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대략 4~5년 전에 IPTV에서 영화 '패신저스'를 봤습니다. 5000명의 승객을 인공동면 모드로 잠재운 채 우주로 날아가는 대형 우주선을 배경으로 하여 이 우주선 안에서 펼쳐지는 로맨스와 납치감금가스라이팅 범죄(?)를 다룬 영화입니다.
뭐, 감독의 의도에서 '범죄' 부분은 없었다고 하네요. 영화 시나리오 상으로도 범죄 부분을 강조하는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영화를 만들 때 살짝 편집방향 등등이 어긋나다 보니 범죄처럼 보일 뿐 원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해요.
하지만 결국 영화는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관객이 보기에 범죄라면 범죄인 거죠. 원래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면 잘못 만든 거구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남자주인공(크리스 프랫)이 여자주인공(재니퍼 로렌스)의 동의 없이 인공동면 장치를 해제해 버립니다. 설정상 인공동면에서 깨어나면 일반승객 수준에서는 다시 잠재울 방법이 없는데, 남주가 1년 넘게 너무 외로운 생활을 했고 또 여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여주의 나머지 인생을 박살내 버린 거죠;;
물론 둘이 서로 사랑하게 되고 또 남주가 여주 및 우주선 승객 5천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희생(Sacrifice. 기독교에서 가장 숭고하게 여기는 행동이죠.)까지 하면서 여주가 남주를 용서해 주긴 합니다만... 여주 인생이 박살난 건 바뀌지 않아요. 둘이서 한평생 나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만 첫 시작이 납치감금행위로 시작되었다는 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하꼬)SF작가라서 나름 SF 소재를 좋아하긴 합니다. 패신저스 영화 자체는 SF라기보다는 로맨스(+범죄)물입니다만 일단 '광속의 50%로 120년 동안 날아가서 다른 항성계의 암석형 행성에 정착한다'는 설정을 갖고 있긴 하죠. 영상 구성도 꽤 훌륭하구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범죄물을 적절히 잘 변형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 아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구폭망영화 '2012'가 떠오르더군요.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SF 로맨스범죄물 '패신저스'와 지구폭망영화 '2012'의 설정을 적절히 뒤섞어 봅시다. 잘 섞으면 각각의 저작권을 훼손하지 않고 새로운 저작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1) 패신저스가 범죄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
(2) 2012에서는 자연스러웠는데
(3) SF 설정오류를 최소화하려면 '방주'가 낫습니다
(4) 시나리오 : 우주선이 아닌 '방주'에서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면
순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이번 챕터에서는 영화 '패신저스' 및 '2012'의 스포일러가 강하게 나옵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이를 감안하여 봐 주시기 바랍니다.
2. 본론
(1) 패신저스가 범죄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
제작 의도만 놓고 보면 전혀 범죄물이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납치감금 보쌈(?) 결혼이 되어 버린 영화 패신저스. 이 영화는 왜 납치감금 범죄물로 인식되게 된 걸까요?
철저히 남주 입장에서만 보면... 납치감금 범죄행위를 할 만한 원인이 있긴 했습니다. 일단 정리하면
- 5천명 모두 인공동면에 빠진 우주선 안에서 혼자 깨어나게 됐고
- 1년 넘는 시간 동안 매우 외롭게 (어설픈 AI 바텐더와 얘기하면서) 살아야 했으며
- 그 외로움 때문에 자살하려다가 실패해서 더더욱 될대로 되라 상태였고
-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 매던 사람은 알게 되지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그 노래 부른 사람은 부동산이 사람보다 더 아름다워를 시전하며 건물주 갑질을 했지만 아무튼 아몰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근데 어익후 진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네 앞으로 꽃보다 아름답지 않은 2족보행생물은 사람이 아닌 걸로 간주하겠어 내 눈에는 이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 한 명만 사람이고 나머지는 다 사람이 아니니 뒈지든 말든 아몰랑 같은 논리비약 자체변명을 늘어놓다가
- 결국 꽃보다 아름다운 여주 제니퍼 로렌스의 인공동면 장치를 해제하여 그녀를 깨워 버리고
- 갈 곳 없는 우주선 안에 사실상 납치감금 상태가 된 여주는 어쩔 수 없이 남주를 사랑하게 되지만 진실을 알고 나서 분노하여 죽이려고 하다가 또 결국에는 다 용서하게 된다는 스톡홀름 증후군 엔딩
으로 요약되겠네요.
이 영화 감독은 나름대로 남주의 심리 묘사에 신경썼습니다. 뭐 여주 입장에서 이미 사랑에 빠진 이후 진실을 알게 되는 설정으로 가는 게 더 설득력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면 시간순서가 헷갈릴 수 있으니 남주 시선으로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만들기 나름입니다.
이렇게 남주 심리 묘사에 신경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범죄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겠지만 제 생각에는 [남주가 너무 착하게 묘사되었다]는 게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주 크리스 프랫이 근본적으로 배려심 넘치고 희생정신 투철하며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착하고 선량한 남자의 표본'인데 갑자기 납치감금 범죄를 저지르니 그 괴리감이 더욱 더 커졌던 거 아닐까 싶습니다.
남주가 적당히 때 묻고 적당히 나쁜 짓도 좀 했으며 적당히 유들유들한 타입이었다면... 오히려 '본인의 욕망 때문에 미녀의 남은 인생을 다 망가뜨리는 짓'이 설득력을 얻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전개했으면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된 여주가 진심으로 남주를 죽이려 했을 것이고 그러면 로맨스가 아니라 스릴러물로 진행되었겠지만, 개연성 측면에서는 '초반부터 남주가 적절히 나쁜 놈'이라는 걸로 설정하는 게 더 나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쁜 놈'으로 시작했다면, 영화 마지막에 오토닥 장치를 인공동면기로 쓸 수 있다는 걸 알아냈을 때 여주 혼자 동면시키고 남주는 죽는 걸로 전개해도 괜찮았을 겁니다. [나쁜 놈이 개과천선하고 마지막에 자기희생(Sacrifice)으로 연인을 지키고 온 세상도 지켜낸다]는 설정은 식상하면서도 잘 먹히거든요.
즉,
- 영화처럼 '착한 남자가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 매다가 꽃보다 아름다운 여주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전개'보다는
- 처음부터 '적절히 나쁜 남자'가 그 '적절히 나쁜 욕망으로 적절히 나쁜 짓을 했으나 결국 내면의 양심 및 진정한 사랑에 눈뜨고 그 진정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전개'
로 가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범죄물이 되는 것보다는 스릴러물로 끌고 가는 게 낫죠.
뭐, 이미 영화 나온 지 10년 가까이 지났으니 굳이 다시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비교영화인 '2012'로 넘어가겠습니다.
(2) 2012에서는 자연스러웠는데
영화 '2012'는 딱히 복잡할 게 없습니다. 지구가 폭망하는데 초갑부 부자들이 '방주(The Ark)'를 만들어서 살아남고, 인생 말아먹은 밑바닥 루저였던 주인공(존 쿠삭)은 그 루저본능(!)을 555% 발휘하여 본인 및 가족을 모두 살려내 방주에 올라탄다. 뭐 그런 내용입니다.
주인공, 주인공의 가족, 주인공과 함께 움직인 러시아 초갑부(올리가르히) 및 그 초갑부의 첩(妾)은 모두 적당히 때묻고 적당히 부패하고 적당히 현실적입니다. 올리가르히는 첩의 불륜 사실을 다 알고 있어서 결국 그 불륜남인 경호원을 죽게 방치하고, 첩은 첩대로 사랑했던 불륜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남편에게 복수하려 하며, 주인공은 본인이 살아남는 동시에 가족들(이혼해서 따로 살던 전 부인과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온갖 발악을 다 하죠.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 일행이 '방주'로 숨어들 때에는 이들 때문에 몇천명이 죽을 뻔 합니다. 주인공 일행이 들고 있던 질긴 밧줄 같은 게 개폐장치에 휘말리면서 방주의 문이 닫히지 않아 방주의 사람들이 모두 수장(水葬)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주인공 일행이 수천명을 죽일 살인미수범이라 할 수도 있겠죠. 물론 본인 생명이 온 우주보다 더 소중하니 긴급피난이 적용되긴 하겠습니다만 죽을 뻔 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열받을 것 같네요.
그런데, 이 방주 개폐문 작동불능 장면이나 그 이전의 장면들을 놓고 "쟤네 다 범죄자야. 짱나."라고 말하는 관객은 없습니다. 다 이해할 만 하거든요. 설정상 매우 자연스럽게 잘 흘러가거든요.
주인공은 SF소설가로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루저(Loser)입니다. 주인공의 전(前) 아내였던 여인은 주인공의 무능한 현실생활능력에 질려서 이혼해 버렸고 돈 많은 의사와 재혼했죠. 아이들은 아빠가 무능한 걸 잘 알고 있고 아빠가 끌고 다니는 롤스로이스는 다른 부자의 것이며 아빠는 그저 운전기사로 남의 차를 끌고 나왔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올리가르히는 첩의 불륜 배신에 대해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또 그럴 기회가 오자 가차없이(!) 실행합니다. 경호원이었던 몸짱미남을 죽게 방치하죠. 아주 잔혹하고 냉정합니다.
이렇게 무능하거나 냉혹했던 남자들이 '극한상황에서의 반전매력'을 뿜어냅니다. 무능한 아버지였던 주인공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지구폭망 상황을 냉철하게 꿰뚫어보고 전(前) 아내와 아이들을 구출해 방주 있는 곳까지 데려가 주며, 첩의 배신을 응징하는 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던 올리가르히는 자신의 아들 둘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합니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관객들은 주인공 측에 감정이입하고, 결국 주인공 측이 갠세이(!)를 자행해 방주 문이 닫히지 않는 상황에서 주인공 측을 응원하게 됩니다. 방주 안에서 다 죽을 뻔 한 수천명의 초갑부 쉥키들은 아몰랑. 니들이 다 죽든 말든 주인공 일행만 살면 돼.
이 비교 영화 '2012'의 전개를 살펴보고 위 '패신저스'의 전개와 비교해 보면...
영화 등 창작물에서 '나쁜 사람이 개과천선하는 전개'가 더 자연스럽고 쉽습니다. 패신저스의 착해빠진 남주가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 매다가 꽃보다 아름다운 여자에게 납치감금 범죄를 저지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적당히 무능하거나 나쁜 사람이 적절히 나쁜 짓을 하다가 이후에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자기희생하는 것이 기-승-전-결 전개 및 개연성 측면에서 훨씬 더 낫습니다.
그 외에 하나 더. 괜히 영화에 써먹지도 않을 SF설정을 잔뜩 늘어놓고 '배경은 최첨단 우주선인데 내용은 그냥 로맨스범죄물이야.'로 전개하는 것보다는, 그냥 현대기술의 한계가 명확한 '지구 바다의 방주'로 설정하는 게 더 낫습니다. 2012에서도 spaceship이 아닌 그냥 ship 내지 Ark로 설정하고 있죠. 그러면 SF적 오류를 양산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이건 챕터를 나눠서 살펴보겠습니다.
(3) SF 설정오류를 최소화하려면 '방주'가 낫습니다
'패신저스'의 오류에 대해서는 나무위키 등에서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만 제 기준에서 몇 개 언급해 보겠습니다.
일단 '빛의 50% 속도로 항해하는 우주선'이라면 아주 작은 우주먼지 등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습니다. 빛의 50%면 초속 15만km인데, 전에 어디선가 얘기했듯이 이는 아폴로11호 계획에 사용되었던 새턴V 로켓보다 최소 1만배 이상 빠른 것이고 운동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단위면적당 운동에너지는 1억배가 됩니다. 거기에 작용-반작용 법칙까지 더하면... 날아가다 코딱지에 부딪혀도 티타늄 외벽이 으스러집니다.
패신저스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주선이 쉴드(Shield)로 보호되고 있다!'는 설정을 추가합니다. 지구탈출속도를 넘는 추진체 새턴V로켓보다 1억배 더 큰 운동에너지를 보유했고 크기는 수백만배 더 큰 우주선 전체를 쉴드로 보호하려면 핵융합으로도 불가능한 수준의 에너지를 내야 될 것 같지만 일단은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 쉴드가 빵빵 뚫리죠. 처음에는 코딱지만한 물체가 우주선을 뚫고 들어와 남주가 잠들어 있던 인공동면 장치가 고장을 일으키는 수준이었는데, 나중에는 아예 우주선을 총괄관리하는 거대 AI컴퓨터가 제대로 작동을 못할 정도로 손상됩니다. 이럴려고 쉴드 한 겹만 했나 자괴감이 들 정도입니다.
이중쉴드 안전장치도 없는 주제에 인공동면 장치는 '한 번 열리면 다시 인공동면 불가능. 무리무리무리.' 설정입니다. 이걸 만든 회사 연구원들은 "우리 제품은 완벽해서 절대 오류가 없다구욧 빼애애액!'을 시전했다고 하는데 뭐 21세기 PCPC 뷔페미들도 아니고 오류 없다고 짖으면 없어지는 게 아니죠. 일단 남주의 인공동면장치가 오류를 일으켰는데 뭔 근거없는 자신감입니까.
하나의 인공동면 장치에서는 재동면이 불가능하다고 칩시다. 그럼 인공동면 장치를 여유분으로 1천개 정도 더 실으면 그만입니다. 공간이 부족해서 인공동면 장치를 적게 설치했다고 보기에는 편의시설(!)이 너무 많아요. 수영장 깊이를 50cm만 줄이고 수영장 바닥에 인공동면 예비장치 깔았으면 1천개 깔고 남아돌겠네요.
게다가, 사람이 다쳤을 때 치료해 주는 오토닥(Auto-Doc)은 1대 뿐입니다. 설정상 5천명의 승객들이 도착 4개월 전에 깨어나서 우주선 안의 편의시설들을 즐기며 눈누난나 놀아나게 되어 있는데, 이 많은 인원 중 누가 / 언제 / 어떻게 다칠지 모르면서 치료장치를 1대만 둔다? 건설노가다 현장에서도 이렇게는 안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설정오류가 있지만 이 정도로 줄이고.
'패신저스'가 이렇게 설정오류 범벅이 된 건 [우주 로맨스]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는 우주공간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여주와 살빼면 근육질인 남주가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대전제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현실을 아득히 초월한 미래기술에 더러운 현실 자본주의를 섞어 끔찍한 혼종 설정을 만들게 된 거겠죠.
이 설정오류를 최소화하려면, 소제목에 쓴 대로 '우주선'이 아닌 '방주'로 설정하는 게 더 낫습니다. 방주는 지금 기술로도 만들 수 있고, '폐쇄된 공간에서 눈 맞는 남녀' 설정이라면 방주로 설정해도 아무 문제 없거든요.
실제로 지구가 싹 다 뒤집어지는 상황이라면 방주 안에서 인공동면을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육지였던 땅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 바다 아래 맨틀판이 위로 올라와 새로운 육지가 된다면, '토양 염분화' 문제 때문에 곧바로 농사를 짓기 어렵다고 하네요. 결국 새로운 육지의 염분이 줄어들 때까지 몇십년을 기다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고, 괜히 식량만 축내다가 결국 굶어죽느니 차라리 잠이나 자자 분위기로 인공동면을 하는 게 최선이랍니다.
(물론 영화 '2012'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이 융기하며 여전히 육지로 남아 있다는 설정이라서 굳이 인공동면을 할 필요가 없긴 합니다만, 다 가라앉는 걸로 바꾸면 그만이죠.)
패신저스 설정을 2012의 '방주'로 교체해서 짧게 시나리오 구상해 보겠습니다.
(4) 시나리오 : 우주선이 아닌 '방주'에서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면
지구가 뒤집어져 육지는 모두 바다 아래로 잠긴다고 한다. 지구 생명들은 잣됐다. 과학자들이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론이다. 지구 생명은 잣됐다.
뭐, 돈 많은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한다. 그들은 비밀리에 방주(The Ark)를 만들었고, 방주 안에서 인공동면에 들어간 채 수십년~수백년 동안 지구를 떠돌 예정이다. 1인당 10억 달러는 기본.
그런데... 돈 많은 인간들만 이 방주에 들어간 게 아니다. 극비 프로젝트였지만 결국 이걸 수행하기 위해 '노동자'를 수천명 투입해야 하고, 그 중에는 '범죄자'도 있었다.
주인공 남자 A는 범죄자. 본 시나리오 작가가 자주 우려먹듯이 '퐁퐁남이었는데 눈 돌아 버린 범죄자'다. 인간은 원래 육식동물이어서 빡치면 다 죽이는 게 디폴트 값이라는 걸 몸소 체험한 살인자이기도 하다.
A는 이 방주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할 자격이 없었지만, 급히 노동자를 투입해야 하는 회사에서 대충 막 잡아넣다 보니 주인공도 여기 들어왔다. 원래 꽤 유능한 엔지니어였던 주인공은 이 거대한 철덩어리의 용도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이건 일반적인 배(Ship)와 달리 완전밀봉 기능에 제한적인 잠수함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는 초 거대 울트라짱짱 재난구조선이라는 걸 깨닫는다.
방주의 정체를 깨달은 주인공 A. 그의 선택은?
당연히 숨어들어야지. 이미 마누라 불륜남을 쌍쌍파티로 썰어 죽인 몸인데 몇 명 더 죽여도 별 상관없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불륜남녀 썰었는데 더 죽인들 어떠하리
푹찍억 죽여 주고 거대방주 숨어 타리
A는 방주 짐칸에 숨었다. 그리고 대 재난 이후... 방주 내부의 인간거주구역으로 들어왔다.
인간거주구역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인공동면 상태다. 물론 동면에서 깨어난 이후에는 몇 달 ~ 몇 년 동안 방주 안에서 살아야 하므로, 방주 내부에 식량 및 기본적인 설비는 다 갖춰져 있다. 원래 돈 많은 사람들이니 호화유람선 급 설비는 해 줘야지.
어익후 조으네. 혼자라서 외롭긴 하지만 퐁퐁 당한 이후로는 그 고독마저도 감미롭다. 아주 그냥 가나초코렛보다 더 감미로워!
물론 영원히 외로울 수는 없다. '꽃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해야지.
대충 이후에는 '패신저스'를 범죄물로 더 강화한 형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마지막에는 A가 '잊고 있었던 진짜 사랑'을 깨닫는 걸로 하자. 아내에게 배신당하고 나서 영혼 깊이 숨겨 버렸던 '순수한 사랑'을 깨닫고 범죄의 피해자인 여주 B를 진정으로 아껴 주며 대신 희생하는 것으로 하자.
A의 희생은 새롭게 시작될 지구 역사에 매우 아름다운 형태로 기록될 것이다. A의 극악무도했던 범죄자 모습은 살포시 가려질 것이고, 오로지 '숭고한 희생'만 남겠지.
그런 게 인간이니까. 그런 게 우리들이니까.
글이 길어졌네요. 이만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