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재산권 소멸 작품에 대한 번안 고민
1. 서론
"세상에 순수한 창조란 없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작가를 비롯한 모든 창작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얘기인 동시에, 또한 '판도라의 상자에 담겨 있던 희망'으로 희망고문을 하는 얘기이기도 하죠.
우리 인간들의 많은 창조활동은 과거의 발명+발견 위에서 성립합니다. '발견'은 애당초 원래 존재하던 걸 인간의 인지능력 범위 안으로 포섭한 것이니 창조라고 할 수 없고, '발명'도 예전에 아예 없던 걸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경우는 없죠. 7000년 전 최초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바퀴]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자연의 둥그스름한 물건을 모방한 것에 불과합니다.
뭐, 창작자의 모방본능(?)을 얘기할 때 7000년 전 바퀴 발명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겠죠. 그냥 솔직하게 '현 시점에서 창작자들의 모방본능'만 얘기해도 충분합니다.
모방본능. 스스로 창작자(Creator)라 부르는데 사실 알고 보면 과거 사람들의 창작활동을 모방하고 재조합하는 수준의 활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본능.
현대의 창작자들은 이 '모방본능'을 인정해야 합니다. 소설가, 작곡가, 작사가, 만화가, AI활용예술가(?) 모두 과거 인류의 천재들이 만들어 냈던 탁월한 창조물 위에서 '재조합 방식의 미약한 창조'를 하고 있어요. 모두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습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모방이야말로 현대 창작의 핵심]입니다. 인류 문명 7000년을 거치고 나니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 과거를 배워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것만이 '창조'로 존중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긴 한데...
그렇다 해도 저는 글을 쓸 것이고, 작곡가는 운율을 만들 것이며, 만화가는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이제 AI활동가가 수억 개에 달하는 과거 창조물을 종합해서 '전자신호 창조'를 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인류는 '모방본능 창조'를 계속할 것입니다.
서론이 좀 길었네요. 적당히 끊기로 하고, [모방본능을 통한 창조]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학점 2.23으로 대학 졸업한 법학과 출신답게 법 얘기도 좀 읊어 보죠.
(1) 저작권 :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
(2) 창작자 사후 70년이 경과한 작품 : '저작재산권'은 문제되지 않음
(3) 번안(飜案) 소설 : 저작인격권은 밝혀 줘야겠죠?
(4) 아이디어 : 복수귀 몽태규 (원작 '몽테크리스토 백작'. 원작자 '알렉상드르 뒤마'.)
순서로 정리하겠습니다.
2. 본론
(1) 저작권 :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
대한민국의 저작권법에서는 저작권을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저작권법을 살펴본 적은 없지만 아마 다 비슷할 거예요. 대한민국이 무슨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대충 다른 나라 법률 참고해서 만들어야죠. 이것도 '모방본능'...일까요?
아무튼, 저작권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저작인격권은 해당 저작물을 창조해 낸 사람의 인격적인 권리 / 저작재산권은 저작물을 활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권리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죠.
저작인격권은 창작자의 일신에 전속하는 개인 권리인데, 창작자가 죽었다고 해도 시간 제한 없이 존속합니다. 즉, 영구무한이에요.
(물론 영구무한이라는 게 결국 대한민국 국가권력 내지 '인류 권력' 범위 내에서만 인정되는 거니까, 이 우주 자체가 소멸하고 엔트로피가 최대한으로 증가해 물질 및 에너지조차 관측되지 않는 절대무한시공간에서는 저작인격권도 의미 없겠습니다만... 그냥 인간의 범위 내에서만 생각합시다.)
저작물(창작물)의 원저작자가 자신의 이름을 표시할 권리, 저작물을 세상에 공표하거나 / 공표하지 않고 감출 권리 등은 모두 '저작인격권'으로서 계속 지속됩니다. 물론 원저작자가 죽었다면 행사할 사람이 없어서 사실상 행사불가 상태가 되겠지만, 그래도 [후속 모방자들은 원저작자가 생존하였다면 그 저작인격권에 침해가 될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저작권법 14조 2항).]. 즉, 어지간하면 원저작자 성명은 표시해 주는 게 바람직하죠.
이렇게 설명하면 저작인격권은 엄청 무시무시하게 킹왕짱 왓다 따봉 권리인 것 같지만... 사실은 별 거 없습니다. 더 중요한 건 '저작재산권' - 즉, '돈 되는 권리'겠죠. 역시 인생은 Show me the money.
돈 되는 권리인 '저작재산권'은 원칙적으로 원작자의 생존 기간 + 사망 후 70년 간 존속합니다. 업무상저작물, 영상저작물(영화) 등의 경우에는 조금 짧지만 (제가 웹소설 쓰니까) 소설 등 일반적인 창작물의 경우에는 '~사망 후 70년'이에요. 제가 죽고 나서 아내와 자식들이 저작재산권을 상속받았을 경우에 중요하겠죠.
이 '저작재산권 보호기간'이 만료되면, 해당 저작물(창작물)을 활용하는 사람은 적어도 저작재산권 침해에 대해 손해배상 할 일은 없게 됩니다. [공짜]가 되는 겁니다.
무이자 무이자 무이자보다 더 좋은 건 공짜. 공짜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이 좋은 공짜. 누려 줘야겠죠?
(2) 창작자 사후 70년이 경과한 작품 : '저작재산권'은 문제되지 않음
대한민국 저작권법에서 '창작자 사망 후 70년이 경과한 작품'은 저작재산권을 신경쓰지 않고 공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략 해리포터 시리즈는 원작자가 멀쩡히 살아 계시니 마음대로 활용하면 안 될 것이고, 반지의 제왕 원작자이신 톨킨 옹(翁)은 돌아가신 것 같지만 나름 20세기 후반까지 사셨던 것 같으니 여전히 건드리면 안 됩니다. 대략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작품들은 가급적 건드리지 않는 게 안전하겠죠.
이 말을 뒤집으면...
20세기 이전에 유행해서 '세계문학전집'에 들어갈 만한 작품들은 적절히 공짜로 활용해도 '저작재산권'을 침해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원작자의 저작인격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인용 및 원작자 표시는 해 줘야겠지만 그건 후배 창작자의 예의 문제이지 돈으로 배상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에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위고. 뒤마. 셰익스피어. 이 정도로 오래되신(...) 작가들의 작품은 '저작재산권'이 만료되었습니다. 즉, 이 분들의 작품은 마음껏(!) 모방해도 된다는 거죠.
모방해도 손해배상할 일이 없는 세계명작 반열의 작품들. 어머 이건 모방해 줘야 돼.
(3) 번안(飜案) 소설 : 저작인격권은 밝혀 줘야겠죠?
이미 완성된 다른 작가의 소설을 시대배경 / 지역 / 이름 등을 바꿔 다시 재창작하는 작업을 '번안'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초반에 근대문학 활동을 하던 분들이 자주 써먹었다고 하죠.
뭐, 20세기 초반 근대문학에서는 번안 작업을 할 때 원작자 표시를 아예 안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저작권법이 없었을 테니 이해해 줄 수 있지만, 21세기의 작가들이 그런 비매너(...) 짓을 하면 안 되겠죠? 번안 작품을 만들 때에는 저작인격권 존중 차원에서 원작자 및 원작품을 밝혀 주도록 합시다.
참고로, 이러한 번안 활동은 패러디(Parody)와 다릅니다. 패러디는 '현재 유행하고 있고 저작재산권이 사롸있는 작품에 대해 순수한 팬심으로 비경제적 변형을 가하는 것'이라면, 번안 활동은 '저작재산권이 만료된 작품을 경제적 목적으로 재창조(모방변형)하는 작업'입니다. 돈 벌려고 번안소설 쓰는 거예요. 명확히 합시다.
돈 벌기 위한 번안 활동. 뭐가 좋을까요?
(4) 아이디어 : 복수귀 몽태규 (원작 '몽테크리스토 백작'. 원작자 '알렉상드르 뒤마'.)
언제 쓸지는 모르지만, 저는 대(大) 뒤마 (아버지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대략 [복수귀 몽태규] 정도면 좋겠죠.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복수물의 교과서'로 불릴 만한 작품입니다. 작품 중간에 개연성 따윈 의도적으로 무시한 기적적인 인연(무협물의 '기연' 급 인연)이 등장하긴 하지만 아무튼 재밌으니 좋았쓰!
- 약혼녀를 빼앗고 싶어하는 비열한 악당의 계략에 빠져 14년 간 감옥에 갇혔다가
- 감옥에서 기연을 만나 귀족의 예법과 각종 지식과 언어능력을 습득하고
- 감옥에서 탈출한 뒤 기연이 알려 준 보물을 찾아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재탄생하여
- 마침내 비열한 악당 세력을 모두 역관광 보내 죽여버리는 이야기.
- 여기서 보너스로 '40대 중반이 된 주인공이 20대 초반 미녀와 결혼'하는 양념까지.
캬, 플롯 좋습니다. 무협소설의 복수극 그대로네요. 여윽시 복수물의 교과서답습니다.
물론, 이걸 그대로 쓸 수는 없습니다. 원작에 나오는 '비열한 악당의 계략'은 "엘바 섬에 갇힌 나폴레옹에게 편지를 전달했던 일을 꼬투리잡아 반역죄인으로 몰아간다!"는 건데...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적용하기 어렵잖아요. Hoxy '계엄령'을 미리 알았다!'는 걸로 몰아간다면... 많이 어색하겠죠?
비열한 악당의 계략은 대충 [허위 미투] 정도로 가는 게 무난할 것 같습니다. 원작의 기연 '파리아 신부'는 학계에서 매장된 천재 과학자 정도로 바꾸고, 원작의 '어마무시한 보물'은 대충 재벌집 아들로 위장할 수 있는 과학적 기술과 장치 정도면 되겠죠.
복수귀 몽태규. 이것도 언젠가는 쓸 겁니다.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