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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은 죽음이라는 것

by 테서스

우선 기사 하나 인용하고 시작하겠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25/0003415447?ntype=RANKING


온 나라가 계엄과 탄핵과 내로남불로 시끄러운 시절. 간만에 보기 좋은 기사 하나 봤네요.


물론 제가 '보기 좋다'는 표현을 쓰면 "사람이 죽었는데 보기 좋다니 너무 끔찍해욧 빼애애액!"을 외치는 10선비 무리들이 있을 겁니다. 뭐 그렇게 외칠 분들은 각자 알아서 자기 글을 쓰든 말든 하시고. 저는 보기 좋습니다.


제가 소시오패스라서 남의 죽음을 보고 '보기 좋다'라고 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뭐 그래도 상관없어요. 10선비들의 넘치는 공감능력(?)을 따라갈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그냥 제 기준에서 평가하고 이해할 뿐입니다.



누구나 다 죽습니다. 판타지 소설에서는 영원불멸의 존재가 등장하고 게임에서는 불멸자가 등장하여 하찮은 필멸자들을 얕잡아볼 수도 있지만 적어도 현실세계에서는 '모든 생물체가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명제가 귀납적으로 증명되고 있고 반증(反證)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두에게 평등한 죽음'에 등급을 나눈다면. 재벌도 정치인도 중산층도 노숙자도 모두 공평하게 맞이해야 하는 죽음에 격(格)을 부여한다면.


'더 우아하고 품위 있는 죽음'이라는 건 분명 존재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도 "저 사람 참 죽는 순간까지 멋있네."라는 말이 나올 만한 죽음이 분명 있습니다.


흔하디 흔한 죽음 중에서 '품격 높은 죽음'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 인용기사에 나온 분들은 매우 품격 높은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저 분들은 전혀 모르는 제3자도 잠시 경건해질 정도로 우아하고 품위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일부일처 제도를 단순히 사회적 규제가 무서워서 따르는 게 아니라 '평생 신뢰할 수 있는 배우자에 대한 믿음과 존중'으로 보여 주는 것.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 솔선수범의 가치를 본인의 삶과 죽음으로 증명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아야 합니다.



뭐, 죽고 나서 '고고한 품격'으로 인정받는 게 별 의미 없긴 할 겁니다. 저처럼 무신론자에 '죽으면 만사 땡!'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하죠.


그래도 죽고 나서 좋은 소리 듣는 게 나쁘진 않습니다. 사망자 본인의 인격은 이미 소멸하고 곧 뜨거운 불길 속에서 신체구성요소 대부분이 이산화탄소로 변한 뒤 약간의 칼슘 인 잔해물만 남아 절굿공이에 다져질 예정이지만 그래도 좋은 소리 들었으면 손해는 아니죠. 일단은 그러합니다.



저도 죽고 나서 '호상(好喪)'이라는 얘길 들었으면 합니다. 죽을 때에도 가급적 주위에 고통 주지 말고 조용히 죽고 싶고, 죽은 다음에도 최소한 '이 사람 괜찮게 살았어.'라는 얘길 듣고 싶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저 기사에 난 분들처럼 아내와 같은 날에 떠나고 싶진 않아요. 일단 제 아내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겁니다. 저보다 7살 어려서 한참 더 살아야 하는데 같은 날에 떠나면 아내가 손해막심이잖아요;;


죽는 건 아내보다 먼저 죽겠지만... 그래도 [죽는 날까지 일부일처제를 잘 지키며 아주 부끄럽지는 않은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선천적으로 소시오패스인 주제에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난 사회제도가 무서워서 일부일처제에 충실했던 게 아니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이렇게 산 거다.]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죽은자는 말이 없으니 말로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쓰는 글 그대로 한평생 제 입장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일부일처제 사회에 편입되기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게 꽤 많지만. 그냥 조용히 덮어 버리고 싶은 기억이 꽤 많지만.


그건 다 잘라내고 '결혼 이후의 삶'에 있어서는 최소한 품격 있었다는 얘길 듣고 싶습니다. 제 죽음이 품격 있는 죽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한국식 세는 나이로 지천명(知天命)이 되는 해 1월. '보기 좋은 죽음'에 대해 잠시 읊조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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