말고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면 된다.
상대가 제법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믿음도 잃지 말자. 어색한 분위기에서 먼저 인사하고 업무와 관련 없는 일상 대화로 무심히 다가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용서와 아량을 베풀면 상대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고 확실한 행동으로 선을 베풀면 오히려 상대를 좋아하게 된다고 하니.
그가 어떤 마음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는 그를 오래 미워하지는 않았다. 변명을 그치고 참은 덕분에. 숨을 크게 내 쉬자 어지럽게 떠돌던 나쁜 생각들이 자취를 감췄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