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까요?

by 테서스

1. 서론


며칠 아팠습니다. 반백살을 살다 보니 발목 삐끗한 게 잘 안 낫더군요. 걷기 어려울 정도까지 아팠습니다.


그래도 병원 안 가고 잘 버텼네요. 버티다 보니 나았습니다. 온 몸에 염증반응이 느껴지던 게 싹 가시니까 살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니... 오늘은 '고통'에 대한 얘기를 준비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 하나로 시작해 보죠.



-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단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 우와 짱 멋있는 대사임. 어느 애니에 나옴?


- 니체인데요...



예전에 어디 유머 글에서 본 내용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격언이 여기저기 많이 인용되다 보니 '애니 대사'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니체의 격언은 꽤 많이 인용되는데요. 그 중에 '제가 기억하는 한' 가장 오래된 작품은 [1983년 영화 코난 더 바바리안]입니다. 아놀드 주지사 형님이 최전성기 미스터 올림피아 시절의 근육덩어리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출연한 영화였죠.


(미래소년 코난 기억하면 아재라는데 저는 그 이전 버전의 코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ㅠ.ㅠ)


'코난 더 바바리안'은 꽤 잘 만든 영화입니다. 특히, 처음 시작할 때 인트로 + 마을공격 영상은 지금 봐도 매우 뛰어납니다.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는 '고통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어린 코난이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장면도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뭐, 오늘은 코난 더 바바리안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구요. 원작자 로버트 E. 하워드 및 그가 창조한 '역사시대 이전의 초고대문명 + Sword & Sorcery 세계'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하겠습니다. 관련되는 제 소설 시나리오도 덧붙여서요.



오늘 할 얘기는 첫 줄과 제목에 언급한 '니체의 격언'입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단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는 중2병 넘치는 허세 대사를 놓고 아이디어를 펼쳐 보죠.


(1) 니체의 초극 사상

(2) 그렇지만 요즘은 중2병이죠?

(3) 진짜로 고통을 겪으면 강해진다는 설정


정도로 서술하겠습니다.



2. 본론


(1) 니체의 초극 사상


개인적으로 대딩 2~3학년 즈음에 니체의 책 2권을 읽었습니다. 하나는 (아마도 저 중2병 대사가 들어 있을 것 같은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고, 다른 하나는 '비극의 탄생'입니다.


짜라투스트라 쪽은 '니체의 초극 사상'을 듬뿍 담았다고 평가받습니다.


- 1) 낙타의 정신으로 살던 인간이 2) 사자의 정신으로 살다가 '너는 해야 한다'라는 비늘을 잔뜩 두른 용(龍)과 싸우고 3) 어린아이의 영혼으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 너의 머리를 밟고 다시 뛰어올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거나,


기타등등 겁나 멋진 말이 많습니다. 읽은 지 30년 가까이 된 데다 원래 읽을 때에도 워낙 비슷비슷한 말이 많아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읽다 보면 뽕 차는 말이 꽤 여러 개 있습니다.



반면 '비극의 탄생'은... 매우 정상적입니다. 읽다 보면 '이게 니체 작품 맞나?'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학술서 같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비극의 탄생 쪽은 학술서 맞습니다. 니체는 철학교수인 동시에 그리스 미학 전문가였는데, 그런 미학전문가 관점에서 그리스 비극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으니 학술서 맞죠.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아폴론형 인간'과 '디오니소스형 인간'을 대비시킵니다. 아폴론형 인간은 겁나 냉정하고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반면 / 디오니소스형 인간은 미쳐 날뛰죠. 디오니소스형 인간이 아무래도 짜라투스트라 쪽에 등장하는 초인(超人)과 연결될 것 같네요.



니체의 초극(超克) 사상 및 그 결과물인 초인(우버멘쉬) 사상은 독일 나치 세력에게 상당한 영감을 줬다고 합니다. 아돌프에게 살해당한 남자 '히틀러'는 니체 철학을 숭배했다고 하네요. 뭐, 멋있는 말 많으니까 읽다 보명 뽕 찰 만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20세기의 모든 이데올로기(ideology)가 그러하듯이, 과거에는 수천만명을 휘어잡던 사상도 21세기의 해체적이고 냉소적인 문화 앞에서는 다 '중2병'이 됩니다. 니체의 사상도 그렇게 된 것 같네요.



(2) 그렇지만 요즘은 중2병이죠?


갑자기 생각났는데, 배우 '이경영'이 빌런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거기서 이경영이 니체 초상화에 경례를 하는 장면이 나왔었습니다. 이경영은 뭔가 대단히 부패한 경찰 같은 역할이었고 아무나 붙잡아서 진술 받을 때 금속너클을 끼고 죽빵 때리는 개쓰레기(...)였는데 니체의 초인 사상을 숭배했나 봐요. 이건 뭐 니체 돌려까기인 걸까요?


니체의 초극사상이 반영된 작품 중에는 '이육사의 광야'도 있습니다. 언젠가 천고의 세월 후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울게 하죠.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라는 표현은 제가 19금 작품에서 꽤 자주 써먹습니다만 현실에서는 그러지 않습니다;;)


뭐, 니체의 초극-초인 사상도 지금 시대에서는 별 의미 없습니다. 니 머리를 밟고 너 스스로 뛰어오르라는데 뭐 어쩌라고. 사자의 정신으로 '너는 해야 한다'는 비늘을 두른 용과 싸우라는데 이게 뭔 소리임. 누가 칼 들고 용이랑 맞짱뜨라고 협박했음?


아무리 멋지고 뽕 차는 격언도 '냉소주의' 앞에서는 쥐뿔 헛소리일 뿐입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그냥 아프죠. 고통 좀 느낀다고 해서 강해지는 거 아닙니다. 그런 소리 하는 사람 있으면 묶어놓고 매일 100대씩 후드려 패 줘야죠. 진짜 강해지는지 아닌지 스스로 느끼게 될 겁니다.



2020년대의 해체주의 / 냉소주의 앞에서는 니체의 초극-초인 사상도 사뿐히 중2병 됩니다. 출산률 세계 최저 자살률 세계 최고인 아시아 동쪽 끝자락의 작은 나라에서는 초인 따위 아몰랑. 초극하든 말든 안물안궁.


그런데 말입니다.


중2병도 극한에 달하면 무섭습니다. 특히, 중2병이 '현실화'되면 매우 무섭습니다.


현실화시켜 봅시다. 니체의 격언이 현실화되면 어떻게 되는지 상상해 봅시다.



(3) 진짜로 고통을 겪으면 강해진다는 설정


며칠 아팠다. 심하게 아팠다. 발목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직장상사 놈이 갈군다. 아파서 걷기도 어려운데 식사시간에 늦었다고 갈군다. 발목 아프다고 전에 얘기했는데도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지 들어처먹질 않는다.


아프다고 하니까 괜히 팔을 잡아 끈다. 발목 통증이 몸 전체로 퍼져 염증반응을 일으키니까 가만히 있어도 괴로운데 팔을 잡아당기니 더 괴롭다.


"아 진짜 왜 그러세요!"


무의식적으로 직장상사의 손을 뿌리쳤다. 이 정도는 정당방위 인정해 줘야지. 샤발 니가 먼저 직괴(직장내괴롭힘) 시전했으니까 불만없지?


그런데...


우두둑!


"아악! 내 손! 내 손!"


어? 저쉥키 손목 부러진 거야? 이게 가능해?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 힘이 좋았나?


게다가, 조금 전까지 지속되던 염증반응이 싹 가셨다. 마치... [염증반응이 근육세포로 흡수]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너 이새끼 고소하겠어! 콩밥 먹을 준비나 해!"


염병하는 직장상사 쉥키는 잣 까서 드시라고 하고. 내 몸에 무슨 변화가 있는 걸까? 무슨 일이지?



나(주인공)는 당연히 '문송합니다'인 문과 출신이지만... 그래도 인터넷 검색 정도는 할 줄 안다. 고통으로 인한 염증반응, 그 염증 과정에서 일어나는 면역체계 활성화, 그리고...


"T림프구."


림프구에는 T세포와 B세포가 있는데, 둘 다 면역작용에 관여하고 항원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형태'로 변신할 수 있다고 한다. 암세포 이상의 변이능력을 가진 만능세포인 셈이다. 그 중 T림프구는 대략 30여 년 전에 미국의 이상구 박사가 한국에 와서 어설프게 떠드는 바람에 동네 아줌마들 과민반응 유발한 주범(?)이기도 하고.


"모든 형태로 변신할 수 있는 만능세포라는 거지..."


내 몸 안에서 어떤 변이 같은 게 일어난 것 같다. 고통으로 염증반응이 일어나면 그게 과도한 면역세포 변형을 일으키고, 그렇게 변형된 면역세포 중 일부는 '만능세포'로서 골밀도를 대폭 높이고 근육을 강화시키는 거 아닐까 싶다. 문송한 수준에서 추측하기로는 그러하다.


즉, 나는 일종의 '개체진화'를 이뤘고 그 결과 [고통을 느끼면 대폭 강해지는 체질]이 되었다. 아직 이 증상의 원인까지 알아내진 못했지만 그 결과는 충분히 이용해 먹을 수 있다.


나는 슈퍼히어로다. 이딴 잡 회사원 자리는 때려쳐 때려쳐. 영웅호걸의 시간이다!



* 주인공이 변이를 겪은 이유, 추후 부작용 등에 대해서는 쓰면서 추가할 생각입니다. 변이 자체는 '암세포 외계 유래설'을 끌어들이면 될 것 같고, 부작용은 '사이토카인 폭풍(자가면역질환)' 정도면 되겠죠. 판타지 세상과 연결지을 수도 있을 거구요.


며칠 아픈 김에 소설 시나리오 하나 만들었습니다. 아팠던 보람(?)이 있다고나 할까요?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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