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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결국은 유비 (상)

by 테서스

1. 서론


[어릴 때는 유비가 좋더라. 젊어서 읽으니 조조가 좋더라. 그리고 늙어서 다시 읽으니 결국 유비가 제일 낫더라.]


이미 주제가 서론 제일 앞줄에 나왔네요. 그래도 이것저것 읊어 보겠습니다.


저는 삼국지를 좋아합니다. 현대 중국은 좀 그렇지만... 중국 고전은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뭐 '일본 반대하면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 드라마 다 반대해야 해욧 벚꽃도 일본꽃이니까 싫어하세욧 빼애애액!'을 시전하는 사람들이라면 '중국 고전도 미워해야 해욧 빼애애액!'을 외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막장인 사람들은 살포시 무시해 줍시다.


중국 고전 중에서도 삼국지가 제일 낫죠. 나름 유럽 문화권에서 고전으로 인정받는 '일리아드'와 비교해도 스케일 / 등장인물 / 사건의 연계와 전개방식 등에서 삼국지가 훨씬 더 낫습니다. 현대에 와서 (일본의 19금 콘텐츠 제작사였던) '코에이'가 게임으로 리메이크하면서 더 친숙해지기도 했고.


코에이 삼국지 이후 원작 삼국지연의와 정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삼국지 평역'이 유행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문열 작가님이 삼국지 평역본을 썼고, 일본에서는 창천항로 / 화봉요원 등의 만화가 나왔으며, 삼국지로 먹고사는 코에이도 다양한 시리즈를 내면서 여러 관점에서 삼국지를 재조명했습니다.


이 와중에 한때 '조조'가 주목받기도 했었죠. 게임 삼국지의 원조국밥 코에이에서는 조조를 파라곤(Paragon) 급 인간으로 우대해 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코에이의 양아들 '조운'과 영원한 코에이의 깡패 '여포'도 나름의 방식으로 우대해 줬습니다만 조조가 조금 더 우위에 있습니다.)


게임 스탯(Stat)만 봐도 조조가 파라곤 급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스탯 인플레가 가장 심했던 삼국지 5 기준으로 각종 아이템까지 합친 조조의 스탯은... 무력99 지력97 정치력105 매력98. 다른 시리즈에 나오는 '통솔력'은 최소 93 ~ 최대 99 사이. 이 정도면 파라곤 인정해 줘야죠.


반면, 게임의 유비는...


위 삼국지5 기준으로, 아마 유비는 무력87 지력79 정치력85 매력99 였을 겁니다. 시리즈마다 다르지만 통솔력은 대략 70~80 사이고, 낮을 때에는 68 급이어서 장군이 못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름 개세(蓋世)의 영웅 치고는 통솔력이 너무 낮았죠.

(대신 관우가 통솔 100으로 나오니까 관우가 전쟁지휘 하면 되긴 합니다만...)



게임에서는 유비가 별로이긴 합니다. 20세기 말~ 21세기 초 무렵에 삼국지가 재조명 되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던 조조가 더 크게 인정되는 효과도 있었고, 삼국지연의의 묘사만 보면 유비가 제대로 싸우는 장면이 없으니 통솔력이나 무력이 낮을 만 해요. 딱히 머리 쓰는 것도 없었고.


하지만, 나이 들어서 다시 삼국지(연의)를 보면... 오히려 유비가 제대로 하는 게 없어서 더 공감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아무래도 살면서 성공의 순간보다는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더 많았었으니, 그 숱한 실패와 좌절과 빤쓰런(!)을 버텨낸 유비의 인생이 더 낫습니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삼국지의 유비 행적을 간단히 정리하고 + 유비의 마지막 몰락 '이릉대전'에 대해 제 의견을 적어 보겠습니다.



2. 본론


(1) 유비의 행적 : 무한 빤쓰런, 그러다 결국 승리를 거머쥐다


"삼국지 처음 읽는 사람인데 유비가 또 도망가고 있어요. 이거 재밌나요?"


이 질문을 받으면... 도대체 어느 장면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삼국지를 줄줄 외우는 '삼국지빠'들도 '유비가 도망간다.'는 말만으로는 이게 어디쯤인지 짐작할 수 없어요. 10권짜리 소설의 앞 4~5권 분량까지 계속 도망만 다니는 것 같습니다.


대략 제 기억에 의존해서 정리해 보면,


- 시작 단계에서는 돗자리/짚신 장수

(뭐 이건 연의에서 과장한 것이긴 합니다. 실제 유비는 나름 잘 사는 집안 출신이었던 듯 해요.)


1) 평원 태수 하다가 독우(상급자)를 때려죽이고 빤쓰런


- 공손찬 밑에서 밥 얻어먹다가 동탁 토벌전에 따라갔는데 잠시 활약하는 듯 했으나 동탁이 '낙양 퐈이야!'를 시전하면서 뻘쭘하게 귀환


2) 공손찬이 원소와 싸울 때 잠시 도와 줬으나 계교 전투에서 공손찬이 박살나면서 함께 퇴각 (그래도 여기는 빤쓰런 수준까지는 아닙니다.)


- 서주 도겸을 도와 주러 갔다가 어영부영 서주를 먹었는데 하필 '여포'를 끌어들이게 됨


3) 여포와 진궁이 서주를 빼앗겠다고 들이치자 패배해서 빤쓰런


- 여기서 '조조'에게 의탁. 조조가 유비를 예주목으로 임명해 주고 꽤 잘해줬는데 원술을 치겠다는 명목으로 병력을 빌려서 나간 후 서주를 재점령


4) 빡친 조조가 서주로 쳐들어 오자 또 패배해서 빤쓰런. 이 때 의형제 관우/장비와 헤어짐


- 유비는 다시 '원소'에게 의탁하나... 의리의 쿨가이 관우가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 돌아오게 되니 다시 원소를 떠나게 됨. 장비와 만난 후 여남으로 가서 황건적의 잔당을 이끌던 '유벽'과 힘을 합침. 황건적 출신 병사 수만 명을 얻음.


5)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털어 버린 조조가 여남으로 쳐들어 오자 맞서 싸우지만... 또 패배해서 빤쓰런.


- 이번에는 '유표'에게 의탁함. 유표가 신야성을 내 줘서 조조를 막는 방패막이로 쓰자 대략 7년 동안 띵까띵까 놀고 먹음.


6) 7년간 놀다가 서서 + 제갈량의 도움으로 조인과 하후돈의 공격을 연달아 격파하고 조금 잘 싸우는 것 같았지만... 조조가 직접 쳐들어 오자 아예 신야성을 버리고 빤쓰런. 여기서는 백성들을 데리고 가다가 더 크게 박살남. (코에이의 양아들 '상산 조자룡'이 83만 대군을 혼자 뚫고 가는 개구라(!)를 시전)



대충 소설 중반부까지 크게 6번(공손찬 밑에 있었을 때 패배를 빼도 5번) 패배하거나 도망갔고 그 동안 4명의 군주에게 의탁했습니다. 중간에는 황건적 출신 병사들을 지휘한 적도 있었고 백성들을 데리고 도망가다가 아내(감부인이었나 미부인이었나 잘 모르겠습니다)가 죽는 일까지 겪게 됩니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중간에 꿈을 접고 의탁한 군주의 신하로 편입되었을 거예요. 조조 밑에 있었으면 예주목 자리를 유지하면서 나름 '유비에게 의탁한 마초' 급으로 대우받았을 것이고, 유벽의 황건적 잔당을 흡수했을 때에도 괜히 조조와 맞서지 말고 항복했으면 최소한 '흑산적 수령 장연' 정도의 대접은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유비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망하고 도망쳤는데도 그때마다 (참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도움을 받아 다시 세력을 일궈 냈습니다.



게으른 천재 최훈은 '삼국전투기'에서 조조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그 재능 중 가장 탁월한 재능은 실패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정신이었다.]


물론 조조도 '실패를 극복하고 도전하는 정신'이 강했지만, 이 분야의 최고봉은 단연코 유비입니다. 본진까지 다 털려서 빤쓰런 하는 상황을 5~6번 겪었는데도 계속 자신만의 세력을 일구기 위해 다시 시작하는 걸 보면 "와 이 상황에서 또 일어선다고? 대단한데!" 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이 50이 되니 더더욱 유비가 대단해 보입니다. 유비가 연의 중반부에서 제갈량을 영입하고 또다시 조조와 싸우며 도망가던 때가 이미 50 넘은 시점인데, 이 나이에도 유비는 절대 굴복하지 않죠. 오히려 끝까지 버티며 반전의 기회를 노려 결국 승리를 거머쥡니다. 심지어 17살 나이의 소녀 '손상향'을 새 아내로 맞이하는 남자승리(?)를 구현하기도 합니다;;


(손상향이 게임에서 이미지 세탁하면서 초선 급 미녀로 거듭나긴 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리 예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금방 갈라섰겠죠. 그 뒤에 유비가 또 새로운 아내를 얻긴 합니다만...)



아무튼 유비는 '불굴 그 잡채'입니다. 연의의 각색으로 '돗자리와 짚신 팔던 서민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유비는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민초(民草)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아흔아홉번 패배할지라도 단한번 승리 단한번 승리 바리케이드 넘어 저 넘어 마침내 노동해방을 구현할 것 같은 인간상을 쌓아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불굴의 끝에 기회를 잡습니다.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막아내고 형주와 그 남부 4군을 얻었으며 촉 땅까지 집어삼키죠. 개발 수준과 인구로 따지면 위나라 세력의 1/5 정도밖에 안 됐지만 '한 번의 전투'에서는 조조와 맞먹을 수 있을 만한 세력을 일궈냅니다.


유비는 조조를 상대로 크게 한따까리 뜰 수 있는 땅을 찾아 진격합니다. 목표는 한중(漢中).


한중은 지형이 험해서(잣같아서) 병력의 우위를 활용할 만한 지역이 적습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병력이 적어도 소수정예'인 쪽이 유리하죠. 적벽대전에서 한 번 꺾인 조조는 과거의 정예병을 많이 잃었고, 유비는 오랜 빤쓰런으로 단련(!)되고 형남4군+촉 점령에서 추가 경험을 쌓은 병력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유비의 선택은 제대로 적중했습니다. 조운과 함께 유비의 조아(爪牙 : 발톱과 송곳니)로 평가받는 '황충'이 위나라 숙장 '하후연'을 죽여버리고, 유비의 왼팔인 장비는 위나라에서 손꼽히는 명장 장합을 발라버립니다. 결국 조조 빤쓰런.


(조조가 빤쓰런 이후 닭갈비(계륵) 문제로 '양수'를 죽여버리는 건 보너스.)



이 때가 유비의 전성기였습니다. 한평생 도망만 다니던 유비가 천하영웅 조조를 격파하고 '조조와 맞먹는 영웅'으로 등극한 순간이었고, 삼국지연의를 읽으며 답답해 하던 독자들이 그 답답함을 잠시 날려 버리고 "유비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양념이 더 들어가죠. 오호대장군. 다섯 명의 호랑이 같은 장수들이 명예 대장군 직책을 받습니다.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 삼국지5 기준으로 각각 무력 98(+10) 99(+9) 98 97 98(+11). 이미 죽어 버린 여포를 빼면 이 강타선을 막을 수 있는 조합은 없습니다. 위나라의 장료/장합이 각각 무력 95/93이고 무력돼지 허저가 98이지만 관장마황조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오나라는 무력96 콤비 태사자+감녕이 있고 언데드 급 생존력을 가진 '주태'도 무력 94로 뒤를 받쳐 주지만 역시 관장마황조 사기 조합을 당해낼 수 없죠.


유비의 세력은 실로 막강해졌습니다. 전체 세력으로 따지면 여전히 위나라가 몇 배 더 크긴 하지만, 고대~중세 전투에서는 한 나라의 병력을 일제히 좁은 전장에 집중시키기 어려우니 '지역별 전투'가 벌어지게 되고 이 지역전투에서 연속으로 패배하면 큰 세력도 순식간에 몰락합니다. 장군과 병사들의 숙련도, 자신감, 사기 측면에서는 한중을 점령할 당시의 유비군이 조조군보다 더 강했다고 평가받을 만 합니다.


이렇게 최전성기를 구가하다가... 갑자기 망해버리죠. 정말 허무하게.



(2) 유비 세력의 몰락 : 관우 잃고 형주 땅 날려먹고 장비까지 잃고


유비 본인의 전성기는 '한중 정벌'에서 완성되는데, 유비 세력 전체로 보면 더 크게 확장합니다. '형주 태수 관우의 맹활약'이 더해지죠.


유비 세력은 형주 남부 4군 + 촉 지역 + 한중까지 거머쥐었지만, 전략적으로는 형주 땅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형주 땅이 중원(中原)으로 나가는 길목이었거든요.


촉 땅은 입구 자체가 험준한 산이어서 깡촌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형남 4군은 그냥 형주의 생활권이었고, 한중은 촉 못지않게 험준한 산이 많고 오랫동안 오두미도(교주 장로)의 지배를 받던 곳이라 여기도 그냥 혼자 노는 분위기였습니다. 지키는 건 쉽지만 공격 교두보로 삼기에는 영 거시기 한 땅들이죠.


그나마 한중 쪽이 장안~낙양으로 이어지는 교두보가 되긴 합니다만, 역으로 위나라 측에서는 입구를 차단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실제로 나중에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지고 북벌할 때에도 한중에서 조금 더 진격해 위나라 영역 입구에서 투닥거리는 게 전부였죠. 이 길만 노려서는 답이 안 나옵니다.


반면 형주 땅은...


오랫동안 위나라의 수도 역할을 했던 '허창'과 가깝습니다. 사방이 트여 있어 지키기에는 영 나쁘지만 반대로 사방이 트여 있어 사방으로 공격해 가기에는 좋습니다. 형주를 틀어쥐고 있다가 위나라가 휘청거린다 싶으면 곧장 중원을 노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유비는 이 형주 땅을 '관우'에게 맡깁니다. 실력, 인망, 군주 본인의 신뢰 등등에서 최고점을 받을 만한 [진정한 오른팔]에게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땅을 맡긴 거죠.


(* 어떤 분들은 '제갈량이 관우를 견제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시는데,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관우와 제갈량의 지위는 너무 심하게 차이났어요. 젊은 핏덩이 제갈량이 나름 똑똑하긴 했겠지만 관우의 경력과 실력과 세력 내 신망과 신뢰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관우의 실력은 유비군 안에서뿐만 아니라 당대 최강세력 '조조군'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조조 밑에 있을 때 안량을 직접 베어버렸고 문추까지 죽였으니까요. (정사 기준에서는 문추를 직접 죽인 게 아니라고 합니다만 아무튼 문추의 부대를 깰 때 활약했던 건 맞죠.)


그 대단한 관우가 조조를 떠나 유비 밑으로 돌아왔습니다. 듣보잡 벤처기업 부사장이 삼성전자로 영입되어 애플을 때려잡는 데에 큰 공을 세운 뒤 예전보다 더 심하게 망한 벤처기업으로 돌아온 것과 맞먹죠. 21세기에는 이런 사람을 찾을 수가 없고, 인류 7000년 역사를 통틀어 봐도 이 정도로 의리(으~~~~리!)를 지킨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유비군 내에서 관우를 의심하거나 그 능력을 깎아내리는 건 미친 짓입니다. 관우는 진정 Top of the top 이었어요. 유비군뿐만 아니라 당대 중국 전체를 합쳐서 봐도 '1명의 장군'으로서는 최고로 평가받았을 겁니다.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관우의 오만한 성격'을 걱정하며 지적질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실에서 가능했는지는 의문입니다. 30대 중반 정도 된 미국유학파 기획팀장이 50살 넘은 부회장한테 '부회장님 님 좀 오만한 듯. 그 오만한 성격으로 살다가는 협력업체한테 뒷치기 당하심. 조심하셈.' 이라고 얘기하면 통할까요? 안 될 것 같죠?


제갈량의 지적질은 그냥 '지력100 데미갓 제갈량'을 만들어 주려고 연의에서 띄운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네요. 관우의 실력, 경력, 인성, 신뢰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뛰어나기도 했구요.



실제로 관우는 조조군을 상대로 그 실력을 입증합니다. 방덕+우금이 이끄는 87500명의 병력을 수공(水攻)으로 쓸어 버리면서 방덕을 죽이고 우금을 포로로 잡았으며, 위나라의 개국공신이자 초반부 무력깡패였던 '조인'을 깨부숴 번성으로 몰아넣습니다. 병력만 충분하면 금방이라도 허창으로 밀고 가기 직전이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삐끗했다면 위나라는 정말로 위험할 수 있었습니다. 천하의 조조가 심각하게 수도를 업 땅으로 옮기려고 고민할 만큼 관우의 기세가 대단했고, 조인이 무너졌거나 / 서황의 지원군이 격파당하는 등 추가 변수가 있었으면 허창이 함락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형주 수비 병력만으로 위나라를 밀어붙이며 천하의 판세를 좌지우지한 명장, 관우. 그는 엄청나게 강했습니다. 잘하면 중원까지 평정할 기세였고, 최소한 여기서 물러나더라도 형주 땅을 잘 지켜내고 위나라의 병력을 섬멸한 공적은 그대로 남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상 못한 일이 터지죠. [수염 퍼런 애송이의 뒷치기 푹찍억]이 들어옵니다.



'수염 퍼런 애송이'라고 쓰긴 했지만... 오나라 손권이 뭐 잘못한 건 아닙니다. 손권의 명령을 이행하는 (괄목상대의 대명사) '여몽' 또한 자기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적절한 판단을 했습니다.


천하의 절반에 중원(中原)을 틀어쥔 위나라를 상대로 촉+오 두 나라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건 당연한 얘기지만, 제대로 힘을 합치려면 촉과 오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촉 혼자 다 처묵처묵하고 오나라는 찐따 취급하면 오 입장에서는 빡치죠. 손권이 어린 것과 별개로 오나라 자체는 무시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딴 식으로 동맹 운용할 거면 때려쳐야 됩니다.


손권은 과감하게 [C파 촉오동맹 따윈 때려쳐!]를 시전했습니다. 촉나라에게 뒷치기 푹찍억을 시전해 형주 땅을 빼앗고 '오나라가 주도하는 판'을 만들려 했고, 그 시도 자체는 충분히 적절했습니다.


문제는 촉 쪽에 있었습니다. 관우가 없는 동안 형주를 수비하는 '미방'이 미리보기방지 기능을 작동해서 있는듯 없는듯 숨어 지내다가 갑자기 배신크리 뽷! 이게 너무 큰 문제였죠.



미리보기방지 아저씨 미방은 형주배신 이전까지 별로 존재감이 없었고 대다수 삼국지 게임에서도 무력 60 초반에 지력 20대 잡쓰레기 D급 장수로 등장합니다만... 현실의 미방은 꽤 대단했습니다. 거의 창업공신 바로 다음 가는 지위를 갖고 있었어요. 어쩌면 황충/조운/위연보다 더 크게 기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미방은 '미축의 동생'입니다. 삼국지연의만 읽으면 미축의 동생이라는 게 크게 실감이 안 나는데요. 미축은 [서주 땅을 쥐락펴락하는 부자]였고, 미축의 여동생이 유비의 둘째 아내인 '미부인'입니다. 즉, 유비 세력 초창기에 돈줄이었고 동시에 유비의 처남이었죠.


현대로 치면 완전 듣보르자브 벤처기업 사장에게 대규모 투자를 해 주고 여동생을 그 벤처기업 사장과 결혼시킨 것입니다. 그 벤처기업이 급성장하여 재계3위로 올라선 거구요.


현대 배경이라면 미축-미방-미부인 3남매는 최초 벤처기업에 투자할 때 주식지분을 받았을 것이고, 그럼 재계3위 된 후에도 최소 2대주주로서 떵떵거리면서 살았을 겁니다. 유비가 재계3위 재벌의 총수라고 해도 미씨 3남매 앞에서는 벌벌 기었겠죠. 2대주주 파워 무시하다가 경영권분쟁 생기면 큰일나잖아요.


물론 서기 2세기~3세기에는 주식회사 제도가 없었으니 유비가 미씨 3남매의 지분(?)에 휘둘릴 일은 없었습니다. 왕 됐으면 입 싹 씻어도 되긴 하죠. 3남매 중 미부인은 이미 죽어버렸으니 바람 좀 펴도 상관없구요;;


그렇긴 하지만, 유비가 그렇게 신의 없는 인간도 아니고 무엇보다 의리(으~~~리!)를 강조하던 남자였습니다. 미축 미방 형제들을 내칠 이유도 없고 그럴 실익도 없었으며 의리 때문에라도 소중히 데려가야 했습니다. 그래야 다른 부하들도 충성하겠죠.


유비가 신의를 지키는 한, 미방은 준 개국공신 급으로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관우 장비만큼은 안 되더라도 최소한 외척 중 한 명으로서 조조 세력의 조홍 정도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미방이 배신할 이유도 없었죠. 조홍이 조조를 배신할 리 없는 것처럼, 유비의 처남이고 온 가문의 재산을 유비에게 꼬라박은 미축-미방이 유비 세력을 배신하고 어디 딴 데 투항할 가능성은 거의 오조오억분의 일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 낮은 확률을 뚫고 미방이 배신해 버렸습니다.


그 전에 병량수송 문제로 관우가 미방을 겁나 갈궜다고는 하는데, 관우도 '설마 이 정도로 갈궜다고 미방이 배신하겠어?' 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어디 직장내괴롭힘 신고센터 운영하던 시대도 아니고, 신고센터가 있다고 해도 미방 정도면 최소 전무급인데 전무가 부회장한테 갈굼당했다고 회사 재산 홀랑 팔아먹고 도망갈 가능성은 낮죠.


하지만 미방은 배신해 버렸습니다. 상인으로 위장한 여몽의 특작부대가 형주 땅으로 침입해 왔다고 해도 본성을 굳게 지키며 기다렸다면 최소한 관우의 본대가 질서를 유지하며 후퇴할 시간은 벌어 줬을 텐데, 그것마저도 하지 않은 채 즉각 투항해 버렸습니다.


이게 너무 컸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만회해 볼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이었습니다.



관우의 본대는 개미떼처럼 흩어집니다. 제 아무리 사기충천하던 군대라 해도 식량 보급이 끊기면 버틸 수가 없죠. 형주를 지키던 미방이 배신하고 병량 운송을 중단하는 순간 관우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삼국지연의를 읽던 사람들이 너무 빡쳐서 책을 집어던진다는 구절이 진행됩니다. 신장(神將) 관우 사망. 관공 어찌하여 몸은 두고 머리만 오셨소.


유비는 그 인생 최고의 순간에 의형제 관우를 잃고 천하로 나아가는 길목인 형주 땅까지 잃습니다. 몇 년 후의 일이긴 하지만 관우의 복수전을 준비하다가 또다른 의형제 장비까지 잃게 되죠.



처음 읽을 때에는 빡치는 구절입니다만... 우리는 중딩 때 칸트의 미학론에 나온다는 '비극의 미(美)'를 배웠습니다. [카타르시스]라고 하죠.


밑바닥 신발장사로 시작해 의리로 뭉쳐진 의형제들과 함께 온갖 고생을 하다가 결국 천하영웅 조조를 격파하고 한중왕에 올랐지만, 한순간에 몰락하면서 의형제들이 낙엽처럼 스러져 버립니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생 살면서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많았던 50살 즈음에 이 구절을 돌이켜보니... 안타깝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네 범부(凡夫)의 인생이 꼬이고 좌절하고 힘들었던 만큼 1800년 전의 몰락이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답습니다.



나관중이 유비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건 실로 탁월했습니다. 원~명 시대에 칸트의 미학론 내지 카타르시스 이론을 공부했을 리는 없지만, 적어도 '유비의 비극적인 몰락이 가장 큰 감동을 준다!'는 건 작가의 본능으로 알 수 있었겠죠. 그 이전에 1000년 이상 쌓인 '대중의 선택'도 있었을 거구요.


거기에 더해, 유비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의리(으~~~리!)의 마지막에 걸맞는 또 하나의 비극이 있죠. [이릉대전]입니다.


글 쓰다 보니 필 받아서 괜히 길어졌네요. 이릉대전은 할 말이 많으니 챕터를 바꿔서 서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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