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의 기술 마인드셋팅) ‘아이젠하워’와 ‘가후’ 3

(1) 아이젠하워처럼 살았다면 좋겠지만 – 하

by 테서스


(앞 편에 이어 서술합니다.)


5) 전쟁 이후의 아이젠하워 : 더 잘하게 되다


연합군의 기라성 같은 장군들을 잘 다독이며 인류 최대 전쟁을 승리로 이끈 5성장군 아이젠하워.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건 당연해 보였습니다. 전쟁 기간 중 미국을 대표했던 루즈벨트가 사망하고 / 부통령 트루먼은 대통령을 계속하기에는 가오(!)가 딸렸으니, 아이젠하워 말고는 대통령 할 사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다만, 시기적으로 한 가지 난감한 문제가 있었는데요. 바로 [한국전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6ᆞ25 라고 하면 다들 알아듣는 전쟁. 한국사람들에게는 뼈아픈 전쟁이었고 공산주의에 치를 떨게 된 전쟁이었지만, 미국 다큐멘터리에서는 ‘그다지 돌이켜 보고 싶지 않은 전쟁’으로 묘사됩니다. 전쟁 초반, 후반 모두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더군요.


(이 미국 제작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6ᆞ25 전쟁 초반, 미군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북한군 따위는 쉽게 저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채피 경전차만 투입해도 어느 정도 방어 가능하다고 판단했죠. 병사들도 신병 중심으로 투입되었구요.


하지만, 당시 북한군은 ‘팔로군 소속 실전경험 게릴라’들을 대거 영입했었고 / 소련제 T-34 전차는 상당히 강력했습니다. 그리고… 미군을 도와 줘야 하는 한국군은 (초반 한정으로) 별 도움이 안 됐습니다.


결국 미군은 수천명의 사상자를 내며 낙동강까지 후퇴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5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젊은 시민권자들을 잃는 상황. 미국 내에서 상당한 반발이 일어났겠죠.


이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또 한 명의 위대한 장군’이었습니다. 5성장군 맥아더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연상시키며) 적에게 점령당한 땅 깊은 곳에 상륙작전을 감행했고, 허를 찔린 북한군은 식량 보급도 못 받은 채 빤쓰런 합니다. 그대로 한반도 전체를 통일시킬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중공군’이 개입합니다. 인해전술로 밀어붙였다는 중공군 앞에서 미군과 한국군은 후퇴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일시적으로 서울을 다시 빼앗기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저희 한국사람들도 잘 아는 사실인데요. 미국 다큐멘터리는 이 지점에서 약간 다른 얘기를 합니다.

[중공군이 개입한다는 첩보를 미리 입수했는데 맥아더가 이를 무시했다.]는 얘기를.


조금 생각해 보면 나름 그럴듯한 주장입니다. 중공군이 20만명 이상 남하(南下)했는데 미군이 이걸 모를 리가 없죠. 아무리 험준한 산맥을 타고 왔다 해도 정찰기 등등에 포착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맥아더 원수는 중공군 개입 가능성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다만, ‘중공군 따위 다 처바를 수 있다!’고 쉽게 생각했을 뿐.


그러나, 중공군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인해전술을 썼다고 하지만 단순히 사람으로 밀어붙이는 당나라 군대가 아니었고, 그 많은 사람을 유효적절하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을 가진 군대였습니다.


앞서 북한군도 그러했지만, 당시 중공군은 ‘게릴라전에 특화된 베테랑 군인’이었습니다. 인해전술로 숫자만 많은 게 아니라 탁월한 산악행군 능력으로 적 대열을 돌파해 개별 전투로 포위섬멸하는 게 장난 아니었죠. 미군이 그 우월한 화력을 활용 못하게 만들어 놓고 소모전을 강요했던 겁니다.


미국 다큐멘터리에서는, 중공군 개입 이후 1ᆞ4 후퇴로 서울까지 빼앗겼던 상황을 대략 ‘맥아더의 실책(失策)’으로 돌립니다. 맥아더가 대단한 군인이었고 인천상륙작전도 큰 공적이었던 건 인정하지만, 중공군을 너무 쉽게 봤다가 게릴라전술에 휘말려 패퇴한 건 실수로 보고 있습니다.


아무튼, 맥아더는 경질되었고 후임 리지웨이 중장이 미군과 한국군을 정비하여 다시 38선 근처까지 밀고 올라갑니다. 그러고 나서 지루한 대치상태가 지속되죠.



이렇게 한국전쟁이 고착상태로 갈 때.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진행됩니다. 당연히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죠. 그리고 아이젠하워는… [한국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합니다. 싸워서 물리치는 방식이 아니라 평화로운 방법으로 끝내겠다고 공약을 내걸어 버립니다.


(물론 한국인 입장에서는 많이 아쉽습니다만)

아이젠하워가 ‘한국전쟁 종결’을 선언한 것. 이건 미국인들 입장에서 매우 신선한 느낌이었을 겁니다. 인류 최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연합군 총사령관이 ‘미국 시민권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그만두겠습니다!’라고 선언했으니, 당연히 놀라웠겠죠.


또한, 이 선언은 아이젠하워 말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후보가 누구였는지 모르겠지만) 반대편에서 ‘전쟁 종결’을 선언해 봐야 [C발 이 겁쟁이들아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전쟁에 이길 수 없어 우리는 무조건 이길 때까지 싸운다!]라는 반발을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이제는 전쟁 그만합시다.’라고 선언해 버리면?

이건 반박 못합니다. 아무리 전쟁에 미친 사람이라고 해도 아이젠하워가 전쟁 그만하자고 하는데 반박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총사령관이 (짜잘한) 전쟁 그만하자는데 거기에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여기에 더해, 아이젠하워는 ‘여러분의 친근한 이웃 아이크’로 선거홍보를 합니다. 전쟁영웅 이미지는 완전히 내려놓고 ‘편안한 가정을 복원하는 마음씨 좋은 옆집아저씨 같은 정치인’으로 나간 거죠.

어차피 아이젠하워가 전쟁영웅인 건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다 아는 사실이니, 그와 반대되는 소탈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전쟁 이후에 더 잘하는 정치인’으로 홍보한 겁니다.


결과는 대성공.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경제는 1950년대 호황을 겪으며 ‘세계 최강’으로 발돋움합니다.

(물론 60년대 초반에 소련이 쏘아올린 묵직한 인공위성으로 ‘스푸트니크 쇼크’를 겪었고 베트남전에 휘말리면서 휘청거리긴 하지만… 그건 아이젠하워와 무관한 얘깁니다.)



아이젠하워가 이렇게 잘 나가는 동안, 그의 직장상사였고 9년 간 시다바리 생활을 시켰던 ‘맥아더’는 어떻게 됐을까요?


맥아더도 정치에 데뷔했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마지막 국회연설 “노병은 죽지 않는다. 사라져 갈 뿐이다.”만 알려져 있지만, 맥아더는 바로 사라지지 않고 정치계에 입문하려고 했었답니다.


다만, 성과가 없었을 뿐.


맥아더는 부통령 후보로 나섰고 나름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 같은 걸 담아 출마선언문을 열심히 작성했었다고 하는데… 그 연설문이 전해지지 않는답니다. 250년 짧은 역사에서 가능한 한 많은 기록을 확보하려는 미국 문화에서도 맥아더의 정치연설문은 없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아이젠하워와 맥아더 얘기를 꽤 길게 했네요. 쓰다 보니 저 자신도 은근 재미 붙여서 더 길어진 것 같습니다.


자, 이건 여기서 끊고. 중요한 건 ‘경력직 이직의 기술’이겠죠. 다음 챕터 넘어갑니다.



6) 경력직은 아이젠하워처럼 살 수 없다


아이젠하워 이야기를 길게 했지만… 결론은 쪼큼 허무합니다. 우리 경력직들은 아이젠하워처럼 살 수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 경력직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아이젠하워가 인내심과 인화능력의 상징이긴 하지만. 9년 동안 진급누락되는 걸 참아내며 버틴 끝에 미군 최고 자리에 오른 바람직한 직장인이긴 하지만.

그는 결국 ‘첫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입니다. 직장인으로 치면 KT나 LH같은 공기업에 공채입사해 끝까지 한 회사만 다닌 사람입니다. ‘미군’이라는 직장에만 다녔고, 이직할 필요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물론, 맥아더 밑에서 시다바리 할 때에는 이직하고 싶기도 했겠죠. 아무리 좋은 공기업이라도 9년 동안 진급누락되면 이직하고 싶어집니다. 20세기 초반에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출신 + 최종 계급 소령이면 직장 얻기도 쉬웠을 거구요.


그렇지만, 아이젠하워는 계속 미군에 남았습니다. 굳이 2차 세계 대전의 기회를 노려서 남은 게 아니라 그냥 남았습니다. 그렇게 남아 있다가 보니 어느 순간 대령이 되었고 준장이 되었으며 갑자기 진급폭주해서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직 단 한 번도 이직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이젠하워처럼 ‘큰 파도가 몰아치는 기회’를 기다리며 계속 자리 지킬 수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찾아올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인화(人和)를 생각하며 인내심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이직러’를 위한 글입니다. 저 자신도 이직러이고, 이 글 보시는 독자님들도 이미 이직한 사람 아니면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이젠하워처럼 ‘잣같은 상사 밑에서 잣나게 버티다 보면 갑자기 대박 기회가 올 거야!’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이젠하워의 인내심, 인화력, 정치인으로 변신할 때의 빠른 포지셔닝. 다 좋습니다. 직장생활 이전에 ‘사회생활의 교본’으로 본받을 만 합니다.


다만, ‘이직러’들에게는 머나먼 꿈나라 얘깁니다. 어찌어찌 운이 좋아 다시 한 번 ‘이 회사에서 가늘고 길게 오래 가 보자!’라고 할 만한 회사를 만났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경력직 프로이직러들은 한 우물만 팔 수 없습니다.


아이젠하워 이야기는 그냥 [이미 내 모습에서 지워져 버린 ‘한 회사 충성맨’에 대한 동경] 같은 걸로 남겨 둡시다. 정말로 우연히 어느 기업에서 ‘평생 갈 기회’를 잡았다면 그 때 살포시 꺼내 보는 걸로 하고, 대략 99.9% 확률로 우리 프로이직러 각각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생각하면서 덮어 둡시다.


(지나간 일이기는 하지만, 이 글 쓰는 사람도 ‘아이젠하워 신화’를 직장생활로 재구현하고 싶어했던 때가 있기는 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공채신입이었으니까요. 그 공채신입으로 들어간 회사가 ‘천조국 군대에 맞먹을 만한 직장’이 아니었을 뿐…)



한 발 내딛는 순간 ‘경력직’. 첫 번째 경력직 이력서를 작성하고 딴 회사에 제출하는 순간 ‘이직러’. 그렇게 몇 번 쌓이다 보면 이직하는 것 자체가 직업이 되는 ‘프로이직러’.


우리 프로이직러들에게 필요한 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한 직장에서 말뚝박고 때를 기다리는 이야기 말고, 여러 직장 옮겨다니면서도 끝내 성공하는 이야기를 원합니다.


프로이직러에게 필요한 이야기. 온갖 블랙기업 다 옮겨다니면서 마음고생 많이 했지만 끝내 살아남았고, 나름 말년에 (명예직이긴 하지만) TOP3에 들어가는 고위 임원 직함 받아냈던 이야기.


이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을 1800년 전으로 돌리고 / 장소도 많이 옮겨야 합니다. 시간은 대략 서기 190년 ~ 240년 사이, 장소는 옆 나라 중국. 2차 세계 대전 못지않게 막장 학살극이 벌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던 시대, 그러면서 후세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된 시대로 가 봅시다.


프로이직러를 위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후]입니다.


경력직 프로이직러를 위한 진짜 이야기. [경력직이라면 ‘가후’처럼]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전 03화(이직의 기술 마인드셋팅) ‘아이젠하워’와 ‘가후’ 2