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챕터인 '남극곰' 및 '범고래 틸리쿰'과 일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같은 주제라도 소설 시나리오는 여러 개 나올 수 있으니 몇몇 주제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접근해 보겠습니다^^.)
1. 서론 : 인간의 모순
계속 강조하듯이 우리 인간들은 모순적인 존재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로남불은 인간의 종족특성이죠.
소 돼지 닭 오리 염소 기타등등을 잡아먹고 썰어먹고 튀겨먹고 삶아먹으면서 개 고양이는 '반려'로 우대하는 모순.
백사자 방생하는 영화를 보고 감동이 똥물치는데 그 영화에서 백사자에게 잡아먹히는 타조에 대해서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백사자 쪽을 보고 '잘했어 찰리! 바로 그거야!'라고 환호하는 모순.
북극곰이 살아갈 얼음땅이 줄어들어서 슬퍼하고 '나는 북극곰입니다'라는 영상 찍으면서 진지포션 100개 빤 듯 엄숙한 분위기 연출하는데 막상 환경파괴 선두주자인 골프에 미쳐 날뛰는 모순.
북극곰이 너무 안쓰러워서 남극으로 데려다 주고 '너희는 이제부터 남극곰이야 새로운 땅에서 자유를 누리도록 해.'라고 배려해 주지만 막상 그 남극곰이 펭귄 수천마리를 학살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혹시 생각했다 해도 펭귄 따위는 아몰랑 외면해 버리는 모순.
세상에는 다양한 모순이 존재합니다. 아이러니(Irony)라고도 하고 패러독스(Paradox)라고도 하며 그 모순과 역설 사이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철학적 논의도 있습니다만 그건 뭐 철학 전공하신 분들께 맡기도록 하고. 소설가 관점에서 중요한 건 [인간의 모순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겠죠. 일견 역겨워 보일 수도 있는 우리 내면의 내로남불 현상을 숨김 없이 재구성하여 드러내 보이는 것이겠죠.
(* 작고(作故)하신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느 작가가 역겨운 소설을 쓰는 것은 역겨운 것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그 역겨운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며, 작가 본인의 모든 힘을 다해 구체화하려는 것이며, 우리 시대의 역겨움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려는 것이다." 정도 되겠네요. 기억나는 대로 쓴 거라 일부 원래 표현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을 다룰 때 드러나는 이중성과 모순. 이걸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작가의 역할입니다. 최소한 스스로를 '작가'라 칭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가장 쉽게 설정을 짜려면 역시 '인간도 길들여진 동물에 불과했다'는 식으로 가는 게 좋겠죠. 인간이 백사자 북극곰 방생하면서 자체감동 버프에 쩔어 흙흙흙 흐느끼는 게 결국은 '인간도 그 상위 존재에게 속박당해 있어서 대리만족 느끼는 것 뿐이다'라는 설정으로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과연 방생하는 것이 방생당하는 각 개체(個體)에게 최선인가?' 라는 질문을 전제로 설정을 짤 수도 있겠죠. 특히 갇혀 있는 공간 바깥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개체라면 이게 더 민감한 문제일 것입니다.
즉, [방생당하는 야생 환경에 대해 전혀 모르는 어린 개체들에게 있어 과연 방생이 최선인 것인가?] 라는 의문을 소설 설정으로 끌고 들어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 자세히 써 보겠습니다.
2. 새끼만 방생할 경우 문제점
지난번 범고래 틸리쿰 이야기 때 잠시 언급했었는데, 갇혀 있는 동물들 문제에서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게 '갇힌 상태에서 새로 태어나는 새끼 문제'입니다. 돌고래 쇼 수족관에서 태어나는 새끼돌고래, 웅담착취 사육장에서 태어나는 새끼곰.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매우 난감합니다.
새끼돌고래나 새끼곰을 일단 풀어놓으면 육식동물의 본능으로 지나가는 작은 생물들을 잡아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 작은 생물들도 쉽게 당하진 않겠죠. 어설프게 덤비다가는 반격당해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사냥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야생에서는 새끼돌고래나 새끼곰을 잡아먹는 또 다른 포식자들도 많습니다. 돌고래는 범고래의 좋은 점심식사가 되고, 수컷 곰은 다른 새끼곰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고 하죠. 결국 '생존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방생당한 새끼 입장에서는 낯선 환경에서 사냥법과 생존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지만, 너무 잘 적응하면 또 그것대로 문제입니다. 방생 환경에서 살고 있던 기존 동물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포식자가 추가되는 것이어서 환경파괴 문제가 따라오죠.
붉은귀거북, 큰입베스, 블루길 등 외래종 유입으로 인해 한반도의 강이 초토화되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상식이죠. 한국 가물치(영어로는 뱀대가리 물고기. Snakehead)를 미국에 방생했는데 거기도 초토화되었구요. 북극곰을 남극에 풀어 놓으면 거기 펭귄들은 'XX같은 인간들 저주하겠다!'를 외칠 겁니다.
넓게 보면 야생들개 길냥이 문제도 이 '방생 포식자 문제'와 연관됩니다. 이건 적극적으로 각 개체를 배려해서 풀어 준 건 아니고 주인이 귀찮다고 막 버리면서 생기는 문제긴 합니다만, 야생들개에게 사냥당하는 고라니 / 길냥이에게 뜯어먹히는 비둘기 입장에서는 별 차이 없긴 하죠.
이러한 사냥법과 생존법 교육 및 기존 환경에 대한 배려 없이 새끼동물을 막 방생한다는 건... 방생하는 인간에게만 잠시동안의 감동을 줄 뿐이고 더 큰 후폭풍을 불러옵니다. 방생한 새끼동물이 적응 못하고 죽는 건 그나마 해당 개체가 불쌍한 것으로 끝나지만, 역으로 너무 잘 적응해서 기존 환경을 파괴하기 시작하면 그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지난번 돌고래 방생 문제 때 잠시 언급했듯이, 현행 대한민국의 법령상 '~새로 태어난 새끼를 소유할 수 없다'는 정도의 표현이 있긴 하지만 그 새끼들을 어떤 절차를 거쳐 야생으로 돌려 보내야 하는지 /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지 / 교육이 필요하다면 그 교육을 담당할 기관은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동물단체들도 그런 걸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딱 봐도 돈이 많이 들어갈 것 같은데 그 돈을 누가 부담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없는 것 같습니다.
(* 참고로 '세금을 투입하자!'는 주장을 하신다면 저는 반대합니다. 저도 현실에서는 내로남불 탑재한 모순의 인간이거든요.
인간 자체가 그리 대단한 게 없다고 생각하니 동물을 조금 신경쓰는 것 뿐, 그 동물을 배려하기 위해 인간이 피땀 흘려 모은 세금을 쓰자고 하면 반대할 겁니다. 동물을 더 많이 배려하시는 분들께서 기부금 내시면 됩니다.)
법령상 문제를 보완하는 것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저는 '인간 방생'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새끼돌고래 방생 문제를 인간 영역으로 옮겨 보죠.
3. 인간 방생 : 소설 시나리오
주인공 A는 히키코모리. 중1 때부터 방에 틀어박혀 어느새 고등학교 졸업할 나이가 되었지만 계속 방에 갇혀 있다.
그는 스스로 '더 좁은 감옥'을 원했다. 좁은 동물원에 갇혀 있다가 더 좁은 공간으로 스스로를 봉인해 정형행동을 반복하는 동물들처럼, A는 자신의 공간을 최소한으로 줄여 2평 남짓한 방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밤새 게임을 하다 잠들었던 A는 얼굴에 차가운 공기를 느끼고 잠에서 깨어난다. 그 곳은 A가 6년 가까이 스스로를 봉인했던 방 안이 아니었다. 광폭한 바람이 몰아치는 거친 숲이었다.
그리고 이 곳에는 A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10대 중후반 청소년들. 대한민국 청소년이 많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일단 서로 협조하지 않는다. 히키코모리 상태에서 갑자기 이상한 세상으로 던져졌는데 서로 협조하면 이상하잖아.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이고 '다구리의 동물'이다. 늑대가 집단으로 몰려 다니기에 강한 것처럼 인간 또한 뭉쳐서 다구리를 칠 때 강한 것이다. A를 비롯한 한국 청소년들이 쉽게 뭉친다.
그리고 의외로 A는 리더쉽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 자신도 몰랐던 리더쉽이 이제서야 발현된 듯 A는 각종 위기상황에서 훌륭하게 집단을 이끌어 간다.
처음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사냥감을 찾고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집하고 쉼터를 마련하는 것 정도까지는 잘 됐다. 이 낯선 곳에는 의외로 먹을 것이 풍부했고 모두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당연히 그 상태로 끝나지 않는다. 포식자(Predator)가 나타난 것이다!
이 낯선 환경의 포식자는 렙틸리언(Reptillian)이었다. 앞발이 진화하여 '손'이 되었고, 집단사냥을 하면서 올라간 지능이 '사회성'을 발전시켰으며, 마침내 언어를 사용하고 도구를 만들어 연장질을 하는 단계까지 발전한 공룡-파충류 계열 지성체가 이 환경을 지배하고 있었다.
렙틸리언들의 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마법'을 사용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마법을 사용했다.
인간 청소년 측은 렙틸리언들에게 사냥당한다. 상당수 청소년들이 렙틸리언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린다. 렙틸리언 하나가 '그렇지만 지금은 제 점심식사일 뿐이죠.'를 시전하는 건 보너스(?).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인간은 그리 약하지 않다. A를 비롯한 몇몇 청소년들이 마법 능력을 개방한다.
일단 한 번 마법을 쓰기 시작하자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 A와 청소년들은 마법을 사용해 렙틸리언들에게 맞선다.
그리고, A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지구는 거대한 동물원이었다. 초월적 존재가 인간 쇼를 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동물원이었다.
그 초월적 존재는 지구 동물원에서 마법을 봉인해 버렸다. 우주의 수많은 행성에서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차원접점 에너지를 끌어 쓸 수 있고 그 덕분에 '마법과학'을 발전시킨 반면, 지구 동물원에 사는 지성체들은 마법을 쓸 수 없었고 그 결과 일반과학만 비정상적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 이 설정은 [가지 않은 길]이라는 SF 작품과 일부 유사합니다. 행성 간 워프 기술(하이퍼드라이브) 빼고 다른 군사과학 분야를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지구인들이 '하이퍼드라이브만 있을 뿐 군사과학은 머스켓총 수준인 외계인'의 공격을 받고 역관광 시켜버린다는 내용이라고 하네요.)
지구 동물원에서 자란 인간들은 초월적 존재의 구경거리가 되며 2만년 가량 짧은 전성기를 누렸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많아져서 동물원의 수익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초월적 존재는 방생(放生)을 했다. 전 지구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방생 작업을 실시했다. 특히, 동물원 환경에 적응 못하고 정형행동을 보이는 개체들을 중심으로 방생을 했다.
방생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버린 거다. 어제까지 반려동물이랍시고 싸들고 다니던 개와 고양이를 오늘은 박스에 넣어 뒷산에 놔두는 것과 유사하게, 말로는 좋게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그냥 다 뒈지라고 내다버린 거다.
방생이라고 쓰고 유기(遺棄)라고 읽는 짓거리. 이걸 당한 A와 인간 청소년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 마법이 제한되지 않는 이 야생의 환경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한다. 버림받은 애완견이 들개가 되고 상위 포식자가 되는 것처럼 처절하게 살아남아 먹이 피라미드를 기어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살아남게 되면... 복수를 할 것이다.
누구에게 복수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A를 히키코모리로 만들었던 가해자들에게 복수할지, 아니면 더 높은 곳에 있는 초월적 존재에게 복수할지. 그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기왕이면 양쪽 모두에게 복수해야지.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 한다.
실제로 쓰게 된다면 초반부는 '메이즈 러너' 분위기로 흘러갈 것 같네요. 물론 청소년들을 가둬 놓은 거대한 미로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미지의 세계로 던져졌다는 설정은 비슷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