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금값이 많이 오르고 있습니다. 저희 같은 개인은 금 살 때 세금 내고 / 금 팔 때 세금 내고 / 중간의 상인에게 마진 다 떼 주고 하면 최소 살 때 가격의 2.5배 이상 올라야 의미있는 투자가 되므로 선뜻 금에 투자하기 어렵지만, 큰 손들은 금 사서 돈 좀 벌겠죠.
이렇게 금값 오르는 걸 보다가 잠시 딴생각을 좀 해 봤습니다. '원할 때마다 금을 막 꺼내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
지구 전체의 금 보유량은 한계가 있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대충 주요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금은 2~3만 톤 정도 되는 것 같고(이 중 약 9천 톤은 미국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개인들이 보유한 금을 다 합치면 10만톤 가량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캐내지 않은 금까지 다 합치면 20만 톤 넘을 수도 있겠지만 캐내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면 경제성이 없어서 못 캐겠죠.
결국 지구에서만 캐는 건 거의 끝났습니다. '원할 때마다 꺼내 쓸 정도'로 많은 금을 구하려면 어딘가 우주공간에서 가져와야 합니다. 몇천광년 너머에는 금땡이 행성도 있다고 하니 그런 행성 끌고 오면 좋겠지만... 그 정도 기술력이 있다면 이미 금값이 똥값 됐겠죠.
이렇게 잡생각을 하던 중 문득 소설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평행차원의 지구에서 금덩어리 들고 오면 되는 거 아냐?]
당연히 잡생각입니다만, 요즘 평행차원 관련 설정이 늘어나고 있으니 제가 잡생각 하나 더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될 건 없겠죠.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기존에 나온 창작물에서 평행차원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고, '멸망한 평행 지구에서 금덩어리 들고 오기'로 가 보겠습니다.
2. 본론
(1) 기존 창작물의 평행차원
: 프린지, 로스트, 최근의 MCU, 스타게이트 아틀란티스
미국 쪽 창작물은 꽤 오래 전부터 평행차원 설정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평행차원 개념 자체는 이론물리학에서 가설 수준으로 나온 것이고 입증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창작물에서는 주구장창 우려먹었습니다.
제가 한참 백수로 놀던 2000년대 초반, 프린지(Fringe)라는 미드가 있었습니다. 저는 앞에 몇 편 보다가 말았는데 제 친구가 상당히 좋아하더군요. PC방에서 프린지 전 시즌 시청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프린지에서는 3명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그 중 남자 2명은 아버지-아들 사이입니다. 이 아들 쪽에 숨겨진 비밀이 있는데요. 바로 '다른 평행차원에서 주워온 아이'라는 비밀입니다.
이 아버지 쪽이 젊었을 때 아들이 사고로 죽었는데, 아버지가 평행차원을 뛰어넘는 기술을 개발하여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뒤 그 차원의 아들을 데려옵니다. 드라마 안 봐서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마 몰래 아들을 납치(!)해 오는 설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평행차원의 또 다른 아버지가 좌절크리 먹고 고통받는 건 아몰랑.
프린지 외에 (한국배우 김윤진의 출세작으로 유명한) '로스트'도 마지막 시즌을 평행차원으로 마무리합니다.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은 평행차원, 추락해서 모두 다 비참하게 죽는 평행차원, 앞 시즌에서 모두 다 이상한 현상을 겪으며 싸우고 협력하던 평행차원. 그게 서로 교차되며 진행됩니다. 나중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게 애매모호한 결말로 끝내버리죠. 그냥 주인공 의사가 죽기 전에 꿈 꾼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뭔가 찝찝하게 마무리합니다.
최근의 MCU는 아주 그냥 평행차원 설정 범벅입니다. 엔드게임 때 다른 평행차원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죽은 사람들을 다 부활시켰고, 스파이더맨 3명의 합동 쇼를 펼쳤으며, 닥터 스트레인지는 여러 명의 자기 자신과 싸웠습니다. (그 뒤에 나온 PCPC 묻은 시리즈는 전혀 모르겠고 안물안궁.)
이것 외에도 평행차원을 다룬 작품이 많습니다만, 이번 편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스타게이트 아틀란티스"입니다.
스타게이트 오리지널 시리즈 SG1 이 마지막 10시즌을 마무리할 때 평행차원을 잠깐 다룹니다. 슈퍼군인이었던 맥가이버 아저씨는 완전 망가진 쓰레기, 또 다른 슈퍼군인이었던 여주인공은 몸꽝 과학교사, 언어학의 달인이었던 천재 박사는 어디 도서관 사서 같은 걸 하고 있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어찌어찌 잘 해서 오리지널 평행차원의 군발이들 이상의 맹활약을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리즈인 아틀란티스에서 이 평행차원 설정을 좀 더 많이 우려먹습니다. 아틀란티스 쪽 주인공 중 브레인(Brain)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인성파탄자로 자주 사고를 일으키는) 맥케이 박사가 평행차원 설정을 주도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에피소드는 '평행차원에 위험물질 투척하기'였습니다. 우리 차원에서 뭔가 어마무시한 위험물질이 다량 발생하는데, 인성파탄자인 우리 차원의 맥케이 박사가 다른 평행차원에 이 위험물질을 막 투척해 버리죠.
"그 다른 평행차원에 사는 존재들이 위험해지지 않냐?"는 반박이 있지만, 멕케이 박사는 인성파탄자답게 사뿐히 씹어버립니다. 그러면서 나름 변명을 하는데요.
"전체적으로 보면 평행차원은 무한에 가깝게 많아져요. 그 중에 대부분은 생명체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오래 전에 멸종해 버린 평행차원일 겁니다. 우리가 이 위험물질을 다른 평행차원에 버린다고 해도 그 평행차원은 이미 생명체가 없어진 차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운 나쁘게 생명체가 있는 평행차원에 버리게 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다들 멕케이 박사만큼 똑똑하진 않으니 그냥 알아서 하세요 분위기로 수긍합니다. 멕케이의 말대로 위험물질을 투척하는데... 당연히 아무 일 없을 리 없겠죠. '또 다른 맥케이'가 나타납니다.
이 새로운 맥케이는 '위험물질을 투척당하는 평행차원에서 넘어온 맥케이 박사'입니다. 놀랍게도 이 평행 맥케이는 인성이 매우 좋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늘 신중하며 말도 조곤조곤하게 잘 합니다.
두 맥케이가 상호 협조하여 위험물질 투척 문제는 해결했는데, 문제는 이 성격 좋은 평행차원 맥케이 때문에 오리지널 인성파탄자 맥케이가 위기의식을 느낀다는 겁니다. 본인은 인간쓰레기인데 착한 맥케이가 인기 높으니 불안해 하는 거죠.
해당 에피소드 결말은 오래되어서 잊어버렸습니다만, '성격이 정반대인 자기 자신을 만났다'는 설정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던 기억이 나네요.
자, 기존 창작물의 설정은 대충 정리했습니다. 그럼 제 설정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2) 핵전쟁으로 멸망해 버린 평행 지구
위 아틀란티스 평행차원에서 맥케이 박사가 얘기했듯이, 우주 전체적으로 보면 무한에 가까운 평행차원이 존재하고 그 평행차원의 상당수는 '생명체가 없거나 / 이미 다 소멸해 버린 상태'일 겁니다.
우리 차원의 우주가 138억 년 됐는데,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가 균일해지는 데에는 10조 년을 아득히 넘을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실상 시간이 아니라 '간격'만 존재하는 수준인데, 이런 상태의 평행차원이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겁니다. 우리 우주는 그 평행차원 중에서 지극히 어린 편이죠.
이렇게 모든 게 소멸해 가는 평행차원은 별 의미 없습니다. 우리들 인간에게 필요한 건 '자원이 잘 보존되어 있는 평행차원'이겠죠.
또한 지형이 너무 달라지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2억 년 전 초대륙 판게아가 있던 시절에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지형이었을 텐데, 이런 곳에 가면 어디서 무슨 자원을 찾아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결국
1) 우리 시대와 비슷한 시공간의 지구로 가야 하고,
2) 그 지구에 경쟁자가 거의 없어야 하며,
3) 또한 그 지구에 자원이 꽤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 3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평행차원 지구를 찾아 왔다갔다 하는 게 가장 좋겠죠. 거기서 금덩어리 보석 석유 기타등등 돈 되는 걸 싹싹 긁어 오는 겁니다.
이 조건에 맞추려면, 대략 1970년대쯤에 핵전쟁 일어나서 인간이 거의 사라졌고 / 그 뒤로 50년 가량 지난 상태의 지구를 찾는 게 Best of Best 입니다. 석유 개발은 어느 정도 되어 있지만 다 퍼낸 건 아니고, 금 본위 제도를 포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금을 대량 보관해 둔 보관소가 있으며, 인간이 없으니 자원 퍼가도 별 불만 없겠죠.
자, 이런 지구를 찾았다 치고. 소설 전개해 봅시다.
(3) (소설 설정) 내 ATM은 포트 녹스
<프롤로그>
평행차원 간 접점을 찾아서 여는 기술.
남들은 모두 안 된다고 했다. 다들 나를 보며 손가락질했고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몇몇 과학자들은 복잡한 계산식을 들이밀기도 했다. 평행차원을 여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량을 계산해서 '그 정도 에너지가 있으면 이미 우리 차원 내에서 워프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수 있는데 뭐하러 평행차원 지구를 찾나? 바보냐?' 라고 떠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 두뇌의 가능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지구 지성체들이 꾸준히 이성과 감성을 발전시켜 온 이유, 그 근본적인 진화 방향을 읽어내지 못했다.
인간의 뇌(腦)는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차원 조절 장치다. 차원접점에 흘러다니는 정신 에너지를 이용해 차원 문을 여는 게 인간 두뇌의 역할이다. 그걸 위해 우리는 진화해 온 것이다.
나는 차원접점을 열었다. 뇌과학자로서, 인간으로서. 아니 한 명의 지성체로서. 평행차원의 접점을 찾아내고 그걸 개방했다.
이제 나는 새로운 평행 지구로 간다. 핵전쟁으로 멸망했지만 1970년대의 인프라가 남아 있는 곳, 그 곳으로 간다.
그리고 나는 '포트 녹스'로 찾아갈 것이다. 브레턴 우즈 체제 당시에 미국 정부가 대량의 금을 보관해 뒀던 곳, 그 강력한 요새로 가서 금괴를 주워 올 것이다.
오늘부터 내 현금인출기는 '포트 녹스'다. 2000톤 넘는 금괴가 모두 내 돈줄이다.
허접한 지구여, 기다려라! 내가 너희들에게 황금의 축복을 내려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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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프롤로그만 썼습니다.
물론 이렇게만 전개하면 너무 쉽죠? 주인공이 험한 일을 겪어야 합니다. 고구마 100개 먹은 듯한 시련을 겪으며 밑바닥에서 빡빡 기어야죠.
1970년대 사람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핵전쟁으로 죽긴 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전투적이고 강인해졌을 겁니다. 게다가 이미 핵폭탄 맞아 본 경험(!)이 있으니 더 잔인하겠죠.
주인공 2명이 서로 교차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도 좋겠네요. 포트 녹스에서 금덩어리 막 꺼내 쓰는 세계1위 부자 vs 지하벙커에서 기어올라온 평행차원의 용병. 이런 구도로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