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편에 이어서 씁니다.)
(3) 이릉대전 : 유비의 처절한 몰락
1) 이릉대전은 필요했는가?
유비가 처절하게 마지막 싸움을 했고 그 결과 처절하게 패배하여 사실상 촉나라의 미래를 파촉-한중 지방에 가둬 버린 전투, 이릉대전.
대다수 평역에서는 '이릉대전은 유비의 고집 때문에 무리하게 진행된 싸움이었다. 결국 크게 패배하면서 유비는 몰락했고 촉나라는 미래를 잃었다.'라고 평가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문열 작가님의 평역본도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대충 이릉대전이 촉 입장에서 전략적으로 필요성이 떨어지는 전쟁이었고 사소한 일에 너무 꼬라박았다가 폭망했다고 보는 게 80% 이상 중론이긴 하죠.
뭐, 세력 구도와 객관적인 전력 비교를 통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때 이릉대전은 하면 안 됐다'는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면 그렇죠.
그런데 말입니다.
[유비]가 그렇게 합리적인 판단만 한 사람인가요? 각각의 전쟁을 계획하고 싸움에 임할 때 객관적인 전력 비교를 통해 유불리를 판단하고 이길 수 있는 싸움만 골라서 한 사람인가요?
작게 잡아도 다섯 번 이상 빤쓰런을 하고 온갖 불리한 조건에서도 끝내 '조조에 맞서는 인격자'로 스스로를 포장했던 게 모두 합리적인 판단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빤쓰런의 제왕 유비는 절대 합리적으로 유불리를 따져 전쟁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역으로 [당장 패배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뢰를 강조하고 의리(으~~~~리!)를 드높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불리를 따졌다면 유비는 조조 밑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조조가 예주목 자리를 줬을 때 거기 눌러앉았을 거예요. 굳이 원술을 친다는 명목으로 조조의 병력을 빌려 서주로 되돌아가는 고생 따윈 안 했겠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전력 비교'를 했다면 조조의 병력을 빌려서 조조와 맞선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니까요.
또한, 유불리를 따졌다면 관우도 조조를 섬겼을 것이고 유비에게 돌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관우가 조조 밑에 있을 때 원소의 상장 둘을 죽였고 거의 최고 수준으로 대우받았는데, 관우는 그걸 다 뿌리치고 유비에게 돌아왔어요. 심지어 유비가 폭망해서 예전 벤처기업 수준보다도 못한 상태로 원소 밑에서 찌질대고 있는데도 돌아왔습니다.
이후에도 유불리를 따졌다면 할 수 없는 싸움이 많았어요. 여남의 황건적 잔당들로 조조에게 맞섰던 일도 객관적으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유표에게 의탁해 신야성을 빌리고 거기서 조인과 하후돈을 격파했던 것도 객관적으로는 불리한 싸움이었고, 적벽대전에서는 아직 나라 기틀도 못 닦은 오나라와 손을 잡고 천하패자 조조에게 맞서 싸웠는데 객관적인 전력만으로 보면 다 항복했어야 정상(!)이었습니다.
유비가 이긴 싸움도 '객관적인 전력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해서는 안 되는 싸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형남4군 정벌, 이미 조조에게 항복한 한중으로 쳐들어가 크게 역전승을 거뒀던 한중 전투, (관우가 주도하긴 했지만) 형주 방어 이후 양양 공격 및 지원군과의 싸움은 객관적인 병력 숫자 면에서 영 불리한 전쟁이었죠.
즉,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숫자놀음은 유비 집단에게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한평생 그러했어요. 유비, 관우, 장비 다 그러했고 모두 지휘관의 역량과 소수정예 병사들의 힘으로 불리한 싸움을 뒤집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못 뒤집고 패배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어디선가 다른 군주의 지원을 받아 다시 일어섰습니다.
물론 그런 시대는 지났죠. 천하에 수십 명의 군주가 군웅할거를 하고 있을 때에는 의리.신뢰.악당에 맞서는 인격자 코스프레(!)가 나름 좋은 전략이었고 패배시에 재기할 수 있는 무형자산으로 활용 가능했지만, 천하삼분지계가 완성되고 위-촉-오 세력이 각각 독립적인 국가로 기능하던 시점에서는 그런 무형자산의 효과가 떨어졌습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숫자놀음'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긴 했습니다.
또한, 유비 본인을 비롯한 초기 멤버들은 더 이상 의리(으~~~리!) 놀이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관우는 죽어버렸고 장비도 더러운 성질머리 때문에 푹찍억 당해서 죽었죠. 유비 본인은 70살이 넘어서 너무 늙었습니다. 황충도 죽었고 마초는 조금 더 살았는지 아닌지 기록이 엇갈린다고 합니다만 전쟁에 써먹을 만한 상태는 아니었을 거구요.
(* 참고로 유비가 이릉대전에 마초를 데리고 가지 않은 걸 놓고 '마초가 원래 군주여서 병력을 줄 수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냥 마초가 맛탱이 갔을 것 같아요. 조조가 마초 가족을 다 죽여 버렸고 한중의 장로에게 도망쳤다가 애첩까지 빼앗겼으니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겠죠. 이런 생활 10년만 계속하면 마초 아니라 여포 항우라도 맛탱이 갑니다.
찾아보니, 정사 기준으로 마초는 이릉대전 직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 전부터 건강이 악화되었겠죠. 안타깝습니다.)
유비의 의리시대는 지나갔고 이미 3국이 각자의 세력을 안정시키고 있지만. 유비 본인은 이미 70살을 넘어서서 젊은날의 협객놀이는 불가능하고 함께 협객놀이를 했던 의형제들은 다 죽었으며 남아 있는 부하들 중에서도 그 협객놀이에 동참할 만한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유비는 싸워야 했습니다. 그게 유비의 본질이니까요. 한평생 지켜온 유비의 신념이었으니까요.
유비의 신념에 동의하지 않는다구요? 그럼 딴 데 가야죠. 조조 밑으로 가든 손권 밑으로 가든 딴 세력으로 가야 합니다. 전제군주 시대에 군주의 신념에 동의하지 않고 불만이 많다면 떠나는 게 맞습니다.
물론 다른 게 마음에 들어서 유비 밑에 남아 있을 수는 있죠. [관우 장비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의 수염 퍼런 애송이를 도륙한다!]는 신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다른 모든 면에서 유비 부하로 사는 게 더 낫다면 계속 남아 있는 게 합리적입니다. 제갈량, 조운이 그러했습니다.
어쨌든 유비는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나라로 쳐들어 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바탕 칼부림을 해야만 했습니다.
제가 유비의 인생을 살았다 해도 오나라 공격했을 겁니다. 주위에서 객관적인 전력이 어쩌고 저쩌고 백날 C부려도 결국에는 제 마음대로 쳐들어 갔을 겁니다.
그게 유비죠. 신발가게 주인에서 황제까지 올라간 의리(으~~~리!)의 남자는 그러해야 합니다.
2) 그나마 타이밍도 맞췄고 패배해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조절했습니다
삼국지연의 기준으로는 유비가 진짜 촉나라 기둥뿌리까지 뽑아서 오나라에 '영혼의 한방 러쉬'를 들어간 걸로 나옵니다. 분명 제갈량이 천하삼분지계를 얘기할 때에는 '촉 인구가 대략 백만 호 정도 된다'고 했는데 무려 75만 명을 동원해 버리죠. 대부분의 집집마다 1명씩 징병한 겁니다.
노동력이 곧 농사 결과로 이어지던 시대에 이 정도로 징병하면 나라 망합니다. 집집마다 4명 산다고 가정하면 거의 인구의 1/5을 징병한 건데, 대한민국 5천만 인구 중에 1천만명 징병하면 뭐... 농업생산력이 폭발적으로 향상된 현대 사회에서도 나라 망하기 딱 좋습니다.
다만, 실제로는 이 정도까지 기둥뿌리를 뽑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촉나라의 국력을 고려할 때 과도하게 무리한 건 맞지만 일단 병력 자체는 그렇게까지 많이 데려가진 않았어요. 공격 타이밍도 적절히 조절했구요.
병력부터 보면...
연의가 아닌 정사 기준으로 볼 때, 이릉대전에 유비가 데려간 병력은 4만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연의의 100만 호 인구도 뻥튀기고) 실제 촉나라 인구는 당시 약 100만명이었다고 하는데, 유비는 대략 4% 가량의 병력을 끌고 간 겁니다.
물론 4%도 많죠. 고대~중세 냉병기 전투에서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병력의 상한은 약 3%로 봅니다. 그것도 국가가 매우 건실하고 튼튼하며 몇 년 동안 농사를 잘 지어서 여유 식량을 확보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고, 제대로 농사를 못 지었다면 3%를 징병했다가 다음해에 흉년으로 고생합니다.
그래도 나라가 망할 정도는 아닙니다. 크게 패배하면 나라가 많이 흔들리긴 하겠지만 극복 못 할 정도는 아닐 듯 합니다. 실제로 제갈량이 승상 자리를 맡으면서 이릉대전의 손실을 상당 부분 극복하고 촉나라의 국력을 회복시키긴 했었죠.
그리고 공격 타이밍. 이것도 관우 죽자마자 미쳐서 영혼의 한타 러쉬를 떠난 게 아닙니다. 장비가 몇날 며칠을 울다가 병사 전원에게 하얀옷을 입히겠다고 설치는 것만 보면 관우 죽고 몇 달 내에 공격 시작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2년 이상 걸렸어요. 그 동안 유비는 (촉나라 일대 한정이지만) 황제 자리에 오르기도 했구요.
무엇보다도, 유비가 오나라를 침공한 건 [조조가 죽은 이후]였습니다. 조조가 죽고 조비가 물려받으면서 헌제를 협박해서 황제 자리를 찬탈하고 그 와중에 위나라 전체가 뒤숭숭해지는 타이밍을 노려 오나라에게 복수전을 시작한 거죠.
즉, 유비가 한방러쉬 실패해서 촉나라가 기울더라도 '권력 승계 초반에 내부적으로 불안한 위나라'는 대군을 동원해서 쳐들어오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이릉대전 패배 후 위나라가 쳐들어왔지만 그렇게 큰 타격은 없었죠. 조비 쪽도 내부적인 혼란 문제 때문에 촉나라를 멸망시킬 만한 대군을 동원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 연의에서는 '5로 연합군'을 동원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반대로 말하면 위나라 단독으로 운용할 병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당시 조비에게는 '북방 오랑캐들을 평정한 철기병 부대의 지휘관 조창' 등 권력투쟁을 걸어 올 만한 잠재적인 경쟁자가 있었고, 조비 본인이 황제 자리를 찬탈했으니 위나라 내부적으로도 어수선했을 겁니다. 그럼 조비도 몸 사려야죠.)
유비는 시기적으로 위나라가 개입하기 어려운 시점에 맞춰 군대를 일으켰고, 그 군대도 나라를 말아먹을 만큼 많이 동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전략적으로는 위나라를 공격하는 게 더 나았겠지만 위나라가 크게 움직이기 어려울 때 오나라를 짓밟아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오나라가 잘 막았을 뿐이죠. 특히 여몽의 뒤를 이어 도독으로 등극한 '육손'이 워낙 잘 막았습니다.
3) 화계지왕 육손
삼국지8에 '전법 시스템'이 도입되었는데, 책략계 전법 중 화계(火計. 번역본에서는 '열화'라고 나왔는데 그냥 일반 용어대로 '화계'라고 하겠습니다.)가 있습니다. 화계 레벨이 5가 되면 적 부대 5~6개를 뒤덮을 만큼 큰 범위로 불을 지를 수 있고, 6레벨이 되면 완(完)이 되어 화계 성공률이 더 높아집니다.
화계 전법이 5레벨 이상이면 이걸 시전할 때 "~~의 진을 불로 갈아엎어 주겠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러고 실패하면 급 뻘쭘하겠지만... 6레벨 '완'이면 거의 실패하지 않습니다. 진짜로 적진을 불로 갈아엎어 버리죠.
이 '화계 완'을 보유한 책사가 2명 있습니다. 한 명은 제갈량. 그리고 다른 한 명이 바로 '육손'입니다.
(참고로 적벽대전에서 조조 측 투함 수백 척을 불태워 버린 '주유'가 화계5입니다. 대신 주유는 수계(水計)가 6레벨 완입니다.)
게임에 등장하는 육손이 '화계 완'을 보유하게 된 이유는 당연히 이릉대전 때문입니다. 700리에 걸쳐 펼쳐진 75만 명의 대군을 단 하룻밤 만에 모두 불길에 가둬 버렸으니 뭐... 화계 완 아니면 섭섭하죠.
제갈량도 이 정도로 넓은 범위에 불을 지르진 못했습니다. 등갑군 3만명을 모두 불태워 죽였고 사마의를 가둬 불태워 죽이기 직전에 비가 쏟아져서 못 죽이긴 했지만 (만나서 기분 더러웠고 다시 태어나도 만나지 말자.) 아무튼 동급 '화계 완'인 제갈량도 육손보다는 임팩트가 떨어지는 편입니다.
실제로는 75만 대군까지는 아니었고 4만 명을 불로 공격한 것이었지만, 그것만 해도 대단합니다. 개세(蓋世)의 영웅 유비를 완전히 몰락시켰고 촉-오 경쟁에서 촉나라를 완전히 내려앉히는 회심의 불꽃러쉬였죠. 육손에게 오나라 승상 자리를 줄 만 했습니다.
육손이 잘 막았습니다. 몇 달 동안 전투를 피하며 계속 수비에 치중했고, 보급선이 길어지는 데다 수군이 약해 양쯔강(장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유비군이 조바심을 내게 만들었으며, 그러다 유비군이 부대를 나눠 산마다 주둔시키게 되자 제대로 역습을 먹였죠. 진짜 대단했습니다.
유비에겐 아쉬운 일이지만... 70살 넘은 노영웅은 이미 시대에 뒤처지고 있었습니다. 개세의 영웅 유비는 이미 늙었고, 그를 끝없이 부활시켰던 의리와 신뢰는 3국 체계가 정립되면서 그 가치가 크게 떨어졌으며, 무엇보다도 믿고 맡길 수 있었던 부하들이 거의 다 죽어버렸습니다.
이러면 떠나야죠. 한세상 풍운아로 잘 살았으니 미련 없이 내려놓고 떠나면 됩니다.
유비의 오른팔이었던 '관우'가 말한 것처럼. [죽음이란 해가 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렇게 돌아가면 됩니다.
개세의 영웅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의리와 신뢰의 시대도 저물었습니다.
(4)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역시 유비
역사에는 주인공이 없습니다. 가끔 알렉산드로스 / 한니발 / 스키피오 / 카이사르 / 항우 / 유방 / 징기스칸 / 주원장 / 이성계 등등 일시적으로 주인공 포스를 뿜어내는 인물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후세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하니 주인공처럼 보이는 것 뿐 원래는 그냥 '사실'입니다. 주인공과 조연을 구분할 필요 없이 그냥 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가장 바람직한 역사 공부 방법입니다.
하지만 소설이라면?
소설은 재밌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재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죠.
현대 웹소설의 사이다패스(...)처럼 '무조건 주인공 킹왕짱! 시련 따윈 없어! 다 씹어먹고 다 죽여야 해!' 라는 사람도 있지만, 원래 '재미'라는 건 매우 다양합니다. 고생하는 주인공, 배신하는 조연, 밑바닥에서 빡빡 기면서 절망하는 인간들, NTR(?)까지. 온갖 고통과 고난이 재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단편적이고 천편일률적으로 무조건 다 이기는 주인공은 결국 질리게 되죠. 재미가 없습니다. 게임할 때 치트/에디트를 쓰면 재미없어서 엔딩까지 못 가는 것처럼, 너무 쉽게 성공하는 주인공은 오히려 인기가 떨어집니다.
삼국지를 역사로 대하지 않고 '소설'로 본다면. 천편일률적으로 계속 이기기만 하는 평면적인 주인공 말고 '밑바닥부터 빡빡 기어서 올라가는데 마지막에 크게 몰락하는 비장미'까지 포함해서 고차원적인 재미를 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뽑는다면.
주인공은 [여윽시 유비]입니다. 이 정도로 드라마틱한 인생은 창작물로도 만들기 어려워요. 마지막 몰락까지 완벽(?)합니다.
뭐, 유비의 몰락 과정에서 징집된 병사 수만명이 죽고 다치고 포로로 끌려가 굴욕당하긴 했겠죠. 이릉대전에서 죽고 다친 촉나라 병사들은 '유비 ㅅㅂㄹㅁ"을 외칠 만 합니다. 저도 촉나라 징집병이면 쌍욕 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잖아요? 1800년 전 중국 끄트머리에 살던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한들 우리랑 뭔 상관이죠? 그들의 고통은 아몰랑. 재밌으면 그만입니다.
유비의 의리(으~~~리!) 때문에 촉나라 징집병이 여럿 죽긴 했지만. 조조의 서주대효도 급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지만.
'소설'로 보면 재밌습니다. 영화 킹콩에서 킹콩이 금발머리 여주인공 말고 다른 금발머리 여인들을 모두 화면 밖으로 던져 버리고 그 여인들은 금방 잊혀지는 것처럼, 우리 현대인들도 1800년 전 민초(民草)들의 고통 따윈 책 밖으로 던져 버리고 잊어버리면 됩니다. 오로지 주인공의 고난과 시련과 그걸 모두 극복해 낸 승리와 그 직후에 찾아오는 몰락의 미(美)를 즐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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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책보다 게임으로 더 많이 즐긴 50대 아재의 넋두리. 이만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