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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Nov 11. 2024

태권도 아이얍! (상)

1. 서론 : 필자의 어린 시절


이 '웹소설 소재 모음집' 이전에 다른 글을 쓰다가 잠시 언급했었는데, 저는 어릴 때 태권도 체육관을 꽤 오래 다녔었습니다. 제 아버님의 여러 신념 중 하나가 "남자는 싸움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신념에 따라 국민학교 6년 + 중학교 1년 해서 총 7년 동안 태권도를 배웠었죠.


그렇게 7년 배운 결과는? 3전 3패 2KO패... 처참합니다. 이럴려고 태권도 배웠나 자괴감이 들 정도 수준입니다.


태권도 대회에 총 3번 참가했는데 단 한 번도 1회전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 중에서 마지막 3패째 패배를 당했던 대회는 진짜 무섭더군요. 상대방이 전문 운동선수로 훈련하는 사람이라는데 발차기가 제 주먹지르기보다 더 빨랐습니다...

(복싱에서 주먹이 안 보여도 무서운데 발이 안 보이면 뭐... OTL. 관장님이 수건 던져서 TKO패 당했는데 그제서야 살아서 다행이다 싶더군요.)



여담인데, 1980년대 당시 태권도 체육관을 운영하시던 관장님이 나름 사업확장 시도하시면서 '컴퓨터 학원'을 연 적이 있었습니다. 8비트 컴퓨터로 베이직 프로그램 배우고 그러다 1~2년 쌓이면 포트란 코볼 등등 좀 더 수준 높은 프로그램 언어들을 배우는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때 관장님은 [태권도 유단자 단원들은 컴퓨터 학원 무료] 라는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하셨는데요. 당시 태권도장 회비보다 컴퓨터 학원 회비가 2~3배 비쌌던 걸 감안하면 파격적이었죠.


대회 나가면 1회전 광탈이지만 어쨌든 7년 배우면서 당시 3품(어른 되면 3단)이었던 저도 저 파격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베이직 프로그램을 주 1회씩 해서 5개월 가량 배웠던 것 같네요.


그런데... 어어, 의외로 이 쪽에 재능이 있었나 봅니다. 컴퓨터 학원에서 프로그래밍으로 시험을 보는데 제가 1등을 했어요. 그것도 꽤 좋은 성적이었던 듯 합니다.

(당시 학원선생님 말씀으로는 60점 정도면 1등이라는데 저는 95점인가 그랬습니다.)


컴퓨터 학원 선생님은 저한테 '제대로 배워서 컴퓨터 대회 나가보자.'고 하시더군요. 지금부터 잘 배우면 중학생 때에는 프로그래밍 할 수 있을 거라고, 이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말도 하셨습니다.


집에 와서 그 얘길 했죠. "남자는 싸움을 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신 아버지께 태권도 그만두고 컴퓨터 학원에서 좀 잘 해보겠다는 얘길 했습니다.


대답은...


"컴퓨터 그거 순 오락하는 거 그거 뭐하러 하노. 태권도 해서 몸 건강한 게 백배 낫다. 학교 공부나 잘 해라."


그러고 나서 컴퓨터 학원 그만뒀습니다. 관장님의 파격 무료 정책이 끝났거든요.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이미 바다 건너에서 잡스 아재가 애플2 개인컴퓨터를 만들었고 이제 곧 16비트 컴퓨터가 나올 예정이며 조만간 빌게이츠 아재가 윈도우를 선보이면서 세상이 급변할 상황이었는데, 제 아버님은 "컴퓨터 그거 순 오락하는 거"라고만 알고 계셨습니다.


뭐, 오락하는 거 맞긴 하죠. 대충 제가 이 때 프로그래밍 배우고 대학 갔으면 (문과 쪽이 아니라 이과 쪽으로 갔다면) 택진이형 후배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3N 중 한 곳에서 영혼을 갈아넣어 게임 만들었을 수도 있죠. 평행차원의 if 시나리오에서는 게임개발자가 된 저 자신을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이 때 저는 컴퓨터 쪽으로 못 가고 계속 태권도장 다니면서 허벌나게 처맞고 있었습니다. 짬으로 따지면 체육관 최고참이었지만 그 경력에 한참 못 미치는 실력을 갖고 있었고, 태권도 배운 지 몇 달 안 된 동갑내기에게 깨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기억 때문일까요. 저는 언젠가부터 '이론'에 신경쓰기 시작했습니다. 체육관 한쪽에 방치된 채 아무도 안 읽던 월간 태권도 같은 잡지를 읽었었고,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격투만화를 즐겨 봤으며 나름대로 격투이론에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엄청난 몸치에 실전 나가면 개발살 나지만 나름 태권도 3단이고 격투기 이론에 관심 있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50살이 가까운 시점에는 소설을 쓰고 있죠.


그래서, 오늘은 태권도에 대해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일부는 나무위키 등에 올라와 있는 것과 비슷한 내용도 있습니다만 그 중 상당수는 과거의 저 자신이 직접 찾아봤던 내용이기도 하다는 점은 가볍게 언급하고 시작하겠습니다.


(1) 태권도가 택견(태껸)을 이어받았다고? 그럴 리 없잖아요.

(2) 태권도의 태극 1장~8장이 태극기의 원리를 따랐다구요? 70년대 이후에 조작된 겁니다.

(3) 성공한 상업스포츠인 건 인정

(4) 태권도의 짤짤이발차기는 의외로 무섭습니다.

(5) 실전 태권도라면 하단공격이 짱!

(6) 오의(奧義) 내지 극의(極義)는 소설에서나 나오는 설정

(7) 그래도 소설에는 도움이 됩니다.


순서로 서술해 보겠습니다.



2. 본론


(1) 태권도가 택견(태껸)을 이어받았다고? 그럴 리 없잖아요.


요즘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인데, 태권도는 택견(태껸)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름 앞에 '태' 자 들어간다는 거 말고는 연관성이 없어요. 심지어 그 태(跆) 글자도 택견과 비슷하다고 우기려고 나중에 갖다붙인 말입니다.


택견 하시는 분들의 동작을 보면 태권도와 매우 많이 다릅니다. 물론 인간들 사이의 격투기라는 게 결국 손과 발을 써서 상대를 타격하거나 / 넘어뜨린 후 짓밟거나 / 기타등등 상대방을 조낸 아프게 하는 것이 본질이므로 진짜 세부적인 동작을 따지면 비슷한 게 몇 개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동작 원리가 다릅니다.


현대적 용어로 표현하면, 택견은 그래플링 - 태권도는 입식타격 중심입니다. 즉, 택견은 레슬링이나 유도처럼 맞붙어서 상대를 넘어뜨리고 체술로 받아넘기는 동작이 많은 반면, 20세기 중후반에 형태를 갖춘 태권도는 손과 발을 둔기(鈍器)로 사용하여 직접적인 타격 데미지를 입히는 동작이 주류입니다. 같은 무술이라고 보기에는 달라도 너무 다르죠.



역사적 배경을 봐도 이게 이어질 수가 없습니다.


택견이 존재하던 조선시대는 기본적으로 무(武)를 가볍게 보는 (10선비 엣헴) 유교문화였어요. 전쟁을 피할 수는 없으니 무예도보통지 등을 통해 무기 사용법을 통달하려는 시도는 했었지만, 굳이 맨손격투술을 강화해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이 self로 망하고 일제시대로 넘어갔는데, 국사책 등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일제시대에는 조선 사람들의 강인한 정신을 꺾으려는 시도를 많이 했대요. 맞짱기술을 장려했을 리가 없습니다.


즉, 조선시대 내내 택견 같은 맨손격투술에 별 관심이 없었고 / 일제시대 와서는 그나마 있던 맨손격투술도 맥을 끊어 버리려는 시도를 하면 했지 이걸 장려하는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일제시대에서 몸을 단련하고 싶은 조선 사람들은 당연히 일본 무술을 배워야 했었죠.


이렇게 일본 무술을 수행한 사람들 중에 (영화 넘버3에서 유명하게 나오는) '최영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극진가라데 맞짱맨으로서 황소 뿔 부수고 도장 여러 개 부수고 한평생 맞짱으로 일관하신 분이죠.


최영희 님의 소개에서 뽷 나오듯이, 이 분은 가라데를 수련하셨습니다. 원래는 유도를 배우고 싶었으나 천한 조선인에게 유도를 가르칠 수 없다고 해서 결국 가라데를 배웠다는 얘기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가라데 수련을 한 것은 빼박캔트 트루입니다.


그 때 가라데를 배운 조선 사람이 최영희 한 분은 아니었겠죠. 나름 반열에 오른 조선인 출신 가라데 사범들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해방 이후 한국으로 넘어와 '한국화된 가라데'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해방 직후에는 다수의 가라데 도장이 공수도(空手道)라는 용어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대통합 작업이 일어나고 '일본과 다른 용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인지 발과 주먹을 다 쓴다는 의미로 태권도(跆拳道)라는 용어가 탄생했다고 하네요.


(여기서 '태'는 밟을 태(跆)여서 정확히 '발차기'를 의미하는 한자어는 아닙니다. 발차기를 강조했으면 '족권도'가 되었어야겠죠. 물론 어감이 매우 구려서 탈락했겠지만...)


어색한 '태'자를 굳이 집어넣은 이유가 '택견과의 연관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는 건 대략 지울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동작도 다르고 운동 원리도 다르지만 가라데 유파라고 하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있으니 그나마 택견을 계승했다고 우겨야 할 것 같아서 (밟기 동작 자체가 없는데) '밟을 태' 자를 넣었다는 말이 꽤 설득력 있습니다.


뭐, 용어까지 따질 생각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1) 과거 택견과 현재의 태권도는 격투 원리가 다를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있다

2) 현재 태권도는 일제시대에 가라데를 수련했던 사범들이 한국화하면서 창안한 것이다

는 게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만 확인하면 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데 역사를 조작하면 현재부터 망가지겠죠. 역사적 사실은 사실 그대로 받아들입시다.



(2) 태권도의 태극 8장이 태극기의 원리를 따랐다구요? 70년대 이후에 조작된 겁니다.


얼마 전에 '태권도 만화'에 대한 기사를 얼핏 봤습니다. 거기서 한 미국인이 태권도를 소개하면서 '태극 8장이 태극기의 원리를 따랐다'고 하더군요.


좋은 얘기 하는데 굳이 초 칠 필요는 없겠지만... 이 또한 안타깝게도 역사적 진실에서 벗어난 주장입니다. 태극 8장 품새가 만들어진 시기, 태극기의 8괘가 4괘로 줄어든 시기 등등을 고려하면 사후적으로 만들어 낸 얘기인 게 얼추 드러나요.


(* 대략 일본의 '사무라이'가 백제의 '싸울아비'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만큼이나 앞뒤 안 맞는 소리입니다. 사무라이는 한문으로 쓰면 시자(侍者), 즉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싸운다는 의미가 아니었어요. 백제 언어에서 싸움을 싸움이라고 발음하고 아비를 아비라고 발음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얼추 소리가 비슷하다는 것만으로 억지로 짜맞추면 이건 소설의 영역일 뿐입니다. 이걸 역사로 받아들이면 거의 정신병이나 다름없어요.)



잠시 옆길로 샜는데, 태극기의 8괘 4괘를 따져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극기가 처음 생긴 건 대략 1890년대 중반쯤입니다. 누가 태극기를 만들었느냐 / 고종의 승인이 있었느냐 등등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초기 태극기는 '8괘'였어요. 음양태극 무늬 주위로 8괘를 둘렀다고 합니다.


이 8괘가 4괘로 줄어듭니다. 요즘 저희가 아는 건.곤.이.감 4개의 괘만 남고 그 이후 4개는 사라지죠.

(괘 숫자가 줄어든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기 힘들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 싶긴 하네요^^.)


이 '4괘 태극기'는 얼추 1920년대부터 등장했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기능하다가 해방 이후까지 이어졌고, 1950년대에는 '4괘 태극기'가 정품(!)이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4괘 태극기가 정형화된 후에 갑자기 태권도 쪽에서 태극 8장을 밀어붙이면서 '태극기의 8괘를 형상화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아니 왜 난데없이 8괘? 무슨 제갈량 팔괘진도 아니고 왜 갑자기 8괘?



앞서 얘기했듯이, 대한민국 태권도는 1945년 이후 가라데 사범 출신 운동인들이 독자적인 가라데를 발전시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6.25를 거친 후 군대에서 군인들의 백병전 무술로 태권도를 도입하기도 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국가 단위의 지원이 있기도 했죠.


이 과정에서 태권도는 '품새'를 도입합니다. 가라데에도 비슷한 투형 훈련법이 있었는데 이걸 변형시켜서 들여 왔나 봐요. 그걸 기본 8장 / 상위 8장으로 재편했던 거구요.


즉, 최초의 품새는 총 16개 투형이었습니다. 기본 8장은 요즘 우리가 아는 태극 8장으로 불리게 되었고, 상위 8장은 각 고려형-금강형-태백형-평원형-그 위 각종 조선의 산 이름을 딴 투형으로 해서 '형'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죠.


(제가 평원형까지만 배워서 그 위에 있는 4개는 뭐가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솔직히 3~4번째 투형 이름이 각각 태백형-평원형 맞는지도 헷갈리네요;;)


기본 8장을 '태극8장'으로 부르게 된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습니다만 얼추 대한민국 가라데가 완전히 태권도로 통합된 1970년대 이후부터였을 거예요. 상위 8개 투형은... 그냥 옛 이름 그대로 남겨 두고 아몰랑.



즉, 현재의 태극 8장 품새를 '태극기의 팔괘에서 유래했다'고 우기게 되면

- 1920년대 이후 4괘로 정착된 태극기와 안 맞고

- 16개 투형으로 구성되었던 태권도에서 상위 8개 투형을 배제해 버리게 되며

- 역사적으로 가라데 유파들이 한국에서 독자 진화하며 태권도로 통합된 과정을 무시하는

결과가 되어 버립니다. 태권도의 고결한 정신을 강조하려다가 진짜 역사를 조작해 버리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거죠.


이렇게 16개를 절반으로 나누어 8개만 따로 떼내고 그걸 다시 4개로 줄어든 태극 8괘에 다시 짜맞춘 뒤 '이 8개 기본 품새가 태극 팔괘의 원리를 본따 우주를 상징한다구욧!' 이라고 우긴다면...


국민게임 스타크래프트는 최대 8명까지 멀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제작자 중에 도교 주역에 정통한 사람이 있어서 8괘의 원리에 따라 8인 멀티플레이 만든 걸까요?


또 제가 좋아하는 (현실삭제 게임 중 하나로 유명한)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3'는 오리지널 시절에 8개의 종족 + 각 종족 별 8명의 전사 영웅 + 각 종족 별 8명의 마법사 영웅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8이 무려 세 번이나 중복됩니다. 히마메3는 우주의 원리를 본딴 게임일까요?


스파이더맨의 주요 빌런인 '닥터 옥토푸스'는 원래 팔다리 4개였는데 등에 기계팔 4개를 더 달아서 수족 8개가 됩니다. 닥터 옥토푸스는 도교 주역에 정통한 사람이었나요?


태극 8장이 태극기의 8괘를 본땄다는 건 사후에 끼워 맞춘 조작일 뿐입니다. 그렇게 조작하려면 8개로 구성된 모든 걸 다 짜맞출 수 있어요. 이걸 태권도의 정신이라고 얘기한다면 뭐... 알아서 하세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데 역사를 조작한 민족에게는 현재도 없습니다. 태권도의 고결한 정신을 강조하려면 일단 자체 구라 국뽕부터 버려야 해요. 그게 제대로 된 민족입니다.



(3) 성공한 상업스포츠인 건 인정

        

태권도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했지만, 이건 제가 어릴 때 근거 없이 증거 없이 카더라 통신으로만 떠들어 대던 태권도의 '조작된 역사'에 대한 반감 때문입니다. 그 조작과 무관하게 태권도 자체는 매우 크게 성공했어요. 아주 잘 됐죠.


제가 국딩 시절이던 1980년대 초반에 이미 대한민국은 '국기원'을 설립했고 각 나라에 태권도를 전파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앞서 말한 역사조작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는데, 뭐 쌍팔년도 대한민국은 중진국도 못 되는 개발도상국이었고 저작권 개념도 없던 시절이니 이 때 역사조작도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서 이해해 주면 됩니다.


이 국기원 시절에 '김운용'이라는 사람이 국기원 원장(대한태권도협회 총재였을 수도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 때 대한민국 국기원은 큰 성과 하나를 얻게 됩니다. 바로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었죠.


군사정권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유지하는 데에 사활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올리자. 웅대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과정이야 어찌됐든) 정말로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대단한 성과인 건 분명합니다.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사마란치가 '나치의 후예'인 건 뭐 아몰랑. 사마란치를 적극적으로 밀어줬던 김운용이 뇌물을 엄청 좋아했고 뇌물 주는 것도 잘 했다는 것도 아몰랑. 나중에 김운용이 업무상횡령 및 배임으로 꽤 오래 징역 살았다는 것도 아몰랑.


대한민국 태권도는 상업스포츠로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미국과 유럽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수강생이 폭증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 상업적 성공도 폄하하긴 합니다. '가라데 그대로 갖고 온 아류작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면 더 쪽팔린다.'는 식으로 낮춰 보긴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나라가 아직 개발도상국이던 `80년대, 일본의 성공 기법을 '모방적 창조'로 보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김치를 가져가서 기무치를 만들어 내고 플라스틱과 시멘트로 유사 대나무를 만들어 거리를 장식하며 아무튼 뭐든 모방할 만 한 것들은 다 가져와서 자기들 것인 양 팔아먹는 실력을 찬양하기도 했었습니다.


일본이 모방적 창조로 성공한 걸 칭찬하고 찬양했다면, 같은 관점에서 대한민국 태권도를 칭찬하고 찬양해야겠죠?



태권도는 매우 훌륭한 '모방적 창조'입니다. 일본에서 유도와 검도에 밀려 비주류 취급받던 가라데를 가져와 새롭게 재구성했고, (일부 역사조작이 있긴 하지만) 스토리를 부여했으며, 정신적 소양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가라데보다 훨씬 더 빠르게 / 우월하게 / 압도적으로 글로벌 스포츠 자리에 올랐습니다.


가라데 모방? 그래서 뭐 어떤데? 잘 변형해서 세계적으로 잘 팔아먹었으면 우리가 더 우월한 거 아닌가요? 원조 주제에 제대로 팔아먹지도 못하는 일본 가라데 수련자들이 무능한 거 아닌가요?


가라데 원조 하고 싶으면 하세요. 우리나라 태권도는 훨씬 더 유명하고 돈도 많이 벌고 잘 나갔습니다. 원조국밥은 시골에서 팔든말든 아몰랑. 태권도는 도시형 격투 스포츠로 가면 그만입니다.



다만... 요즘은 좀 시들시들하죠. '종합격투기'의 붐이 일어나면서 태권도가 많이 밀렸습니다. 올림픽 정식종목 때에 확립한 규칙에 얽매이면서 태권도 경기가 너무 단조로워졌고, 그 결과 인기가 많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뭐, 모든 일에 전성기가 있고 쇠퇴기가 있는 법이죠. 태권도의 짧은 전성기는 지났습니다. 다시 중흥기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많이 밀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권도를 배우고 수련하는 건 여전히 좋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챕터를 바꾸어서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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