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헛소리 따위 넣어둬 넣어둬
(앞 글에 이어서 씁니다.)
(3) 안전숙련도를 높이겠다고 진행한 뻘짓
앞에서 건설 산재사고가 많은 이유는 '직접 일하는 일용직 노가다들의 안전숙련도가 낮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업무숙련도와 무관하게 안전을 챙기는 숙련도가 낮다는 건데, 이는 업무숙련도 자체가 낮은 조공(시다)들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업무숙련도가 높은 상급 숙련공들도 안전 관련 규칙을 무시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본인이 잘 살아야 하는데 왜 안전규칙을 안 지키는 걸까요?
뭐, 굳이 비유하면 [경기도 광역버스 타면서 안전벨트 안 매는 현상]과 비슷합니다. 이 글 보시는 분 중에도 경기도 광역버스 타고 서울 내지 다른 경기도 지역으로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광역버스 45석 중 안전벨트 매는 좌석은 10개도 안 될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벨트 안 매죠. 80km 이상으로 달리는 광역버스가 히밤쾅 사고나도 잘 안 죽을 거라는 생각도 있을 것이고, 일단 사고확률 자체가 낮다는 생각도 있을 겁니다.
노가다 현장도 비슷합니다. 안전사고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다고는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경험하는 안전사고의 빈도는 그렇게 높지 않아요. 건설회사 법무 일만 13년을 한 저도 직장생활 내내 직접적으로 경험한 건설현장 산재사망사고는 3~4건 정도였습니다.
(* 사람의 목숨은 단 한 명도 소듕해욧 3명 죽었으면 엄청 많이 죽은 거잖아욧 빼애애액! 을 시전할 분들을 위해 미리 말씀드리면... 제가 같은 재직기간에 직접적으로 경험한 '자살사건'이 3건이고 '질병 사망'이 3건입니다. 본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숫자가 건설 현장의 사망사고와 맞먹어요. 국가 전체 통계로 보면 자살사건이 산재사망보다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이렇게 막상 건설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안전'에 대한 인식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데, 어쨌든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산재사망사고가 많은 건 사실이니 안전숙련도를 높이긴 해야겠죠.
그리고 어떤 영역이든 숙련도를 높이려면 '처음 배울 때부터 잘 배워야' 합니다. 결국은 [교육]이죠.
안전숙련도를 높이려면 관련 교육을 잘 해야 합니다. 이건 매우 당연한 결론이에요.
물론 결론이 당연하다고 해서 시행 과정이 당연해지는 건 아닙니다. 교육 제대로 하려면 준비할 게 한두개가 아니에요. 교육에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인력시장에서 내쫓는 제도도 따라와야 할 것이고, 교육에 필요한 비용도 투입해야 할 것이며, 교육을 전담할 사람도 많이 육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건설현장의 '교육 시스템'(이걸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을 들여다보면...
[노가다 교육]은 말 그대로 노가다 스톼일로 진행됩니다. 십장(대마, 오야지, 반장, 팀장 기타등등 동일용어 많음)이 조공(시다) 데리고 다니면서 눈대중으로 따라 배우도록 가르쳐요. 아예 안 가르치고 그냥 니가 눈치껏 배우라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처음부터 노가다 스톼일로 배우는데 업무숙련도 외에 안전숙련도를 따로 높일 리 없죠. 어차피 산재사고 확률은 노가다 그만두고 자살해 버릴 확률보다 더 낮은데 굳이 안전까지 챙길 이유도 부족합니다. 광역버스 타는 일반 시민들이 안전벨트를 안 매는 것처럼, 노가다 현장의 조공들은 안전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일을 배웁니다.
자, 여기서 본론 들어가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건설 현장의 안전숙련도 저조 현상을 만회하기 위해 '교육'이 필요한데,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요?
놀랍게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오히려 최소한의 교육 시스템을 없애 버렸어요. 위에서 얘기한 십장 제도를 법에서 지워 버린 거죠.
과거 한때 십장(十長)을 '시공참여자'라고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2008년까지 건설산업기본법 및 근로기준법 등에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법률용어였어요. 건설현장에서 인력을 모아 오고 그 인력에게 노가다 현장 업무를 가르치며 (가끔 돈 떼먹고 도망가긴 하지만) 급여도 챙겨 주는 역할이었습니다.
이 시공참여자(십장)들이 건설현장 노가다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들을 통해 각 공종 별 현장기술이 알음알음 전수되었고 조공(시다)들이 경험을 쌓아 숙련공으로 성장했으며 장차 십장으로 올라가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2008년에 건설산업기본법을 개정하면서 시공참여자 제도가 삭제되어 버렸어요. 아예 법에서 들어내 버렸죠. 현재 대한민국 건설 관련 법령에는 '시공참여자'라는 용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시공참여자가 없어진 걸까요? 노가다 십장들이 갑자기 모두 양복쟁이로 변신해 버려서 시공참여자 제도를 없앤 걸까요?
천만에. 그럴 리 없잖아요.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시공참여자 제도를 삭제시켜 버렸습니다. 정말로 아무 대책 없었어요. 시공참여자 제도를 없애는 대신 뭐 다른 걸 시행하겠다는 얘기도 없었고 시행한 정책도 없었습니다. 뭔가 계획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계획이 뭐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제 짐작인대, 아마도 당시에 어느 밑바닥 저능지 정치인 몇 마리가 모여 "노가다 일용직 문제가 심각하니 노가다 일용직을 아예 없애버리면 모두 정규직 될 거라구욧 빼애애액!"을 시전하면서 이런 얼척없는 짓거리를 벌였을 것 같습니다. 똥이 눈에 거슬리니 똥을 가리면 모두가 깨끗하게맑게자신있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밑바닥 사고방식으로 법을 뜯어고쳤다는 소리죠.
똥 가린다고 해서 그 똥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누군가는 새로운 똥을 싸요. 그게 자연의 법칙입니다.
노가다 일용직 관련 제도를 없앤다고 해서 그 일용직들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도급산업의 특성상 어디선가 누군가는 새로운 일용직을 채용해야 해요. 그게 70년 넘게 이어져 온 대한민국 건설업입니다.
십장들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시공참여자'라는 법률상의 용어는 잃어버렸지만 십장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고 2025년 현재에도 존재해요. 반장, 팀장 등 용어를 바꿔 부르지만 그 본질과 역할은 2008년 시공참여자 제도를 없앨 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법에서 시공참여자를 없앤다고 해서 십장들이 건설사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것도 아니고 / 십장들이 알음알음으로 가르치던 교육시스템이 제도화되지도 않았으며 / 노가다 현장은 여전히 주먹구구식 교육으로 일관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해 봐야 건설 현장은 변하지 않아요.
개별 건설회사가 바꿔라? 건설회사들은 이 시스템을 바꿀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GS DL 등등 메이저 건설사들도 못 하는 일이고 어디 하꼬 건설사들은 애당초 내일 망할까 모레 망할까 걱정해야 할 수준인데 무슨 노가다 교육 시스템을 바꿉니까.
국가가 뒷짐지고 10선비 엣헴 질알하면서 '모든 인간의 생명은 우주보다 소듕하다구욧 건설현장 산재사망 0건으로 만드세욧 빼애애액!'을 백날 시전해 봐야 개별 건설사 역량으로는 이 시스템을 못 바꿉니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니가 회사 차리시던가. 10선비 끌어모아서 노가다 굴리면 잘 돌아가겠네.
니가 직접 해 보세요. 못하겠으면 아닥하던가.
말이 거칠어졌네요. 적절히 끊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커밍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