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젠하워처럼 살았다면 좋겠지만 – 중
(앞 편에 이어 서술합니다.)
3) 2차 세계 대전과 미군
2차 세계 대전. 그 대규모 살육전에서, 당대 최강 육군이었던 프랑스는 전쟁 발발 한 달 만에 항복해 버립니다. 당시 작전 시행한 독일군조차도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던 전격전 – 블릿츠크리그(Blitzkrieg) – 가 치명적인 크리티컬을 터뜨려 프랑스를 집어삼켜 버렸죠.
프랑스를 리타이어 시키고 그 짱짱한 전차와 대포를 흡수한 독일군. 독일군은 순식간에 유럽을 휩쓸고, 영국에 폭격을 퍼붓습니다. 1차 대전의 전쟁영웅이었던 수상 ‘처칠’이 영국인들을 격려하며 버티긴 하지만, 영국까지 무너지면 싹 다 털릴 것 같습니다.
이 때. 대서양 건너편에서 거인(巨人)이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잠재력과 공업력은 유럽 열강들도 인정하고 있었지만 군사력으로는 아직 촌뜨기 취급받던 거인. ‘천조국 엄웨리커’가 그 무시무시한 첫걸음을 내딛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다들 아시다시피 미군이 2차 대전 초반부터 맹활약했던 건 아닙니다. 2차 대전 초반에는 관망(觀望)하고 있었죠. 뭔가 개입하기 전에 프랑스가 엘리미네이션 당해버리니 딱히 뭘 하기도 애매했구요.
2차 대전 초기의 미군은 (1차 대전 때와 유사하게) 전투병은 조금만 보내고 / 물자 지원을 주로 하는 식으로 전쟁에 개입했었습니다. 당시 큰형님이었던 영국을 적극적으로 돕긴 하지만 전투는 최소화하는 방식. 그게 미군 스타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소극적 개입’을 했기 때문일까요? 미군은 초기 유럽 전선에 ‘행정장교’를 진급시켜 투입합니다. 맥아더 밑에서 9년 간 뺑이치던 만년과장 아이젠하워가 대령 진급 1년도 안 된 시점에 준장으로 진급해 유럽으로 넘어가죠.
그런데… 어어, 상황이 꽤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미국이 적당히 물자 팔아먹으며 꿀 빨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추축국 쪽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서양에서는 독일의 U보트가 미군 영국군 군함 상선 가리지 않고 막 들이받았습니다. (이탈리아는 뭐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본도 중국 다 털어먹으며 동남아시아까지 진격해 내려왔습니다. 말 그대로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타. 진주만이 공격당했습니다. 미군이 미래 해양패권을 꿈꾸며 열심히 뽑아 뒀던 거대전함들이 조그만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폭탄에 맞아 격침되었습니다.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 일본 제독이 말하죠. [우리는 잠자는 거인을 깨워 버렸다]고.
미국이 깨어납니다. 과거 세계의 40%를 식민지로 만들었다던 영국보다 더 강력해지는 천조국, 그 거대한 군사력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뭐, 2차 대전 전쟁사를 쓸 건 아니구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이젠하워’와 과거 그의 상관이었던 ‘맥아더’에 집중합시다.
아이젠하워는 말 그대로 ‘쾌속승진’합니다. 맥아더처럼 최연소 기록은 아니지만 ‘최단기간’으로 따지면 아이젠하워가 Top of the top 입니다. 대령 된 지 4년 만에 5성장군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아이젠하워가 이렇게 쾌속승진했던 이유. 그건 [연합군 명령체계] 때문이었겠죠. 영국군 + 프랑스 레지스탕스 + 기타등등 연합군을 모두 미군 아래에 통합시켜야 하니, 미군 대표로 연합사령관을 맡아야 하는 아이젠하워의 계급이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꽤 험난했습니다. 초반에는 아예 해임될 뻔한 위기도 있었죠.
미국이 독일/일본 양 쪽을 모두 상대하겠다고 결심하고 시민권자들을 군인으로 훈련시켜 파견 보냈을 때. 아이젠하워는 큰 실패를 맛봅니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롬멜’을 만난 게 고통스러운 패배로 이어집니다.
‘사막 여우’로 불리며 남부전선 독일군을 이끌던 롬멜. 롬멜은 노련했고, 전격전의 가치를 잘 알았습니다. 휘하 독일군들도 몇 차례나 대승리를 거둔 베테랑들이었구요.
반면 미군은… 2차 대전에 처음 참전할 당시 여전히 ‘촌뜨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장교들이 실전을 경험하지 못했고, 병사들은 더더욱 경험부족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을 총괄지휘하는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대대장 경험도 없는 행정장교 출신이었죠.
아이젠하워는 롬멜에게 처발립니다. 기습적인 중앙돌파 및 반포위 전술에 말려들어 수천 명의 사망자를 냈고, 한참 물러나 겨우 전선을 수습합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이젠하워가 첫 패배를 당했을 때, 분명히 [빨리 사령관 교체합시다!] 라는 주장이 있었을 겁니다. 미국 국회뿐만 아니라 영국군 쪽에서도 그 얘기 나왔을 거예요. 대대장 지휘경험도 없는 행정장교에게 최고 권한을 줬는데 첫 싸움부터 역관광 당해버리니, 당연히 반대여론이 들끓었을 겁니다.
게다가, 미군 측에는 대안(代案)이 있었습니다. 1차 대전 때부터 활약했고 당시 유럽 장교들 이상으로 탁월한 지휘능력을 보여 줬으며 복귀 후 5성장군에 오른 ‘별 중의 별’, 맥아더가 있었습니다.
당시 맥아더는 태평양 방면 연합사령관을 맡고 있었는데, 아직 상륙작전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서 주된 전투는 해전(海戰)이었고 이건 니미츠 제독 소관이었습니다. 일본군의 예봉을 꺾고 우열을 뒤집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맥아더 사령관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죠.
즉, 미국 대통령과 국회는 [아이젠하워를 해임하고 맥아더를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는 대안이 있었습니다. 연합 동맹인 영국과 프랑스 레지스탕스들도 반대하지 않을 만한 중량급 카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그냥 아이젠하워 밀어 줍니다. 미국 시민권자 몇천명이 사망한 패전의 총책임자를 그대로 사령관에 앉혀 둡니다.
(이 또한 잘 모르겠지만) 루즈벨트가 평범한 대통령이었다면 이 정도 뚝심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대공황을 극복하고 곧장 전쟁을 총괄지휘하며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4선까지 선출된 루즈벨트였으니까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루즈벨트의 용인술(用人術)이 맞았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첫 패배를 극복하고 본인의 장점을 살리기 시작합니다.
아이젠하워의 장점. 그것은 인화(人和)였습니다.
4) 인화(人和)의 상징 아이젠하워
(2차 대전과는 관련 없지만) ‘삼국지’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지리(地利)는 천시(天時)만 못하고, 천시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여기서 ‘지리’는 양쯔강을 천연방어선으로 활용하는 손권의 오나라 / ‘천시’는 황제를 끼고 돌며 [너 역적!]을 남발하는(…) 조조의 위나라 / ‘인화’는 제갈량을 등용한 유비의 촉나라에 각각 대비되는데요.
(그런데 역사는 위나라가 최종 승리. 인화 따윈 까라그래…는 아니고.)
서기 2~3세기 냉병기 시대에는 ‘사람 간에 화합하고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가 중요했을 겁니다. 사람이 직접 창칼 잡고 휘둘러야 하니, 사람을 믿고 따르는 게 중요했겠죠.
20세기에는 어떨까요? 기관총 갈기면 정신승리 따윈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순식간에 몇백명이 피떡 되는 전쟁, 여기서도 ‘인화’가 중요할까요?
중요했습니다. 특히 [장군들 간의 인화]가 중요했습니다. 매우매우 중요했습니다.
한 나라에서 ‘장군’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은 다들 능력 좋습니다. 그 능력 좋은 만큼 인간성이 소시오패스인 경우도 많지만 일단 능력은 좋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에 대한 자부심도 장난 아닙니다.
그리고, 미군은 원래 ‘촌뜨기 쩌리’였습니다. 미군이 2차대전에 참전하기 직전에는 영국이 세계 최강이었고, 프랑스도 만만찮게 강했습니다. 영국군/프랑스군의 장군들은 당연히(!) 미군을 얕잡아 봤을 겁니다. 영국수상 처칠 또한 마찬가지였을 거구요.
미군의 숫자와 장비가 넘사벽으로 많긴 하지만, 연합군의 장군들이 미군 얕잡아보는 상황. 이 와중에 미군 내부적으로도 소시오패스 ㄸㄹㅇ 장군(패튼이라거나 패튼이라거나 패튼이라거나)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 그러면서 ‘연합작전’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
이 상황에서 인화(人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각 나라의 능력자 장군들을 그 자부심 맞춰 주면서 서로 조화시키는 게 지상과제였고, 그것만 정리되면 천조국의 물량공세를 받은 ‘압도적 전력’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이 인화(人和)를 이끌어 낼 장군이 누구인지 따져 봤을 겁니다. 다들 똑똑하고 자부심 쩔고 꽤 높은 비율로 소시오패스이기도 한 장군들을 모두 다독이며 내부 분란 최소화할 리더, 그 어려운 일을 해낼 리더로 누가 제일 좋을까 고민했을 겁니다.
루즈벨트의 선택은 (별 중의 별 맥아더가 아니라) ‘아이젠하워’였습니다. 9년 동안 소령으로 진급누락되면서 맥아더 시다바리 했던 아이젠하워, 대대장 경험도 없던 아이젠하워를 대장~원수까지 올려 줘서 연합군 장군들 통솔하게 하는 것. 그게 루즈벨트의 선택이었습니다.
그 선택, 제대로 적중했죠. 초반의 패배를 극복한 미군은 (압도적인 물량빨로) 계속 승리했고, 어느 새 독일군 귀쌰대기 날릴 만한 베테랑이 되어 갑니다. 영국군도 미군 물량빨에 같이 편승하고, 저 너머 소련군도 미군 물량빨로 독일에 맞서 줍니다. 그러면서 모든 장군들이 아이젠하워 말을 잘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노르망디 상륙작전]. 인간이 서로 집단을 이뤄 죽고 죽인 역사에서 가장 크고 방대했던 상륙작전이 성공합니다. 무슨 삼국지 급 화공(火攻)이나 수계, 혼란, 내분 등등의 화려함은 없지만 그냥 그 물량만으로 대단한 작전이 제대로 성공합니다.
인류 최대의 전쟁. 그 전쟁에서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승리합니다. 그 이름 첫 줄에는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가 올라갔죠.
사관학교 삼수생, 9년 간 소령에서 진급 못했던 행정장교, 대대장 지휘 경험도 없던 ‘유능한 행정 사무관’. 그 남자가 지상 최대 작전의 총지휘자로서 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나치독일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을 뿐.
1945년이 되자, 미군 내에서 ‘별 중의 별’이라 불리는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1차 대전의 영웅이고 최연소 기록을 숱하게 갈아치웠던 5성장군 맥아더는 살포시 밀려나고, 맥아더 밑에서 시다바리 하던 소령 아이젠하워가 ‘더 위대한 5성장군’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됩니다.
맥아더 입장에서는 살짝 배 아팠을 것 같습니다. 그가 인천상륙작전 밀어붙였던 게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내가 해도 잘 했을 거다!’라는 시위성 작전(?)이었다는 카더라 주장이 괜히 나온 건 아닌 듯 합니다.
(물론 그 덕분에 잘 살게 된 한국인이 이런 얘기 하는 건 좀 그렇지만, 미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라면 그런 주장 할 수 있겠죠.)
맥아더가 아시아 반도 끝자락에서 무슨 전략을 펼치든 말든, 아이젠하워는 이미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단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